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날 낮에 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정옥아!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셨어.
저녁예배 끝나는 대로 곧장 인천으로 오너라.
많이 다치신 것은 아니니 걱정 하지 말고 그저 다녀가는 듯 오너라.”
언니는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내 마음에서는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비록 부모님이나 아들이 교통사고가 났어도
목회자의 움직임의 최우선은 예배이다.
예배를 드리고 난 후 인천을 향했다.
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밤11시였다.

조그맣고 하얀 나의 어머니!
어머니를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언니는 조금 화가 난 얼굴인데
어머니는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연신
“우리 주님께 감사해요! 감사해요!.” 하신다.

새벽기도에 다녀오시던 어머니는
걷는 것도 힘드셔서 동네 슈퍼마켓 옆에서
잠깐 앉아서 쉬셨다고 한다.
그 때에 후진하던 차가 어머니를 미처 보지 못하고
어깨를 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넘어지시고
그 마찰로 살갗은 다 벗겨져 피를 흘리신 것이다.

그 운전자는 차에서 고개를 삐죽 내밀고
“할머니! 어디 다치셨어요?” 의례적으로 물었고
어머니는 피를 흘리며
“어디를 다쳤는지 지금은 정신이 없네요.
이리 좀 와 보우.”

그러나 차를 세우고 오겠다던 그 운전자는 뺑소니를 친 것이다.
어머니는 한 시간 가까이 방치된 상태로
그 곳에서 신음하고 계신 것이었다.
83세의 노인이 차에 치어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차의 번호를 외웠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나보다.
한 시간 후에 슈퍼마켓 주인이 길가에 나오다가
피 흘리고 계신 어머니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겨 주었다.
어머니는 그 때까지도 뺑소니차의 소행을 얘기하지 않으셨다.
소식을 듣고 달려 간 사위에게만 귀띔을 했다.
“나를 차에 치고 도망간 사람이 아무래도 우리와 같은 동네 사람일거야.
차 번호는 인천** **** 이고 검은색 승용차였어.
나의 차 사고를 본 사람은
슈퍼에 물건을 사러 왔던 연립2층에 사는 할머니야.
그 사람을 찾으면 아무소리 하지 말고 이리로 데리고 와!
내가 할 말이 있어.”

어머니의 직감대로 그 뺑소니 운전자는
어머니와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이었다.
형부는 그 사람을 찾아내어 그의 뻔뻔한 얼굴을 보는 순간
손이 부르르 떨려서
나중엔 어찌되든지 몇 대 때려 주고 싶었다고 한다.
처음엔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하다가
목격자가 두 명이나 나서니까
잘못했다고 시인하여서 어머니와 대면하게 된 것이다.

병원에 찾아온 운전자와 그의 부인은
무릎을 꿇고 어머니에게
자신의 용서받지 못할 소행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어머니는 그들을 용서해 주셨다.
그들이 너무 고마워 어떻게 이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느냐고 하여서
어머니는 같이 교회에 나가자고 했다고 한다.
이제 그들의 차로 교회에 같이 가게 되었다고
어린아이처럼 좋아 하시고 계셨다.
언니 내외는 그들을 혼내 주지 않고
쾌히 용서해 주신 어머니의 처사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 역시
어머니의 상처를 보니
한 시간이나 피 흘리고 계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을 차에 치워 놓고 뺑소니를 치다니
그런 사람은 다시는 그런 짓 못하도록
뼈아픈 후회를 하게 해줘야 해요!”
나의 이 한 마디에 속상해서 앉아 있던 언니와 형부는
이제야 직성이 풀린 듯 더 큰 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어머니는 나의 손을 가만히 잡으시더니
“유사모! 내가 아무리 전도하려해도 늙으니까 전도를 못해.
누가 이 늙은이 말에 귀를 기울여줘야 말이지.
더구나 나처럼 늙으면 젊은이들에게는
말 한마디 붙이기가 아주 힘들어.
그러니까 주님이 그 젊은이가 나에게 뺑소니하게 해서
내 말을 꼼짝없이 듣게 했지 않아.
내가 무슨 수로 그들의 무릎을 꿇게 하고
그들이 잘못했다고 싹싹 빌게 할 수 있겠어.
더구나 교회에 같이 나가게 할 수 있는가 말이야.
부모의 간청도 자식이 들어 주지 않거든
하물며 저들이 누구관대 내 소원을 들어 주겠어.
한 영혼을 구원 하는데 주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는데
나는 다리가 잘려 나간 것도 아니요.
피흘려 죽게 된 것도 아닌데
차 사고 한 번에 두 사람이나 전도했으니
이것이 주님의 크신 은혜가 아니면 뭐야!.” 하시며
더욱 밝게 웃으신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뺑소니 한 일이 없다고 부인했고
용서를 빈 것도 진실인지 누가 알겠어요?
그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해 줄 수 없는 사람이예요.”

“이 세상에 용서 못할  잘못이라고는 없단다.
용서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을 용서하니까 그것이 바로 용서지
용서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뭐가 용서야?.”하신다.

어머니는 그들과 교회에 같이 갈 생각을 하니
심한 타박상으로 검붉게 멍든 온 몸과
붕대로 감고 있는 상처가 오히려 감사 또 감사할 따름이라고 하신다.

“네가 와서 너무 좋구나!”
대화의 상대가 없었던 어머니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지난 이야기들을 얘기하며 무척 좋아 하신다.
“얘야! 너 잠 들었니?.”
가끔씩 확인하는 어머니에게
나는 잠이 너무 쏟아지기에 계속 손을 꼬집으며
“아니요. 참 재미있어요. 나도 모르는 그런 일이 있었군요.”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기도 시간에 맞추어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나는 드디어 곯아 떨어졌다.
남편도 똑같은 질문을 한다.
“당신 자는 거야?”
“아니요. 참 재미있어요. 나도 모르는 그런 일이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