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아저씨로 부터 소포를 받았다.
경북 영천시 고경면 창하리 135 학생연대 3중대
사관 후보생 이 성웅 이라고 쓰여진
아들의 첫 편지를 받았다.
7월 5일 새벽 6시에 집을 떠나 군에 입대한
아들의 옷이 도착한 것이다.

소포를 뜯으니 아들이 입고 간
낯익은 남방과 바지, 양말, 속옷, 운동화...
얼굴에 대어보니 아들의 냄새가 물씬 난다.
이 옷을 벗고 군복으로 갈아 입었을 아들의 모습이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이 옷을 입고 환하게 웃던 그 얼굴이
나의 기억속에 문신처럼 박히어 있어서
다른 모습은 들어 올 자리가 없어서 인가보다.
나는 아들의 옷을 빨지 않고 머리맡에 놓았다.
하루라도 더 아들의 냄새를 맡고 싶어서였다.

아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 아이는 어릴 적 부터 믿음이 좋았다.
밤 늦은 시간에 심부름을 보내면
형은 밖이 어두워 무섭다며 안가겠다고 했다.
그러면 "주님이 같이 가는데 뭐가 무서워!"하면서
먼저 앞장서 나갔다.

아들이 5살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포크레인에 치었는데
다행히 옆에 쌓아놓은 모랫더미로 밀려들어가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그 때 발 뼈를 크게 다치고
골반뼈가 손상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골반뼈는 깁스를 못하니
며칠간 자세를 고정되게 가져 자연적으로 뼈를 붙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골반뼈가 손상된 정도가 아이에게 많이 아플텐데
아이가 조금도 아픈 반응이 없으니 아무래도 뇌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뇌 촬영을 하였다.
나는 꼼짝도 않하고  울지도 않고
누워 있는 아들이 너무 불쌍해서 시어머님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아들의 손을 잡고 엉엉 울었다.
뇌에 이상이 있으면 우리 웅이 불쌍해서 어떡하나? 하면서 울고 있는데
아들이 들릴듯 말듯한 작은 목소리로

"엄마! 울지마! 나도 숨도 목 쉴 정도로 아파.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몸을 움직이면 안된다고 하셨어.
울면 몸을 움직여야 하니까 울지도 못하고 참고 있는거야.
하나님이 낫게 해 주실텐데 엄마 왜 울어!"

나의 울음을 그 자리에서 뚝 그치게 했던
아들의 맑고 새까만 눈동자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
데려다 기르는 딸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아들이 먼저 학교에서 자모회를 한다며
참석여부를 표시해 가는 초댓장을 가지고 왔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참석함에 표시를 해서 주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 딸아이가  같은날, 같은 시간에
자모회를 한다는 초댓장을 가지고 온 것이다.
난감해 하는 나를 보더니
"엄마! 누나에게 가세요.
나는 엄마가 학교에 안와도 괜찮지만
누나는 만일 엄마가 학교에 안가면 많이 슬플거예요."

"그렇지만 어제 너의 선생님께 엄마가 참석한다고 표시 했잖니?"

"걱정말아요. 내가 엄마가 참석한다는 표시 지워서 이미 선생님께 냈어요."

그러고 나서도 자모회 날에 학교 정문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누나네 반까지 안내해 주던 아들은 속깊은 7살 이었다.

교회에서 중등부 회장을 뽑는 날이었다.
나는 당연히 우리 아이가 되겠지 하고
회장 선거하는 장면을 무심코 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회장 추천을 하고
추천된 학생은 자신이 회장직을 하겠다고 할 때
후보로 인정되어 투표로 들어간다.
아들의 이름이 다른 아이들보다 가장 먼저 추천되었다.
그런데 아들이 자신은 회장 후보가 되지 않겠다고 사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아이가 회장이 되었다.
나는 의아해서 왜 회장 후보를 사양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들은
자기가 회장이 되면 회장 후보로 나왔던 모든 후보들이
크게 상처를 받게 된다고 대답했다.
자기가 정정당당히 회장이 된다해도
다른 친구들은 목사님 아들이어서 회장이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것은 정당성을 잃은 것처럼 다른 친구들에게 억울함을 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후보에 없을 때는
누구나 평등한 겨룸을 했으니
설사 떨어져도 억울해 하지 않을 것이고
낙선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쉬울  것이라는 거였다.
또 자기는 회장이 아니어도 교회를 위해서
당연히 봉사할 것이니 회장직을 맡은 다른 친구가
열심히 일하게 되면 사람을 하나 얻는 것이니
교회에 더 유익하지 않느냐고 또박 또박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날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지금도 그 생각만하면
얼굴이 뜨뜻해진다.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교회에 아들과 같은 학교, 같은 반으로 배정된 아이가 있었다.
얼마나 말썽꾸러기인지 다른 학생들이
그 아이 때문에 교회에 나오기 싫다고 하는 정도였다.
다른 친구들을 때리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교회 집기나 비품들을  망가뜨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나는 그 아이가 차라리 교회에 안나오면 말썽이 안 일어날 것 같았다.
그런데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그 말썽꾸러기 진우가 모의 고사를 2등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고
그 시간 부터 그 아이가 다르게 보이는 것이었다.
말썽을 부리는 것도 나름대로 어떤 철학이 있어서 일거야.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때로 파괴적인 발산도 있어야 해. 하면서
그 아이의 평가 기준이 달라진 것이었다.
그런데 아들과 같은 반인 다른 친구에게

"진우가 행동은 좀 터프해도 공부는 잘한다면서?."

"에이 사모님! 모르는 소리 마세요.
진우 짝이 전교 1등 하는 아이거든요.
이번에 그 아이 것 다 보고 썼대요.
컨닝을 할 수 없는 월말 고사에서는 43등 했어요."

그러면 그렇겠지! 이그~
나에게서  또 다시 진우가 망가지고 있었다.

나는 저녁에 아들에게 핀잔을 주듯 말했다.

"진우 말이야. 전교 1등하는 아이 것 다 컨닝해서 2등 한거라더라.
너는 그것도 몰랐지?
전교생이 다 아는 일이라던데 너는 뭐 2등을 했다고 그 아이 칭찬이 자자했니?."

"엄마! 그 사람의 좋은 것만 생각하세요.
진우가 2등 했다고 하면 2등 한 것만 인정해 주시고 기뻐해 주세요.
어떻게 2등을 했는지 알려고 하지 마시고
설령 아셨다해도 뒤에 나쁜 부분은 생각하지 마세요.
엄마도 2등 한 것만 생각하면 진우가 착하고 이뻤잖아요.
그리고 2등을 못하는 학생이라도  교회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착하구나! 하세요."
아들은 이렇듯 매사에 좋은 것, 선한 것만 생각하면서 사는 16살의 학생이었다.

아들의 고3 때 성적이 좋았다.
나는 은근히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명문 대학에 갔다가
총신 대학 신학 대학원을 가면
사회적으로나 교계에서도 더 인정 받을 수 있다고
아들에게 종용하며 권면하였다.
그랬더니 아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엄마! 나는 하나님께 나의 최고를, 나의 최선을 드리고 싶어요.
사회적으로 교계에서 인정 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 받는 종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곧바로 총신대학으로 가겠어요."

아들은 대학 4년동안 학비 전액을 장학금으로 받았고
작년에 학사 장교 시험에 합격하여
7월 5일 군대에 입대 하였다.
같이 입대하는 아들의 친구는
장교 월급을 모아 유학 갈 비용으로 적립을 한다고 나에게
자랑삼아 말했다.

"웅아! 너도 그러렴!"

그 말에 나를 꼭 껴안으며
"엄마! 나는 엄마가 힘들어 하실 때
내가 다달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유학은 군에 다녀와서 대학원에서 공부 잘해서 장학금으로 갈테니까
한 푼도 적립할 생각하지 마시고 엄마 어려운 곳에 다~쓰세요.
엄마의 어려움을 덜어 드린다고 생각하면
저는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고 힘이 펄펄 날 것 같아요.
군대 생활도 성실히 잘 하고 올께요.

"엄마! 8명이 한 내무반을 쓰고 있어요.
기도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아서 깊은 기도는 못하고 있지만
내 생활 전체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늘 느낀답니다.
내무반에 같이 있는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이예요.
같이 예배는 못드려도 잠깐 홈 기도를 드리고 있어요.
군대 오기 전에 최중옥 집사님께서 기도 부탁을 했는데
짧게 라도 기도 잊지 않고 있어요.
엄마 책은 출간이 되었나요?
오직 하나님을 통해 출간됨을 잊지 마세요.
어서 성경책을 돌려 받아 말씀을 보고 싶고요
엄마 많이 많이 보고 싶어요."

나는 그 아들이 흘린 땀냄새가 배어 있는 옷을
오늘도 빨지 못하고 내 머리맡에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