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집을 떠나려면
비운 자리가 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밤을 새워 일 할 수 밖에 없었다.
일이란 끝이 없지만
그래도 이것까지는 해놓아야 한다고  
마음에서 정한 것을 다하고 나니
새벽 3시다.
이럴때 잠을 자면 여지 없이
새벽기도에 일어나지못하여 낭패를 본다.

어쩔수 없이 한 시간을 의자에 앉아서 조는 것으로 잠을 대체했다.
새벽기도가 끝나자마자 전철을 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부지런하다.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인데도
오가는 이들이 부딪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조선호 선배님과 교대역에서 7시 30분에
합류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전철안에서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좋은 만남이 될 거라고 격려해 주는 전화였다.
이른 아침에 친구의 일에 관심 갖고 보내주는 한 통의 전화가
이토록 큰 힘이 될줄이야!
나는 그런 전화를  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사랑하는 친구야! 전화 고마워!
이제부터 나도 전화는 너처럼 할께!"

조선호 선배님은 1분도 어김없이
약속시간에 교대 앞에 와 계셨다.
안성을 향해 달렸다.
한 번 안성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데도
그 때는 길에 대해 염려치 말고 쉬라고 배려해 준
경래와 연희가  연합으로 펼치는 친구 사랑 때문에 전혀 길을 익히지 못했다.
나에게 몇 번 길을 묻던 조선호 선배님은 이젠 아예 포기 했는지
약도를 차에 붙혀놓고 그 이정표대로 가기로 했나보다.
나는 속으로
"진작에 잘~하신 결정입니다."

안성 소나무 갤러리는
숲속에 묻힌 신비의 섬처럼  
고요속에서 생명의 외침을 토해내고 있었다.

우리를 반가히 맞은 것은
진용이와 까뮈!
진주는 자기 집에서 수줍어하며 입만 빵긋!

오누이같이 닮은
전원길 화백님과 최예문 선배님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아 주었다.

전번 안성 갤러리 모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의 공간으로 들어 온 것 같았다.
그 때 처음 인사를 나눈 그림들이
반가히 나를 맞으며 그동안 있었던 소소한 비밀들을
속삭여 주었기 때문이다.

삽화도 삽화려니와
동문들간의 연합과 화합이 얼마나 더 소중한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최예문 선배님과의 깊숙한 연합은
나의 생에 가장 소중한 경험이 된 것이다.
선배님은 나의 손을 잡고 조근조근 일러 주셨다.
좋은 일이여도 무엇이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진리를...
때로는 질책으로
때로는 권면으로
때로는 위로와 격려로
나의 마음을 치유해 주시던 선배님의 자애로운 지혜와 사랑!
이 세상 가장 값진 교훈이 되어 나의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어쩌면 충고도 이렇게 잘해 주시는지...
나는 충고라는 명분으로 다른이의 가슴에 피흘리게하고, 흠집내고...
내 충고를 다 듣고 나면 오히려 그 반발로 벗어나게 하는 미련함 뿐이었으니...
선배님의 충고는  마음을 풀어주고
그 마음위에 새로운 다짐을 하게 하는 진정한 사랑과 지혜의 충고 였다.
사랑만 있고 지혜가 없으면 정에 치우쳐 올바로 지표를 제시 할 수 없고
지혜만 있고 사랑은 없으면  지표는 제시 할 수 있으나 감동을 주지 못하니
그 다짐이 오래가게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동안 틈틈히 준비해 놓으신 작품들을
나의 글에 아낌없이 주시겠다고 내놓으신 삽화들...
그 삽화들은
전원길, 최예문 선배님의 사랑과 꿈과 수고를
붉은색으로 푸른색으로
때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천상의 색깔로
저마다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황홀해 하며 그림들을 보고 있는데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전원길 화백님이 순전하신 얼굴로 묻는다.
"마음에 들고 말고요.
저의 글보다 화백님의 그림 하나 하나가
이번 책을 통하여 위대한 작품으로 남겨지길 원해요."

이 소리를 듣고 있던 조선호 선배님은
"저거봐요. 은근히 욕심이 많아요." 하신다.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하던
최예문 선배님에게 나는 감히 이 말을 못했다.
"선배님! 염려 마세요.
선배님의 충고 잊지 않을께요
선배님의 진정한 사랑! 너무 감사해요
선배님의 나를 향한 기대에 결코 어긋나지 않겠어요."

병원으로 복귀해야 하는 시각에 맞추기 위해서
잠시의 쉼도 없이 차는 오산을 향해 달렸다.
조선호 선배님은 병원으로 황급히 가셨고
나는 오산 터미날에 앉아 인천행 버스를 기다렸다.

오늘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김명희 선배님 부부의 땀과 눈물과 기도의 결실인
한국 기독인 합창단 정기 연주회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옥자 선배님의 예쁜 딸
이 인 님이 협연을 한다.
지난번 발표회때 가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서
서울로 가지 않고 곧장 인천으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어디 그 뿐이랴!
그 아름다운 모습들을 나도 사진 찍어 오려고
아들에게 카메라 사용법을 미리 매우고
카메라를 챙겨 왔더니 가방이 꽤 무겁다.
사진을 제대로 잘 찍을 수 있을까?
일산 모임에서 김명희 선배님으로 부터 받은
티켓을 친구들에게 우편으로 보내 주었는데
다들 잘 오려나?

이런저런 생각은 잠시였다.
인천가는 버스가 1시간 반을 기다려도 오지를 않는다.
뙤약볕에서 앉아 있으려니 어지럽고 구토가 나려 했다.
어젯밤 잠을 한숨도 못잔 탓인가보다.

인천행 버스를 타라고 터미날에 내려준
조선호선배님에게 애궂은 화풀이를 했다.

"선배님! 인천행 버스가 1시간 반을 기다려도 안와요.
여기에 인천가는 버스 있는 것이 맞아요?"
울고 싶은 짜증을 속으로 겨우 가리고 전화를 했더니
"이상하네. 왜그러지..."  하는 선배님의 목소리 뒤로
병원의 바쁜 움직임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나는 왜 항상 이 모양인가?
아침에 병원일도 못보고 수고한 고마운 분에게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투정을 부리다니
꼭 내 생각만 한다니까!

휴게실에서 기다리면 혹시 인천행 차를 못볼까봐
줄곧 버스 승강장에 나와 있던 나는
휴게실로 들어가서 잠깐 묵상 기도를 했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해야 되는 거야 라고 가르치기라도 하듯
기도가 끝나고나니 연신 문자 메시지가 들어 왔다.

"정옥아! 좋은 연주회에 초대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 병원 직원들과 다같이 가기로 했어. 이따 봐

"사모님! 연주회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집사람과 같이 갑니다."

지금까지의 짜증과 더위가 한꺼번에 씻겨가는 것 같았다.
옆에서 나를 쳐다보는 아낙에게
"히히 다들 온대요," 뜬금없이 말하고는
나도 쑥스러워 내가 기뻐하는 이유를 말해주려고 하는데
이번엔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여기는 성남지방 검찰청입니다. 유정옥씨죠?.'

"예. 그런데요.검찰청에서 왜 저를 찾지요?,"

그 말을 할 때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뭐를 잘못했나?." 반사적으로 기억해 보려고 했다.

"유정옥님의 책을 주문하려고요.
주소를 불러 드릴테니 메모 가능하세요?
책 나오면 이 주소로 발송해 주세요.
언제 나오나요?"

메모를 하고
조금 전에 투정을 부린 것이 너무 미안해서
이것으로 만회할 양으로
조선호 선배님께 전화를 했다.

"선배님! 성남 검찰청장님이 책을 주문했어요.
통장으로 입금을 했다고 하네요.
검찰청장님이 혹시 제고 동문 아닌가요?"

"예. 제고 14기 동문입니다"

그것으로 행복이 끝난 것이 아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인천행 버스가 온 것이다.

내 옆에서 나와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아가씨가 첫번째이고
내가 두 번째로 그 시원한 인천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인천 터미날까지 달려오는
두 시간은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이내 쿨쿨! 냠냠! 쩝쩝!

인천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 30분!
병원에 입원해 계신 어머니를 잠시 뵙고
이번 연주회를 보기 위해
먼 곳에서 달려온 친구와 합류하여 연주회에 들어섰다.

신학을 공부하신 장순일 목사님(김명희 선배님의 남편)이
왜 이 길을 외롭게 지켜오고 계셨는지 그 무언의 외침이
합창단 전체의 조화된 화음으로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 놀라운 영혼의 찬양이 발표되기 까지
김명희 선배님 부부는 얼마나 많은 눈물의 기도를 올렸을까?
얼마나 수고와 땀을 흘렸을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이 길을
서로 바라보며 손 잡아 주며 살아온 부부의 사랑이
감동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그 장엄함과 엄위함과 부드러움과 강함이
높고 낮게 흐르고 있을 때
까만 드레스에 흰 장식으로 감싸 있는  
꽃처럼 아름다운 이 인님.
그가 연주하는 플릇의 고운음은
그대로 우리 모두를 천상에 올려 놓는 것이었다.
하마터면 여기서
나는 우리 인일 동문들이 자랑스러워 소리 지를 뻔 하였다.
"우리 인일이야!."

서울로 올라가는 전철을 타기 위해 바삐 전철역으로 가면서
김명희 선배님과 유옥자 선배님에게 전화를 하려는데
베터리 전원 꺼지는 소리...

"나는 왜 항상 이 모양이람!  
유정옥! 너는 준비성이 없어서 큰일이야."
이렇게 내 스스로 혼내주고 있는데
몸이 심상치 않은 신호를 보내주고 있었다.
열이 심하게 나고 금방 주저않을 것 같이 힘이 빠졌다.
전철역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서 어머니가 계신 병원으로 향했다.

저 멀리 어머니가 계신 병원의 불빛이 보였다.
그 다음은 어떻게 병실까지 갔는지 아련하고 희미하다.

"더위로 탈진했군요.
심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아요."
밤에 병실에 다녀간 의사의 진단이다.

버릇처럼 새벽에 정신이 들은 나에게
"너는 이 무더운 여름에 왜 양산도 안가지고 다니니?
더위 먹을 정도로 어디를 그렇게 다닌거야?
너 요즈음 심하게 스트레스 받는 일 있어?
어젯밤 엄마보다 너의 신음 소리가 더 큰 것이나 알아?
식사는 제 때에 하고 다닌거야?
너 어젯밤 목사님이 전화 몇 통화 했는줄  알아?
너 어젯밤 마신 물병이 몇 개나 되는줄 알아?

언니의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나 김명희 선배님과 유옥자 선배님에게 축하 전화 해야 하는데..."

"어휴! 제는 맨날 동문서답이야!"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