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한지 30년 만에 그리운 친구들과 은사님들을 만나는
11기 선배님들은 어젯밤 한 숨도 못자고 설레이는 가슴을
겨우 진정하며 오늘을 기다렸으리라.
오늘은 나도 화장도 곱게 하고 머리 손질도 하고 옷도 좀 괜찮은 옷을
챙겨 입으리라 며칠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 준비성이 없는 나는 약속 시간에 쫓겨 평소보다 더 헝클어진
모습으로 급히 송도 비치 호텔을 향했다.

행사장인 2층에 올라가니 12기 김은혜가 30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애잔한 모습으로 상냥스럽게 웃으며 나를 맞는다.
“선배님! 이름이?,”
이름표를 쓰려고 나에게 묻는다.
“은혜야! 나야 정옥이!”
그제야 알아본 은혜와 서로 반갑다고
서로 여고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나누고 은혜의 이쁜 글씨로 내 이름이 이름표에 적혀졌다.
12기 유정옥!
이름표를 달아 주는 은혜를 보면서
아! 내 이름이 유정옥 이었구나!
왠지 생소한 내 이름표를 가슴에 달면서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뛰놀던 여고 시절의 인일에 대한 추억이
잠간 사이에 밀려오고 있었다.
오늘 11기 선배들도 30년 동안 잃어버렸던 이름들을 찾는 기쁨이 있었으리라!
선배님들의 가슴에 달려 있는 이름들을 보았다.
김아영, 김문희, 김옥겸, 홍명희, 김흥애, 박영미, 이미애,윤진숙, 서신희...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부모, 선생님, 친구...
이름은 이렇게 생각만 떠올려도 마음에 행복을 주는 사람들이 불러 주는 호칭이다.

선배님들은 서로 명희야! 진숙아! 이름을 부르면서 달려와
손바닥이 아프도록 손을 마주치고, 껴안고, 웃고, 울고...

행사장을 가득 메운 11기 선배님들의 결속력은 인일의 딸들 임을 말해준다.
이제는 늙으신 은사님도 계시고
이제는 우리들 보다 더 젊어 보이는 은사님도 계셨다.
발이 불편하신 강하구 선생님,
우리들보다 더 젊어 보여 멋쩍어 보이시는 임순구 선생님
언제나 얌전하신 현금희 선생님,
지금도 현미경을 들여다 보며
“야! 이리와서 이것좀 봐라!
지금 렌즈가 잘 맞았어.
이 연두벌레는 너무 예쁘다!“ 소리칠 것 같은
만년 소녀 김재옥 선생님.
이향자 선생님, 변영호 선생님, 김정식 선생님, 이영규 선생님...
행사장 전체에 가득찬 사랑과 믿음과 그리움의 열기들...

테이블 위에 놓여진 1반, 2반...... 7반의 푯말!
그래요! 오늘은 선배님들의 소속은 1반이고
2반이고 3반이예요.
선배님들은 말잘 듣는 소녀가 되어 푯말 대로 앉았다.
그 중에 자기 반을 못 찾아 헤메는 선배님도 더러 있어서 웃음을 자아냈지만
어쩌랴! 그것이 30년 길고 긴 세월이 흘러간 탓인 것을!

선배의 참석으로는 1기 허회숙 선배님, 총동창회장 정외숙 선배님과
6기 선배님, 10기 안명옥 선배님이 오셨다.

강명희 선배님이 지은 축시가 대형 스크린에 뜨고
낭랑하고 분명한 발음으로 최예문 선배님이 그 축시를 낭송했다.
이 두 선배님의 완벽한 조화는 새로운 최고의 작품이 되어
우리에게 보여졌다.
그동안 11기 동창회를 위해서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이기열 동문이 감사패를 받았다.
그리고 연달아 앵콜을  받은 11기 어느 동문의 아들의 축가가 이어졌고
1부의 끝 순서로 우리 모두는 일어나서 30년 만에 인일의 교가를 불렀다.
이젠 기억조차 가물가물 한줄 알았더니
다같이 교가를 부르니까 다시 다 떠올려 기억이 났다.
어디 그 뿐이랴
교가를 부르던 여고 시절의 모교 교정과 그리운 친구들...
담장을 따라 피어나던 코스모스, 마가렛...
아! 인일의 꽃인 장미가 흐드러지게 눈 앞에서 피어나고
그 꽃들은 추억을 그리워하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피어
눈에서는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 내렸다.

2부에서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현란한 옷으로 갈아입은 선배님들의 흥겨운 춤의 한마당이 펼쳐졌다.
얼굴에 대형 선글라스를 끼거나
가면을 써서 누군지 알 수는 없었지만 가히 대단한 춤솜씨들이다.
우리 12기는 선배들의 춤솜씨를 보면서
주눅이 잔뜩 들어가지고
우리도 오늘부터 열심히 춤 배우러 다니자!
1년이면 저 정도 추지 않을까?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였는데
김은혜의 최종 의견은
“1년 가지고는 저렇게 잘 추지 못할 것 같애
적어도 2년은 걸릴 것 같아.“ 였다
“그럼 우리가 지금부터 춤 배워가지고는 역부족이니까 다른 방법을 모색해보자
또 의논한 결론은
“이화숙이 고전 무용을 배운다는 정보가 있어.
그러면 우리는 내년에 고전 무용으로 나가는거야 어때?
“좋아! 좋아
우리는 지금부터 재능있는 동기들을 찾아 나서는거야. ”
그동안 임시 동창회 한 번 모이지 않았던 우리 12기 동기들이
정신이 번쩍 난 모양이었다.
11기 선배님들은 너무 잘 한다!
우리는 어떡하지?
언니들은 3년이나 준비했다잖아.
그럼 우리도 이제부터 빨리 모이고 준비하자
11월 27일 어떠니?  
선배님들이 마련해준 테이블 한 켠에서
우리는 내년에 있을 우리 12기 행사 문제로 의견들이 분분했다.
갖고 있는 30년 전의 사진을 낱낱이 스캔해서 스크린에 올리고 있는
11기 이기열 선배님들의 솜씨와 열정이  부러워서
우리 12기 컴맹들은 계속 혀만 차고 있었다.

이 행사가 끝나면 두 대의 버스로 편승해서 서산으로 간다고 한다.
한 치의 시행 착오도 없이 착착 진행하는
11기 선배님들의 행사를 눈으로 본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정인옥, 김은혜, 유설희, 정경희, 심정인...
그 곳에 왔던 12기 들은 어리보기 한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야무진 동기들이니 11기 선배님들 만큼 하려고
지금부터 발 벗고 나설 것이 아니겠는가?

9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인일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남이 힘이야!
결속이 힘이다!
동기와 동기가
선배와 후배가
제자와 선생님이 사랑으로 뭉쳐질 때
인일이 하나로 될 때
그 힘은 더욱 커질 것이고
인일은 어두운 이 세상에 밝은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졸업 30 주년 기념행사는 인일이 하나로 결속되게 매어주는
온전한 끈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