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이 훨씬 넘은 우리 어머니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만큼이나 좋아하는 곡이 있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참일 때, 새벽이면 쓰레기 수거차에서 낭랑하게 울려 퍼지던 것,
바로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이다.

지금도 아이들을 처음 피아노 학원에 보내면 얼마 안 있어 앙징맞게 치는 곡.
이 곡은 베토벤이 주치의 딸인 텔리제의 피아노 선생이었을 때, 그녀를 위해 만든 곡이라고 한다.

아무리 아무리 가르쳐도 머리가 나빠 진전이 없는 17살의 텔리제를 지독히 사랑했던 베토벤이
"못 쳐도 잘 치는 것 처럼 보이도록" 만든 곡이 바로 이 곡으로, 베토벤이 죽은 후에 발표된 것이다.
악필인 베토벤의 T字를 후세 사람들이 E字로 알고 "엘리제를 위하여"라고 발표했단다.

역시 베토벤은 위대한 작가로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 할머니들의 마음까지 움직이고 있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을 많이 하는가?
17세의 소녀에서 50대의  유부녀까지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만을 사랑한 베에토벤.
그리고 그 독일이 낳은 베토벤.

우울하고, 멜랑꼴리한 뮌헨의 거리에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작가 전 혜린은 자살하고
싶은 욕망에 항상 시달렸고, 어쩌면 그녀는 이런 위대한 예술혼에 시달린 것은 아닐까?

동독과 통합한 독일은 지금 더욱 더 우울하고 침울하지만 예술 만은 사라지지 않고 찬란히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