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음력 6월 15일, 시간은 저녁 7시 30분. 여기는 강원도 평창 허브나라 입니다.

하늘엔 별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을 이고, 조명속으로 한 여자가 제단위에서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었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빛과 그림자"를 부르며, 등이 깊게 파인 빨간 드레스에, 빨간 망사 장갑을 한쪽 손에 낀, 정열의 여자, 박정자가 흡사 그리스 신화속의 여신 "헤라" 인양 한여름밤을 흔드는 바람속을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63세의 늙은 여자가 당당한 아름다움을 과시하며 부르는 노래

신의 아그네스를 열연하던 연극인이 FEDRA 를 되뇌이며 노래를 이밤에 부르고 있다. SO WHAT?
일렉톤 이라는 멋진 반주에 맞춰, 가수처럼 노래를 부르고 있다. SO WHAT?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본 , 63세의 늙은 여자가 당당히 사랑을 꿈구며 부르고 있다. SO WHAT?

연극인 박정자의 "SO WHAT?" 이라는 제목 아래 열린 야외공연은 우리를 충분히 매료시키고 넋을 빼앗고 있었다. 어쩌면 63세의 여자가 저렇게 당당하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 날에 참석했던 아름다운 여배우 문희 탤런트 김수미, SBS 악단장 김정택 그리고 정신과 의사 이시형 등등.. 모두 박정자 앞에서는 넋을 잃었습니다.

달빛 아래 빨간 드레스가 너무 고혹스럽고 63새의 나이가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

공연이 끝나고 다들 떠난 뒤 허브나라 사장님 부부의 배려로, 박정자를 위해 뒤풀이를 마련했습니다.
흥정산 산속에서 흥정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바람소리, 달, 별에 취해 우리는 밤 가는 줄도 모르고 얘기하고 노래하며 흥에 겨워 놀았습니다.

방송인 박찬숙 의원이 직접 사회를 보고 열린우리당 이광재, 심재덕 의원도 꼼짝없이 불려 나와 노래를 했지요. 특히 이시형 박사님의 소탈한 모습이 좋았고, 박찬숙 의원은 나라를 걱정하는 시를 읊어 우리를 숙연하게 했습니다. 백두산에 가서, 윤동주의 시비를 어루만지며, 2004년의 여름 당신이 그토록 지키려했던 당신의 조국 대한민국의 오늘을 보면, 윤동주 당신은 어떤 시를 쓰시겠냐며 울먹이던 박찬숙 의원. 참으로 훌륭하고 대단했습니다.

박정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이 호순 허브나라 원장님도 그 여자를 위해 몇곡을 뽑았습니다.

이 밤이 가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허브나라의 아름다운 밤이 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박정자의 노래는 귓가에 그대로 남아있어 행복속에 젖게 합니다.

허브나라는 남편들 끼리 친구라 가끔와서 신세를 지곤 했는데, 이번이 제일 좋았습니다. 주제가 있는 허브나라
박정자의 SO WHAT?

나도 이 여름엔 빨간 옷을 한벌 장만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그 옷을 입고 거리를 당당히 활보하고 싶습니다. 아니면 노래방에라도 가서 박정자가 부르던 MY WAY 라도 부르렵니다.


2004년 7월 마지막 날에
봉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