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완벽한 하나의 로고스였다.

그것은 태초이래로 하나의 변함도 없이 거기에 그렇게 존재해 있었다. 단지
나의 마음이 '교만'으로 열리지 않았기에 그것은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나의 세상은 새롭게 열리고 있었다. 장님이 눈을 뜨면 이런 마음이 될까?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종교에서 찾곤 한다.
나는 그것을 못하고 혼자서 힘들게 뱅글뱅글 돌다가, 이제사 온 세상의 평화가 나에게 찾아 왔다.
이제사 모든 것이 가치로워지고, 세상은 풍요로워 졌다.
이렇게 평화로운 가을은 나에게 있어, 20여년만에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
모순으로 보이는 세상의 모든 무질서는, 부조리로 뻥 뚤린 그 자리는
우리가 채워가야 할 '희망'이란 존재....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나는 이것을 알기위해 20년을 길게 고통스러워해야했다.
그 숱한 젊음의 세월이 너무나 아팠고 힘들었다.
그것은 가을이면 한층 더해서 해마다 나는 가을 오는 것이 두려웠다.
너무나 큰 상처는 짓무르고 문드러져
지치고 지친 나의 영혼은, 차라리 황량하고 처절한 '겨울'이 좋았다.
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느끼며 사는 者에게는 비극이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희극이다> 멋진 말이다.
그러나 나는 차라리 불행할 지라도 이 '느낌'의 소중함을 버리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feel 은 곧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그러나 이 feel 이란 것이 때로는 얼마나 가변적인가 !
일관성 없는 경거망동이 바로 이 feel 이란 놈이다.
나의 행동이 그동안 천방지축이었던 까닭은 이 feel의 속성에 묻어있기 때문이다.
어쨋던, 내게 보이는 현실에서
내가 원했던 사회정의의 이상세계에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오, 나의 유토피아여 !
많은 모순의 현상과 결점 투성이의 사람들이 모두가 정상이 아니라구 생각했다
물론 나도 많이 모자라는 사람이란걸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나쁜 사람이 아니려고는 많이 노력했다. 바른 사람이려고 많이 노력했었다.
아름다운 현상을 접했을 때, 손해볼까봐(물질이던 정신이던간에..) 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바보라구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아름다운 일은 곧 행하였다.
그러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싶었고, 그런 세상을 원했었다.
원래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많은 사람들과 멋진 대화를 하고 싶었으나,
그동안 그 누구하고도 통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늘 홀로 고독하였고,
그러한 이 세상에 내가 함께하는 것은 나 자신을 더럽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커다란 오만불순이란 말이냐? 기막히는 일이다.
드디어 오랜 절망의 끝에서,
짧은 삶을 정리하고, 하늘나라에 있는 많은 멋진 사람들을 보러 가기로 하였다.
모짤트, 베토벤, 전혜린, 이중섭,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나의 아버지.
이런 사람들을 만나는 기대에 한없이 부풀렀다.
피안으로 가기 위해 준비하다가, 나는 그래도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희망을 나에게 걸기로 했다.
현실에서의 마지막 대안으로, 많은 고뇌 끝에 정신과 닥터를 만나러 갔다.
그는 생각의 전문가가 아닐까? 하고.... 프로는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모든 통념을 접고, 닥터를 만나러 가는 일은 참 기특한 과정이었다.
나는 일주일마다 한 번씩 찾아가서 주욱 이야기했고, 닥터는 듣기만 했다.
1시간..2시간.... 나는 일주일마다 변화된 사고를, 조용조용 말했고
그는 묵묵히 듣기만 하였다. 가끔 공책에 적어내려 가면서....
때로는 기계처럼 중얼중얼 말하는 순간순간, "내가도시뭐하는것일까?지금.."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천천히 내 사고의 각도가 달라지기 시작함을 느꼈다. 그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백두산을 중국에서 바라보면 장백산이듯이..
지금 이 벌건 대낮, 미국은 한밤중이듯이....
우리는 이면을 생각하기 두려워 한다.
우리는 현재의 나만을 삶의 중심에 두기 쉽다.
그동안, 그것은 나의 엄청난 오류였다.
결코,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나온 나의 삶은, 세상의 중심은 나로부터 시작하였다.

이제 세상을 바로보지 않으면 않되었다. 그것을 바로 보려면, 내가
'나 안에서 나를 꺼내는 일'이 시급하였다. 그를 위해 깊은 명상이 필요했다.
때문에 나는 사람들과 격리시킨 나를, 멀리서 바라보는 작업을 해야했다.
그래야 내가 나를 객관화 시킬 수 있지 않을까? 고통의 사고 전환...

결코 이 우주의 중심이 '나'는 아니었다.
나는 이 자연의 부분에 불과하고.. 그렇지만
나뭇잎 하나도 커다란 나무에게 있어서 꼭 있어야 할 어떤 자리에 피어 있듯이
나도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의무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무의식 중에 속해져 버린, 해야할 의무라도
단지 내가 한 때 원하지 않았던 가치일지라도, 나는 해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무질서(?)는 필요한 것이었고, 모든 사람들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단지 나의 사고가 불균형한 것이었다.
세상은 정상인데 나만 정상이 아니었다. 아아아아아 !

피안으로 가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
아아아아, 버려진 나의 9권의 앨범은 어쩌냐?
그곳에 끼워져 있던 젊은 시절의 나의 청사진은 어디가서 찾냐?
수십권의 버려진 나의 일기장은 아까워서 어쩐다냐? 에이....나는 바보야.
이제사,
무방비로 방치해 두었던 '가정'도 소중하고, 귀찮던 가족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10년이나, 커다란 인내와 사랑으로 참아주었던 나의 남편이 거룩해보이기까지 한다.
이제는 그를 위해 정성된 사랑을 주어야겠다. 정말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동안 보기 싫었던 많은 사람들도 이젠 모두 포용할 수 있을 듯이 보인다.
또한,
그동안 가사일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억울하였는데, 그래서 대부분 남의 손에 의지하였는데,
이제는 아름다운 노동이란 걸 느끼게 된다. 가사노동은 가족사랑의 행위이다
그 노동으로 팔뚝이 좀 굵어지면 어떠랴!!

이제는 마음의 눈으로 보라라 ! !

아아아아, 행복은 깨달음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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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너무 좋네요.
저를 인사시키는 지나간 가을의 제 일기장 한 장 뜯어 올렸어요..
그동안 우리 선후배님들 어디 계신가 궁금했거등요?
요기 다 계셨군요?  이렇게 계신 줄 알았으면
제가 그동안 그렇게 처절하게 힘들진 않았을텐데요.후후
저는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아뜨리에서 그림그리고
일년이면 10번 정도 전시회를 하는,,
어떤 친구는 < 넌 왜 니자신을 혹사시키니? >그러지만
제가 제자신에게 줄 그림 하나 그리겠다는 욕심이...
그것이 과한 것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