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부평 세림 병원(구 안병원)에 입원해 있던 동안의 일이다.
입원 첫날부터 앞 입원실에서 곡소리가 매일 한차례씩 꼭 났다.
한바탕 곡소리가 끝나면 바퀴 굴러 가는 소리로 "아 영안실로 옮기나 부다" 짐작 하곤 했다.
인생 무상을 읊조리며 나또한 재작년 돌아 가신 엄마를 생각해 보며 나이드신 분일까....젊은 사람일까를........얼마나 슬플까.........왜 딸들만 우는것 같을까...............등등
세림 병원이 2차 진료 병원이라 큰 병원(3차 진료)에서 강제 퇴원(불치병?) 당하고 와 있는 환자들이 많아 돌아 가시는 분도 많은 것 같았다.
병실이 북향쪽인데 뒤에 영안실이 있었다
처음에는 밤에 밖이 너무 소란스러워 잠을 자기가 불편했다.
상권이 너무 가까워 술집이 많은가 했는데 바로 이유를 알수 있었다.
영안실에 문상객들의 음주 소란 및 집안 싸움하는 소리였다.
아침 일찍 옆 침대 아줌마가 창문을 내다보기 시작 하면 우리는 주루룩 창가로 모여 든다.
발인제를 하는 모습을 내다 보기 위하여........
이구 동성............
저 집을 아들이 몇이고 딸이 몇이고...
젊은 사람 인가보다.......
저 시점에서 왜 곡들을 않하나....
자식들이 하나도 울지를 않네.......
장지가 먼가 일찍 출발 하네......
저 양반은 그래도 리무진 타고 가네.........
죽어 한번 타는 거 소용 있나, 살아 생전 자식들이 잘 했어야지....
어제 죽어라 싸운 집인가 보다.....
상복 입은 모양이 어쩌구 저쩌구........

아침 마다 평균 3번 정도 발인제를 할때마다 창문에 매달려 콩 놔라, 팥 놔라하는  우리 입원실 환자, 보호자의 소일꺼리(?) 였다.

나이 드신 보호자들은 곡소리 못하는 요즘 사람들 흉 보고, 젊은 사람들은 요즘 누가 곡 소리 내냐며 한 차례씩 설전이 벌어진다.

나 있던 병실에서도 나 퇴원하기 전날 80세 넘은 두 할머니가 거의 강제 퇴원을 하셨다.
병원에서 특별히 할께 없다는 이유로 가정 치료를 하시라는 이유 였다.
경제력이 있어 간병인 쓸수 있는 가정은 그런데로 넘어 가는데 서로 힘든 가정은 형제들 간에 야릇한 갈등이 보여 늙은 부모맘이 편해 보이질 않았다.
며느리의 철없는 냉정함에 분노하는 시누들을 아들을 생각해 참아라 참아라 하는 시어머니 모습 보며 딸 없음에 가슴이 아려옴도 느끼며, 조그마한 우리네 인생의 축소판을 병실 안에서 느껴 볼수 있었다.

결론 또 다시 주장해도 상관 없는 ........건강은 건강할때 지켜야 한다.........
내가 아파도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을수 있게 경제력을 갖춰야 할 것이며...
건전한 정신 건강으로 긍정정인 삶을 살아야 겠다는 맘을 먹을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