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한 번 해안에 나갔다가 돌아오니 15평 남짓한 예비중대 관사가 내게는 꿈의 궁전보다 더 호화로운 별장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수세식 화장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문화의 혜택을 다 누리는 듯했다. 게다가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 호젓하게 혼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식탁과 나무 아궁이 대신 연탄을 때는 새마을 보일러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뛸 듯이 기뻐하며 감사했다. 사람이 느끼는 행복이란 절대적인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이 곳에 와서 절실히 느꼈다. 지난번에 살 때는 유배지라고 생각했던 해송 숲 속에 있는 조그마한 외딴집이 이번에는 어디에도 견줄 수가 없는 꿈의 궁전이 되었으니 말이다. 남편도 처음 이곳에 들어 왔을 때와는 비교가 안되게 매사에 여유를 갖고 부대를 정비해 나갔고, 지난 1년 사이에 한 식구처럼 된 많은 중대 하사관 가족들과 죽변 교회 교우들 덕분에 나도 지난번과는 다르게 적적하지 않은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예정보다 빨리 해안으로 투입이 되는 바람에 예비대에 머무르는 기간은 지난번의 절반도 되지 않게 짧았다.
아쉬움 속에 이삿짐을 다시 묶으며 예비대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데 내 평생에 처음 보는 회오리바람이 바다를 가르고 몰려와 온 산하를 덮치기 시작했다.
초저녁 어스름 무렵부터 불기 시작한 바람은 비는 한 방울도 오지 않으면서 해송 숲 건너에 있는 백사장의 모래 알갱이들을 다 헤집어 온 사방으로 흩어 버렸다. 바다가 우는 소린지 전신주가 우는소린지 분간을 할 수도 없는 혼돈스런 소음을 뚫고, 굳게 걸어 잠근 창문을 부서져라 흔들며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로 모래가 날아 들어왔다.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기 시작하자 남편은 내일 이동할 병력들을 확인해 보고 올 테니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있으라는 말만 내게 남기고 부대로 들어가 버렸다.
전깃불도 어느새 나가버려 눈을 뜨고 있으나 감고 있으나 마찬가지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세상의 모든 귀신들이 다 일어나 아우성을 치는 것 같은 그 밤에 나는 오도가도 못한 채 자는 아이를 끌어안고 방 한가운데에서 짐승처럼 엎드려 있었다. 쉴새없이 덜커덩거리는 유리창 소리와 고막 깊숙이 파고드는 쇳가루 섞인 휘파람 같은 전신주 우는소리는 마치 나를 고문하듯 말초신경의 맨 끝가닥 까지 휘감고 늘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천지를 뒤흔들던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더니 먼동이 저 만치서 희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어둠이 물러가고 나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내 품에서 고이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의 볼에 내 얼굴을 가만히 대 보았다.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따뜻하고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지자 정말로 살아 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내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 그 지독한 고문 같은 어둠의 공포를 이기고 아이와 함께 무사한 것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밖으로 나와보니 중대 본부와 관사를 가르고 서 있던 담장이 간데 없이 허물어져 평상시엔 보이지 않던 부대가 눈앞에 훤히 보이고, 그 옆에 서 있던 전신주들은 여름날의 엿가락처럼 아무렇게나 휘어져 전깃줄과 전화선이 제멋대로 엉키어 땅바닥에 구르고 있었다. 도로변에 세워 놓았던 트럭이 훌떡 뒤집혀서 네 바퀴가 하늘을 보고 누워 있는가 하면 거리의 가로수들이 뿌리째 뽑혀진 것도 부지기수로 많았다. 그런데도 다행히 우리 부대와 집은 담장이 무너진 것 외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날이 밝은 후에야 집으로 달려 온 남편은 우리 모자가 밤새 무사했음을 보고 아무런 말없이 나를 부둥켜안았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가족보다 부대의 안위가 우선이라 밤새 중대장실에 머물며 우리를 돌보지 못한 남편의 마음이 그대로 내게 다 전해오고 있었다.
그 밤에 나는 군인의 아내란 한 남자를 그저 남편으로만 소유하려 들지 말고 평생 그가 지키고 사랑해야 하는 조국에 먼저 바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보통 사람들이 바라는 자잘한 일상의 행복보다 한 차원 높은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위대한 사명감과 긍지를 가슴에 품고, 어떤 극한 상황에서든지 너끈히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아낙이 되어야만 진정한 군인의 아내가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쉬움 속에 이삿짐을 다시 묶으며 예비대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데 내 평생에 처음 보는 회오리바람이 바다를 가르고 몰려와 온 산하를 덮치기 시작했다.
초저녁 어스름 무렵부터 불기 시작한 바람은 비는 한 방울도 오지 않으면서 해송 숲 건너에 있는 백사장의 모래 알갱이들을 다 헤집어 온 사방으로 흩어 버렸다. 바다가 우는 소린지 전신주가 우는소린지 분간을 할 수도 없는 혼돈스런 소음을 뚫고, 굳게 걸어 잠근 창문을 부서져라 흔들며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로 모래가 날아 들어왔다.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기 시작하자 남편은 내일 이동할 병력들을 확인해 보고 올 테니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있으라는 말만 내게 남기고 부대로 들어가 버렸다.
전깃불도 어느새 나가버려 눈을 뜨고 있으나 감고 있으나 마찬가지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세상의 모든 귀신들이 다 일어나 아우성을 치는 것 같은 그 밤에 나는 오도가도 못한 채 자는 아이를 끌어안고 방 한가운데에서 짐승처럼 엎드려 있었다. 쉴새없이 덜커덩거리는 유리창 소리와 고막 깊숙이 파고드는 쇳가루 섞인 휘파람 같은 전신주 우는소리는 마치 나를 고문하듯 말초신경의 맨 끝가닥 까지 휘감고 늘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천지를 뒤흔들던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더니 먼동이 저 만치서 희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어둠이 물러가고 나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내 품에서 고이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의 볼에 내 얼굴을 가만히 대 보았다.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따뜻하고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지자 정말로 살아 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내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 그 지독한 고문 같은 어둠의 공포를 이기고 아이와 함께 무사한 것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밖으로 나와보니 중대 본부와 관사를 가르고 서 있던 담장이 간데 없이 허물어져 평상시엔 보이지 않던 부대가 눈앞에 훤히 보이고, 그 옆에 서 있던 전신주들은 여름날의 엿가락처럼 아무렇게나 휘어져 전깃줄과 전화선이 제멋대로 엉키어 땅바닥에 구르고 있었다. 도로변에 세워 놓았던 트럭이 훌떡 뒤집혀서 네 바퀴가 하늘을 보고 누워 있는가 하면 거리의 가로수들이 뿌리째 뽑혀진 것도 부지기수로 많았다. 그런데도 다행히 우리 부대와 집은 담장이 무너진 것 외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날이 밝은 후에야 집으로 달려 온 남편은 우리 모자가 밤새 무사했음을 보고 아무런 말없이 나를 부둥켜안았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가족보다 부대의 안위가 우선이라 밤새 중대장실에 머물며 우리를 돌보지 못한 남편의 마음이 그대로 내게 다 전해오고 있었다.
그 밤에 나는 군인의 아내란 한 남자를 그저 남편으로만 소유하려 들지 말고 평생 그가 지키고 사랑해야 하는 조국에 먼저 바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보통 사람들이 바라는 자잘한 일상의 행복보다 한 차원 높은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위대한 사명감과 긍지를 가슴에 품고, 어떤 극한 상황에서든지 너끈히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아낙이 되어야만 진정한 군인의 아내가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