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명의 초등학생, 중학생으로 구성된
선교 찬양단을 이끌고 대만으로 떠났다.
떠나는 날이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더운 7월 25일이었으니
대만의 더위는 가히 살인적이다.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도 있었지만
비행기에서도 어려운 일 없이
공항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화련으로 향했다.  

8시간의 긴 시간을 버스로 달리는 동안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교회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멀리 산 위에 아주 작은 아파트처럼 지어진 무덤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나라는 갖가지 미신을 섬기는데 집집마다
자신들의 가정신을 모시고 제를 올리기 때문에
도시 전체가 향냄새가 나는 듯했다.

화련에 도착하니
그 곳에 유일하게 서 있는 십자가!
대만 전역에서 집회에 참석 하려고 기독교인이 300명 정도 모여 있었다.

우리는 짐을 풀 여가도 없이
찬양 선교를 시작하였다.
어린 아이들은 그 무더위에도 쉬지 않고 율동을 하며 찬양을 불렀다.
처음 서울 에서의 탁상 계획은 설교를  
선교의 제일 큰 비중으로 놓고 일정 시간표를 짰는데
막상 와보니 대만에는 부족들끼리 모여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서
우리 목사님이 일본말로 설교를 해야하고
그 말은 각 부족들에게 나뉘어 통역 되어야 하기 때문에
10분 설교하는데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계획을 바꾸어 아이들의 찬양으로
예배를 인도해야 하는 어려움이 발생했다.

날씨가 너무 더웠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많은 율동과 찬양이
자칫 아이들에게 무리를 주게 되기 때문에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누구하나 지치지 않고 하루 세 번 집회에
연속적으로 해야 하는 찬양인도를 잘 이끌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무대 뒤에서 아이들의 옷을 갈아 입혀 줘야 하는 나는 탈진상태였다.
그 많은 아이들을 한복으로 입혀야 하는 때는 너무 힙들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찬양하고 나서 벗는 옷마다
너 나 할 것 없이 땀을 짜내면 주르륵 물이 흐를만큼 적셔져 있을 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300명이 두 손을 높이 들고 찬양하는 모습을 무대 뒤에서 보면서
나의 가슴은 금방 터질 것 같았다.
황색 인종의 손, 백인의 손, 검은 손...
정말 이 세상 모든 민족이 함께 어우러져 주를 찬양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찬양속에서 회개를 하고 눈물을 흘리고
감사를 하였다.

그들 중에는 산지족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산 중턱에 도르레를 매달고 그것으로
생활 필수품을 조달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생활이 궁핍한 것은 두 말 할 이유가 없다.
심지어 부모들은 여자아이들에게 시내에 나가 몸을 팔아서라도
생활비를 가져 오라고 종용할 정도란다.
그런 사람들이 찬양하면서 은혜를 받으니
선교를 위한 헌금으로 결혼 반지며
집안의 가보로 내려오는 물건까지
아낌없이 내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300명이 일주일간 먹고 쓰는 비용이 많아서
교회에서는 집회 날짜를 예정보다 줄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내가 한국을 떠날 때
나의 언니가 비상금으로 1000$를 주었다.
어린 아이들을 인솔하고 떠나는 데
외국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 끝날까지 잘 간수하면서
가장 어려울 때 쓰라고 준 돈이었다.

아직 사흘은 더 찬양 집회가 있을 것이었고
집으로 돌아기기 전에 아이들에게 시내 관광이라도 시켜 주려면
이 돈은 정말 그야말로 이름대로 비상금이었다.

그 교회를 생각하면 빨리 헌금을 내야 하겠고
이런저런 여건을 보면 끝까지 잘 보관하여야 할 것이었다.

그날 밤에 나는 주님께 이 비상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그 용도를 묻기로 했다.
그 때 내 뇌리에 이 돈이 비상금이라는 것이 계속 맴돌았다.
비상금!
그럼 우리들의 찬양선교 사역이 끝날 때까지 아무 어려움이 없이
주님이 지켜주시면 비상금은 필요없지 않은가!
그렇지! 비상금을 주님께 맡기는 거야!

그 이튿날 아침 예배에
나는 그 비상금 1000$을 그 교회에 몽땅 헌금하고 말았다.
그동안의 고민이 끝나고 속이 후련했다.
더구나 25명이 1000$ 가지고 뭘 할 수 있겠나?
어차피 어림도 없는 돈이니 차라리 헌금으로 내는 편이 훨씬 나은 듯 하였다

찬양선교 집회가 끝나는 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주님의 백성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그들과 말은 통하지 않지만
서로를 부등켜 안고 울면서 사랑과 기쁨을 나누었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귀국하기 전에 관광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부풀어 있는데
큰 실망을 안겨주게 되었다.
나는 일주일간 찬양 선교로 혼신의 힘을 다한 아이들에게
미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화련에서 타이빼이로 나오는 버스에 타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그 때 어느 젊은 분이 버스로 헐레벌떡 달려오는 것이었다.
의사 부부였던 그들은 첫날 집회에 참석하고
병원으로 돌아가 일하고
다시 마지막 날인 오늘 이 곳에 온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얼굴 가득히 고마움을 표하면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작은 지갑을 하나 주는 것이었다.
벌써 차는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 했기 때문에
나는 손을 흔들며 고맙다고 인사하고
중국 냄새가 나는 특이한 지갑만을 선물 받은 것으로 생각했다.
차가 어느 정도 움직였을 때에
무늬가 하도 특이해서 지갑을 살피던 나는
지갑 안에 가득 들어 있는 돈을 발견했다.
4000$ 이었다.
이 돈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한
찬양 선교단에게 드린다고 영어로 쓰여져 있는
작은 메모지가 돈과 함께 있었다.

나는 말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눈물만 핑 돌았다.

버스에 자리를 잡고 앉은 아이들은
"사모님! 우리들 시내 관광 하고 가는 거예요?
이젠 호텔에서 잘 수 있나요?
맛있는 한국 음식도 먹을 수 있나요?"
바닷가에 가서 수영도 하나요?

"그럼! 그럼!
시내 관광도 하고
교회 바닥이 아닌 호텔에서도 자고
맛있는 한국식 음식점도 가서 불고기에 김치도 먹자!
시우너한 바닷가에 가서 수영도 하자!
주님이 너희들 찬양 선교 잘 했다고
주님께 맡긴 비상금을 사흘 안에 4배로 불려서 되돌려 주셨구나!"

"와! 신난다!."

나는 그 이후에 비상금을 보관하는 최고의 장소를 알아 내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그 장소에 의심없이 잘 맡길 수 있게 되었다.
돈도 맡기고,
성공과 실패의 여부도 맡기고,
심지어는 내 삶의 전부를 맡겼다.
내 생명까지도 맡겼다.

그 곳은 맡길 때마다 몇 배의 풍성함으로
나에게 되돌려 주었으니
우리를 맡으시는 최고의 장소는
우리의 비상 사태의 최종 주권자이신 주님의 전능한 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