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가 많이 아팠다. 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겁고, 토하고, 자는 도중에도 일어나 울면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손자가 아픈 소리를 내자 딸은 피곤할텐데 단숨에 일어나 물수건을 해주고 손자를 안고, 업고 달래준다.

그러다 배가 아프다고 하니까 다시 애를 눕히고는 “엄마 손은 약손 우진이 배는 똥배”하면서 배를 문질러 준다. 손자는 순간적으로 통증이 덜한지 아픈 것을 잠깐 동안이나마 잊고 토끼잠을 잔다.

손자가 잠깐 잠이 들자 딸은 나에게 “엄마, 내가 어려서 아플 때는 엄마가 이마에 찬 물수건만 올려놔줘도 금방 다 낫는 느낌이었는데…"라고 한다.

“그랬지. 그때 동네에 소문이 쫙 났었잖니. 이 집 애들은 아프기만 하면 이마에 찬 물수건 올려놓는다고….”

제 자식이 아프니까 저 어렸을 적 일이 하나, 둘 생각이 나는가 보다. 딸은 그날 밤 그렇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아이를 돌봐주었다. 다음날 아침에 출근을 하는 딸아이의 마음은 무거워 보였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일이 손에 안 잡힐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을 터.

토요일은 격주로 근무를 하는데 그 주 토요일은 오전 근무만 하는 것이 그나마 큰 위안이 되기도 했다. 딸이 출근을 하고 난 뒤 손자를 데리고 병원에 가려했지만 손자가 막무가내로 안 간다고 해서 딸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딸은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리곤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장염’이라 하루 정도 입원하라고 한다. 손자가 토하긴 했어도 설사를 하지 않아서 우리들은 단순히 체한 줄 알았다. 다행히 심각한 장염이 아니라 한시름 덜었다. 어린 손자에게 ‘링거’를 꼽는데 손자는 울면서 제 엄마의 목을 꼭 끌어안고 놓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본 딸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나 한 번 쳐다보고, 손자 한 번 쳐다보길 반복한다. 그러면서 “그래, 그래 우리 우진이 이거 맞으면 아픈 거 빨리 낫는다고 하니까 조금만 참아”라고 한다. 딸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자식이 아파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보다 차라리 엄마 자신이 아이 대신 아프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엄마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하물며 그 여리고 가느다란 팔에 혈관을 찾아 큰 주사 바늘을 놓는 것을 지켜보는 딸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제 자식이 많이 아픈 모습을 보면서 모성의 본능이 나오고 있었다.

지난밤 잠을 설쳤지만 피곤도 잊은 채 아이를 돌보고 있는 딸은 예전의 철없던 딸이 아니었다. 이제는 제법 엄마다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니 대견스러웠다. 저 자신만 알고, 저 자신만 편하고 싶어 했던 옛날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2시간 정도 링거를 맞으니, 손자는 많이 나아졌다. 천진스럽게 웃기도 하고 무얼 달라고 요구도 한다. 많이 좋아진 손자를 보고 딸은 “우리 우진이가 얼마나 더 똑똑해지려고 이렇게 아픈 걸까?”하면서 안심이 되었다는 듯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한바탕 큰 일을 치른 딸은 긴장이 풀렸는지 잠든 손자 옆에 나란히 누워 어느새 잠이 들었다. 둘이 누워 평화롭게 잠든 모습을 보니 딸이 안쓰러우면서도 사랑스럽다.

언제나 딸이 철이 날까? 언제나 진짜 엄마가 될까? 걱정을 했는데 이젠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했다. 제 자식이 아프면 엄마도 같이 아프면서 철이 들고 성장하는 것 같다. 옆에서 이런저런 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친정어머니가 더 그리워지는 날이기도 했다.

나의 친정어머니께서도 오래 전 내가 철없던 시절에 지금의 나처럼 당신의 딸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계셨을 것이다. 부모의 은혜를 알려면 결혼해서 제 아이 셋을 낳고 길러 봐야 알 수 있다고 했던가.

나도 이제야 어머니의 깊고 넓은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그럼 어머니는 지금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고 계실까? 내 딸이 앞으로 내 나이가 된다면 그 애도 지금 내 마음을 알게 되겠지. 딸은 그렇게 조금씩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퍼가지 말랬는 데 퍼 왔어요...
가슴이 찡 하네요...
우리도 예전 엄마들처럼 "너도 자식 낳아 봐야 안다" 라는 말을 자식들에게 또 하겠죠....
손주 보신 선배님들 공감 하세요???(x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