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피를 만들고나서 내가 참석했던  동창회 기수들이다

제일 처음에 참석을 했던 것이 2003년 가을 7회 동창회가 서울 강남에서 있음을 알고
김영주 언니에게 허락을 구한 뒤  떨리는 마음으로 참석을 했었다.
초창기 홈피에 볼거리가 없어 동영상컨텐츠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학교 사진 몇개, 동창회소개 등을 올려 놓은 것으로는 너무도 형식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수십개의 동영상 컨테츠와  인터뷰, 행사, 기타 자료들이 있다.

그렇게 시작하여
그 다음달에 10회의 30 주년 행사를 참석해서 언니들의 행사를 취재했었다.
그 후 2004년 2월에 14회 동창회
2004년 말 송년동창회가 연이어 5회 9회 3회를 참석했고
2005년 초 6회 신년회와 2월에 12회 첫 동창회를 참석해서 동문들과 인사를 했다

3회 이외에 먼저 오라고 한 기수 없었으나
참석의 양해를 구한뒤 허락을 얻어 어렵디 어려운 선배 언니들 앞에서 인사를 하고
촬영을 하고 인터넷에 기수의 행사를 알려서
각 기수들이 따로따로가 아닌 하나의 인일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있도록
내 나름대로의  운영방식을 꾸려갔었다.
그렇게 하기를 오는 7월이면 2년이 된다.

게시판의 활성화도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3,5,6,7,9,10,11,12,14회가 가장 발전하고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학교시절, 관중 앞에 나서면 벌벌 떨리던 내 소심한 성품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사이버적인 매체를 다루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일반 대중 앞에서는 그렇지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 앞에 서려면 내 나름대로 스스로에게 기합을 넣는다.
그렇게 기합을 넣으면서 나이 50을 넘다보니
이제는 약간의 뻔뻔스러움이 배어드는 것도 느끼면서
내가 참 많이도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이버라는 것은 한사람이 다수를 대상으로 한 쌍방향 대화가 가능 한 매체이므로
이 공간을 통하여 인일 공동체 의식을 창출해낼 수있다는 내 나름대로의 사이버에 대한 직업관이 확고했기 때문에
시작을 안했으면 몰라도 일단 시작한 이상
여러가지 난관이 있었어도,일부사람들이 뭐라해도 밀고 나갔었다.
내 머릿 속에는 정답이 확실한 마스터 플랜이 이미 만들어져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는 무한한 인일을 창출할 수있다
분숫가에서 노래부르던 영원한 16세의 소녀로서 생활의 에너지를 얻을 수가있다.
전세계의 인일이 하나가 될 수가있다.

다만,
각 개인의 현재 위치와 이해관계를 배제하여야 그것은 가능한 것이다.
오로지 인일이라는 공동체 의식 아래 우리는 하나가 될 수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대립과 분열없는 무색무취의 인일여고 동문들을 위한  공간이 될 수있는 것이다.

이제, 나는
앞으로 이 곳을 이끌어갈 더 젊고, 신선하고, 능력있고,
webmaster@inil.or.kr 관리자 이메일을 넘겨받을 후배가 등장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인일여고 동창회 홈페이지가 더욱 발전하고 도약할 수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홈피 제작 후  2년이 다가오는 요즘,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키보드를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