흥부놀부 이야기를 곰곰히 따져보면..
형보다 나은 동생 없다는 말도 있듯이 사실 놀부가 흥부보다 더 나은 구석이 많은 것 같아요.

놀부는 근면 성실한데다 여자 문제도 깨끗하고... 정말 괜찮은 사람인데요.
흥부는 복권 당첨과 동시에 첩까지 거느리고... 흐흐흐 좀 문제가 많지요.

놀부가 돈이 그리 많다 해도 첩을 두었단 소리 들어 본 적 있나요?
자식도 별로 없이 그저 부인이랑 둘이서 열심히 살아보려 한 죄밖에 없지요.

근데, 이 놈의 흥부는 밤이고 낮이고 아이만 열심히 만들어 대는데..
그 수가 열 명이라고도 하고, 30명이 넘는다고도 하고... 여러 가지 설이 있더라고요

흥부 부인도 흥부와 똑같은 부류이라서 그런지
날만 새면 남편을 등떠밀어 형님 집에 가서 뭔가 얻어 오라 시키지요.

애가 10명이라면 큰애가 최소한 10살은 될 것이고
애가 30명이라면 큰애가 최소한 30살은 될 것인데...

흥부 부부의 자녀 교육관 또한 특이한 것이어서 아이가 그렇게 많아도
뭐든지 가르칠 생각은 전혀 없고 일제히 방구석에서만 뒹굴게 하는 게 특징이지요.

근데 그 와중에 큰아빠 놀부가 그동안 얼마나 거두어 먹였는지
흥부네 아이들은 음식 이름만큼은 모르는 게 없더라구요

"흥부전"에 보면...


한 녀석이 나오면서 "애고 어머니, 우리 열구자탕(悅口子湯)에 국수 말아먹으면."
또 한 녀석이 나앉으며, "애고 어머니, 우리 벙거지를 먹으면."
또 한 녀석이 내달으며, "애고 어머니, 우리 개장국에 흰밥 조금 먹으면."
또 한 녀석이 나오며, "애고 어머니, 대추 찰떡 먹으면."
"애고 이녀석들아, 호박국도 못 얻어 먹는데 보채지나 말려무나."
또 한 녀석이 나오며, "애고 어머니, 우에 올부터 불두덩이 가려우니 날 장가 들여 주오."


허, 참... 어떤 놈은 장가까지 보내 달라 그러네요...
이런 꼴을 본 큰아빠 놀부의 가슴은 얼마나 답답했을꼬?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그 시절에 이 철없는 조카들 그 나이까지 다 먹여 살렸으니...
놀부는 이 조카들 굶겨 죽이지 않으려고 자기 자신은 아이도 제대로 갖지 못했나 봅니다.

흥부가 열심히 아이만 만들고 있을 적에
놀부는 매일 땡볕에서 농사만 지으면서 더욱 허리끈을 동여 매었다고 하니
세상에 놀부보다 더 휼륭한 형이 또 어디 있단 말입니까?

흥부의 게으름은 가히 세계 챔피언 감이지요. 자고로 아이들이 많으면 그만큼 노동력도 많다는 것인데
아비고 자식이고 일하는 데에는 적성도 소질도 없는 것 같애요.

"흥부전" 첫머리에 고약한 놀부의 성격과 그보다 더 고약한 흥부의 성격이 나오는데..


흥부는 집도 없이 집을 지으려고 집 재목을 내려갈 양이면 만첩청산 들어가서 소부등(小不等) 대부등(大不等)을 와드렁 퉁탕 베어다가 안방 ·대청 · 행랑 · 몸채 · 내외 분합(分閤) 물림퇴에 살미살창 가로닫이 입구자로 지은 것이 아니라,
이놈은 집재목을 내려하고 수수밭 틈으로 들어가서 수수깡 한 단을 베어다가 안방 · 대청 · 행랑 · 몸채 두루 짚어 말집을 꽉 짓고 돌아 보니, 수숫대 반 단이 그저 남았구나.
방안이 넓든지 말든지 양주(兩主) 드리누워 기지개켜면 발은 마당으로 가고, 대고리는 뒤곁으로 맹자 아래 대문하고 엉덩이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니, 동리 사람이 출입하다가 "이 엉덩이 불러들이소" 하는 소리, 흥부 듣고 깜짝 놀라 대성통곡을 하는디.........


원, 세상에... 뒷 산에 그 많은 나무들은 건드리지도 않고 수수깡으로 대충대충 말뚝 박아 집을 지었다고요? 그것도 얼마나 작게 지었길래 엉덩이가 집밖으로 나갈까? 그래 놓고 입은 살아서 대성통곡을 하는 꼴이라니....

자기 불쌍하다는 그 엄살을 동네방네 소문 내어 놀부 형님 더 골탕 먹이려고?
그런 꼴 보는 놀부의 속이 얼마나 탔을까 생각하니 놀부만 정말 불쌍하고 불쌍하지요.

그래서 놀부가 늦게나마 철없는 동생 부부 자립심 좀 길러 주려는 마음에 모진 마음 먹고 그냥 쫓아 보냈더니... 흥부놈은 장기적인 자활 계획 같은 것은 전혀 없고. 기껏 한다는 짓이 모두 1회용 아르바이트 같은 일만 하면서 동네방네 돌아다니지요.

놀부가 밤마다
"저 흥부놈을 어떻게 사람을 만들어 볼꼬?"
"어린 조카들 생각하니 계속 안 줄 수도 없고..."
"왕창 목돈을 쥐어 주자니 저 놈 성격에 바로 그 날 다 써 버릴 것이고...."
하며 동생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는데...

정말 하늘도 무심하시지...
흥부놈에게 왜 박씨를 물어다 주어 저렇게 벼락부자가 되도록 했단 말인고?
이제는 저 흥부놈 인간 만들기 작전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 갔고, 형인 나만 나쁜 놈이 되고 말았군...

놀부의 걱정대로 흥부는 벼락부자가 되자말자 온갖 사치를 다하고, 첩에다가 남녀 하인들을 주루룩 거느리게 되지요.

사실 그 때까지 놀부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근검절약이 생활신조여서 그 흔한 첩 하나 둔 적이 없는 착실한 형이었거든요.

흥부전에서 이래저래 가장 억울한 사람은 놀부인 것 같네요
근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 흥부전의 뿌리가 되는 원래의 고대 설화에서도 형님이 피해자였습니다.

흥부전의 근원 설화는 원래 신라 시대의 "방이 설화"였는데요.

거기서는 동생이 무지하게 나쁜 놈으로 나오고... 형인 "방이"라는 사람은 매일 동생한테 당하기만 하는 무지무지 착한 사람으로 나오지요. 동생은 형에게 씨앗을 주어도 푹 삶은 걸 주고, 누에를 주어도 푹 익혀서 주는 정말로 엄청 나쁜 놈으로 나옵니다.

그러다가 형 "방이"가 산에 갔다가 붉은 옷을 입은 아이들을 만났는데, 놓고 간 금방망이를 주워 와서 큰 부자가 되었는데, 동생도 금방망이 주우러 갔다가 크게 골탕을 먹는다는 게 대강의 줄거리이지요.

신라 시대의 이 옛 이야기는 중국에까지 알려져서 당나라와 송나라의 중국 책에 상세히 기록되어 전한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이 이야기를 "금방망이 설화"라고도 하지요. 책에 따라서 붉은 옷 아이가 호랑이가 되기도 하고 도깨비가 되기도 하는데, 도깨비들이 주인공의 개암 깨무는 소리에 놀라서 도망 갔다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이렇다 할 기록이 없다가 조선 후기 정조 임금 때에 안정복이란 사람이 중국 기록을 베껴다 소개한 것이 있는 정도이지요...

입으로 입으로만 전해지던 이 "방이 형제" 이야기에서 형이 너무너무 불쌍하니까, 형을 조금 잘 살게 내용을 약간 바꾼 것이 바로 이 "흥부전" 이지요.

흥부전에 그 옛날의 원래 이야기의 흔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서 군데군데 흥부의 나쁜 점들이 보이게 되는 것이랍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흥부가 중국 황제의 첩이었던 양귀비까지 첩으로 맞이한다는 건 솔직히 좀 너무한 짓이지요. ㅋㅋㅋ..

사실, 좀더 자세히 흥부전을 분석해 보면...

우리 나라에서 "동생보다 돈많은 장남"이 처음 나타난 것은....
임진왜란 이후 "장남 상속제"로 상속제도가 바뀌고 나서부터이지요.

원래 우리 나라에서는 그 동안 수천년간 남녀 평등시대였기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 재산은 장남부터 시집 안 간 막내딸까지
"논밭 몇 평, 하인 몇 명.... " 하면서 모두 똑같이 나누어 가졌지요.

물론 여기에는 조상님에 대한 제사의 의무도 똑같이 나누어 가졌답니다.
"증조부 제사는 차남이, 아버님 제사는 장녀가, 어머님 제사는......"
이런 방식으로 나누곤 하였는데, 맡은 제사의 비중에 따라서 상속재산도 약간의 차이는 있었겠지요.

그런데 임진왜란으로 다들 피난 가고 어쩌고 하는 사이에 가족 중의 많은 사람이 죽거나 행방불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인도 도망 가거나 죽거나 하여 재산도 많이 줄어 든 관계로 조상님에 대한 제사를 장남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집안이 많아졌고...
또 몇 명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재산이 그리 많지도 않고 해서 전국적으로 장남이 대부분의 재산을 상속받는 경우가 많아졌지요.

그 와중에 "동생보다 돈많은 형님"이 여기저기에서 생기게 되었고, 거기에 불만을 품은 동생들 또한 전국적으로 많이 나타났고 그러한 시대적 변화에 따라 이 "방이 설화"도 내용이 약간 바뀌어져서 지금의 "흥부전"과 같은 이야기도 나오게 된 것이지요.

그나저나
철없는 흥부를 무조건 나무랄 수도 없는 것이....

요즈음 한국 사람들이 아기를 너무 안 낳으려 하는 통에 지금 정부에서는 흰둥이, 검둥이 어린이들을 입양하는 문제까지 검토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아기를 쑥쑥 잘 낳아 주었던 흥부를 너무 나무랄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네요.

아기를 너무 안 낳아서 대학들도 절반은 문을 닫아야 하는 실정이 되어 버렸고, 젊은이 한 명이 늙은이 대여섯 명을 책임 져야 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니 흥부야말로 시대를 앞서 가는 선각자라 아니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네요.

90년 전에 중국의 "손문"이란 분이 미국을 한 바퀴 돌고 오더니 앞으로 미국에게 인구로도 밀리게 되었다면서 전국적으로 애 많이 낳기 운동을 벌여야 한다면서 열변을 토하던 것이 이제는 남의 일 같지 않게 되어 버렸군요.

근자에 우리 나라의 모 회사에서 아기 둘 가진 사원은 무슨무슨 자금을 일부 지원해 주고, 아이 셋 가진 사원은 셋째 아이 대학 등록금까지 전액을 지원해 준다는 획기적인 발표가 있었는데 이제서야 아기 많이 낳는 "흥부정신"이 살아나는 것 같네요.

흥부는 솔직히 자녀교육에 문제가 없지 않았지만..(음식 이름만 가르쳤음)
이 회사의 "흥부작전"은 "흥부전"의 흥부보다는 좀 업그레이드된 작전 같습니다요.

자, 이제는 아기 잘 낳는 흥부의 동상도 세워야 하겠는데 어디에다 세우는 게 좋을까요?
허참 그것도 또 걱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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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문학박사 황재순(제물포고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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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사실, 이번에 놀부의 억울함과 흥부의 만행에 대해서 심층분석해 보고 싶었는데, 요즈음 우리나라 아기 숫자가 워낙 최악의 수준이라 결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버린 것 같네요.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