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그렇게 바람이 불었느냐는 듯이 고요한 예비대를 뒤로하고 우리는 죽변에서 북쪽에 위치한 지형이 험하면서도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고포 해안으로 이동하였다.
거기에도 중대장 관사는 없었다. 그래도 먼저 살던 덕신보다는 새마을 운동이 일찍 들어 왔는지 집을 개량한 집이 더러 있어서 이번엔 연탄을 때는 양옥집에 세를 들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부엌이었다. 주인 할머니가 까다로운 성미라 덕신에서처럼 한 부엌을 같이 못쓰고 이사하던 날로 화장실이 마주 보이는 집 뒷켠에다 비닐로 포장을 치고 간이 부엌을 만들어야 했다.
늦봄에 이사를 했는데 그 해 따라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부엌에서 대강 상을 보아 가지고 추녀 밑을 따라서 집을 한바퀴 삥 돌아 오다보면 밥상인지 물상인지 구별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릇마다 전부 뚜껑을 씌워 가지고 새색시 걸음으로 조심을 하고 왔어도 밥을 먹으려면 그릇을 다 들어내고 흥건히 고인 물을 다 딸아 낸 다음에 행주로 닦고서야 그 위에서 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게다가 집 마당에 있는 수도는 주인 할머니가 늘 꼭지를 뽑아 두는 바람에 언제나 그림의 떡이었다. 물 값이 많이 나온다고 절대로 집에서 빨래를 못하게 하는 할머니 때문에 나는 매일같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그 지붕에다 빨래 함지를 싣고 개울에 나가서 해다가 널어야 했다. 덕분에 나는 누가 보아도 외지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을 만치 완벽한 동해안 촌부의 아낙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던 차에 아이의 첫돌이라고 친정 어머니가 다니러 오셨다. 어머니 생각에는 세상에서 제일 잘나고 귀한 딸이라 시집도 잘 가서 남보다 편하게 잘 살거라 기대했다가 막상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시고는 많이 서운해 하셨다. 이렇게 살 바에는 당장 보따리를 싸가지고 집에 가자고 야단을 하시던 친정 어머니. 군대생활을 이해 못하시는 그 분과 싱갱이를 하는 것이 내게는 제일 힘이 들었다.
“이제 보니 내가 윤 서방한테 속아도 단단히 속았구나.
  너만 자기한테 주면 평생 고생시키지 않고 행복하게 해 준다더니 고작 이게 행복이      란 말이냐? 왼 종일 남편 얼굴도 구경 못하고 이런 촌구석에 처박혀 사는 게......”  
“중대장 때는 워낙 바쁘기 때문에 나 뿐 아니라 누구나 다 이렇게 살아요.”
“그렇다면 니가 굳이 여기서 같이 있을 필요도 없구나.”
“그래도 중대장을 혼자 하는 것보다는 같이 하는 게 훨씬 좋대요. 그래야 군대 생활이     어떤 건지 제대로 배우기도 하고.......”
“이게 어디 군대 생활을 배우는 거냐? 괜히 쓸데없이 고생만 죽살나게 하는 거지.
  이렇게 너 혼자서 남의집살이나 할 바엔 당장 보따리 싸 가지고 집으로 올라가자.”
“지금 날더러 이혼을 하란 말이세요?”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너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배운 건 써먹지도 못하고 이런     데서 마냥 썩어 지내는 게 억울하지도 않냐?”
“엄마, 난 지금 억울하게 그냥 썩어 지내는 게 아니에요.
  이렇게 힘든 과정을 같이 겪어야 내가 진짜로 윤 서방의 조강지처가 된다고 생각해요.
  조강지처는 고생도 같이 하고 영화도 같이 누리는 것이라고 엄마가 그랬잖아요.”
“그것도 어느 정도 기본이 된 다음에 말이지, 너처럼 그렇게 무턱대고 남편을 위한답시    고 모든 걸 희생하고 살면 이담에 누가 알아주기나 할 줄 아니?”
“누가 뭐 알아 달라고 사나요? 그 사람이랑 있는 게 좋으니까 곁에 있는 거지....
  그런데 엄마, 나만 보면 그렇게 남편한테 잘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더니 오늘은 왜 그    러세요? 내가 뭐 서운하게 해드린 거 있어요? 자꾸만 역정을 내시고......”
“너보다 공부도 못하던 아이들은 좋은 집에서 보란 듯이 편안하게 잘 사는데 너만 이런    촌구석에서 갖은 고생을 다 하며 사는 걸 보니 에미 속에서 불이 나서 그런다. 왜?”
“엄마,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면서요? 지금은 이래도 우린 갈수록 더 잘 살 건데 왜     지레 겁먹고 야단이세요?”
“쯧쯧쯧..... 이것아 니 꼴을 한 번 들여다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내 꼴이 뭐가 어때서요? 난 지금 너무나 행복하고 아무 불만이 없다는데 왜 그러세요?
  괜히 그런 소릴 해서 내 속을 뒤집어 놓으시려거든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마세요.”
나는 결국 어머니에게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어머니가 그러시는 것도 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친정 어머니가 정말로 야속하고 미웠다. 오히려 남편을 따라 꿋꿋이 사는 나를 대견하다고 칭찬을 해주시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딸자식은 다 소용이 없다더니 어느새 내 마음속에서는 어머니보다 남편이 더 소중한 사람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셨든지 어머니는 나를 외면하고 돌아앉아서 한동안 눈물만 훔치시고는 가실 때까지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않으셨다.
다음 날, 어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을 뒤에 있는 바닷가로 나갔다. 어머니 앞에서는 전혀 내색도 않고 가슴 밑바닥에 숨겨 놓았던 눈물 보따리를 풀어서 바다에 던지며 나는 다시금 마음에 깊이 다짐을 하였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 그가 가는 군인의 길이 지금은 그저 초라하고 궁색해 보여도 아무나 갈 수 없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가득 찬 영광스런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오직 군인의 아내라는 이름에 충실하며 내 남편이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고 떳떳한, 존경받는 군인이 되도록 뒷바라지하리라. 내가 거름이 되어 그가 꽃을 피울 수 있다면 내 인생 전부를 다 그에게 주리라. 아무리 닥치는 현실이 어렵고 힘이 들어도 절대로 울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내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모든 사람들 앞에 부끄럼이 없는 이름으로 기억이 되도록 순수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리라.’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다 유모차를 세워놓고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의 아득한 경계선을 바라보며 나는 평생에 잊혀지지 않는 결심을 마음에 새겼고, 그 결심은 우리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 부딪쳤을 때라도 과감히 헤치고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