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의 휴가 **

반찬이 제법 갖춰진 가을의 저녁 밥상이었다.
부부만이 저녁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내는 오늘따라 예쁘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되어 축하할 만한 날짜를 생각해 보았다.

생일은 5월달이니 이미 지나갔고 결혼기념일은 12월 20일이니 아직  두 달이나 남았다.

요즘 들어 화장을 자주 하는 것이 눈에 띄지만 여자들이 늙어 가면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내는 몇 번이나 망설이는 듯 하다가 입을 열었다.
“여보, 미국 사촌동생한테서 또 전화가 왔어요. 우리 부부를 초청한데요.”
“나는 직장 때문에 곤란한데......”
“저 혼자 가면 안돼요? 친구와 친척들이 많은데.......“
“뭐? 혼자? 그건 안되지”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아내는 더 말이 없었다. 그리고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 예쁜 빨간 색종이가 있었다. 무심코 들여다 보니 ‘휴가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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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원]  

    -본적: 이씨 가문에서 마씨 가문으로 이적
    -주소: 이화동 산1번지 마씨네 집
    -직업: 가정부,비서,산모,접대부,가정교사,서무직원
    -이 름: 이 현 문
    -휴가기간: 20일간
    상기 본인은 마씨 집안에 취직한 이래 한번도 휴가를 받은 일이 없었으므로  처음으로 20일간 휴가를 신청하오니 마씨 가문의 가장께서는 넓으신 아량과 사랑의 마음으로  휴가를 허락하여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마씨네 내무장관 이현문 인
    -마씨네 대통령 마대복 귀하
      

‘휴가원’을 처음 읽고 ‘참 할 일없는 여자’로 생각했다가 혼자 피식 웃고는 패스보드에 넣어두고 방문을 열었다. 아내는 아침 준비에 바쁘다.
‘휴가원’에 대한 것은 전혀 모른 척했다. 나는 한마디 말도 없이 세수를 하고 밥상에 앉았다. 직장에 가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결혼생활 25년 동안 아내는 크게 아프다든지 하여 며칠씩 쉬어 본 적이 없었다. 불우 청소년 교육을 위한 잘살기 중학원 때는 주. 야간 근무로 헌신적 봉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언제 봉급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주어본 적이 있었던가.
어린애를 셋이나 출산할 때도 출산 하루 전까지 밥하고 빨래를 감당하였다. 출산 5일 후엔 으레히 자리에서 일어나 어려운 살림을 꾸려 나갔다. 아내와 나는 1주일 이상을 떨어져 있어 보지 못했다.
결혼 25년만에 처음으로 아내의 휴가를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외국 선교사는 7년만에 한 번씩 안식년이라 하여 1년 동안 본국에 가서 휴식을 취한다. 외국 선교사 식으로 한다면 아내의 휴가 기간은 3년 반으로 생각되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20일간의 휴가는 짧은 거라고 생각했다.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는 아내의 휴가원에 기꺼이 결재 도장을 찍었다. 왕복 비행기표와 용돈도 마련해 주기로 약속을 하자 그날부터 아내는 미국 친척 방문과 관광 여행으로 꿈에 부풀어 있었다.
1개월 후 아내는 드디어 김포공항을 떠났다. 20일 후면 돌아온다고 생각해도 섭섭했다. 사실 우리 부부는 잘살기 중학원, 대명 고등 공민학교 시절, 주, 야를 함께 근무하고 시간을 보냈기에 헤어짐의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내를 떠나보낸 후 집은 온통 비어 있었다. 방도, 침대도, 이불장도, 거실도, 골목도, 내 마음까지도 텅 비었었다. 그러기를 20여일, 용케도 날짜를 꼽고 있었다.
이틀 후면 돌아오려니 기다리고 있는 터에 미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였다. 아내는 안부를 묻고는 멈칫거리고 있었다.
“이틀 후에는 오는 거지요?”
“동생이랑 친척들이 자꾸 붙잡아요. 한 달만 더 구경하고 가라고요.”
“안돼요.”나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이틀 후에는 비행기 타요.” 단호한 나의 음성이었으나 아내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은 여동생 경옥이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 휴가 좀 더 주세요. 여자도 휴가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요.”
“뭐? 아내의 휴가 권리?” 나는 화가 났다.
아니, 남편보다 미국 구경이, 친척들이 그렇게 좋단 말인가?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러나 아내의 휴가 권리 운운에는 마음이 약해졌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공무원 법에 따른 휴가 기간을 따져 보았다.
휴가의 종류는 연가, 병가, 공가, 특별휴가로 구분되어 있다. 5년 이상 근무한 사람에게는 1년에 20일간의 연가를 주라는 공무원 복무규정 14조의 휴가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또 20조에 출산하는 여자는 60일간의 출산 휴가를 얻을 수 있고, 매월 생리 휴가도 1일씩 주게 되어 있었다. 아내는 마씨네 가문으로 시집와서 25년 동안 성실하게 근무하였으니까, 공무원 법을 적용하여 휴가 일수를 따져 보았다.  
-연가:25년20일=500일 -출산휴가: 자녀 3명 30일=180일, 자녀 1명 출산때 10일간의 휴가를 주었으니 180-30일=150일 -생리휴가: 연 12일25년=300일 일요일도 휴무일이 없는 근무일이었으니 1년 52일25년= 1,300일   
휴가 일수를 다 합해 보니 500일+150일+300일+1,300일=2,250일이었으니 햇수로는 6년이나 되었다.
그리고 아내의 말대로 가정부, 비서, 산모, 접대부, 가정교사, 서무직원등 전문직종으로 일하였으니 봉급을 계산한다면 천문학적 숫자라고 생각되었다.
아내의 휴가 20일에다 1개월의 연장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남편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휴가를 1개월 연장한다는 말과 함께 시 한 편을 써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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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혼의(銀婚)의 날개 위에-  
여름밤 별을 헤는 가슴으로 소녀의 밀어를 속삭인다.
흰 종이를 메꾸어 가는 연륜으로 여름의 소쩍새
가을의 부엉이 겨울의 흰 눈송이를 밟으며
사연이 쌓이고 하늘 가득히 미소가 번져오던 날
문(文)이와 복(福)이는 어제의 떨림으로
흰 손수건, 사랑의 시집 한 권 가슴 가득히 껴안으며
명동성당 성모마리아 상 앞에 우뚝 선 당신과 나 나는
백마를 탄 개선 장군으로 말죽거리 딸의 손을 잡아 주었네
낙엽처럼 사연은 쌓이고 눈보라의 밤은 쌓이고
하늘 가득히 달려오는 당신과 나의 시간들
빵 한 조각이라도 좋았고 산 6번지 토담집이라도 좋았고
관악산 깊은 골 어둔 밤이라도 좋았고
헌인능 공동묘지 옆, 하늘 이불이라도 좋은 밤,
그저 두 손으로 그저 두 마음으로 그저 두 웃음으로
그저 한 사람으로 이어진 눈물이었어라.
겸손한 나그네 되어 바위 덩어리도 헤쳐내고
땅 속 깊이 금은 보화를 찾아내는 농군의 아들 딸,
땀방울이 젖은 날들이여, 눈물에 젖은 날들이여,
때로는 돌아서서 미워하고 때로는 돌아서서 슬퍼하고
때로는 허허한 웃음으로 영혼의 깊은 날개를 펼치던 초록빛 사랑.
잘 살기로 가는 길,
박수로 맞이하던 길 이화동 언덕길이 환하던 소년들의 합창
그 길고 달려온 당신과 나
어둔 밤 기도의 손 부여잡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의 사랑으로
사랑의 문이 열리길 비는 마음들, 돌아서 보니 그리운 시간들입니다.
돌아서 보니 보고픈 시간들입니다.
돌아서 보니 외로운 시간들입니다.
돌아서 보니 사랑해온 시간들입니다.
25주년 은혼(銀婚)의 날개 위에 아직 다하지 못한 밀어를
아직 다 쓰지 못한 편지를
아직 다 그리고 못한 조각을
예술가의 영혼으로 달려가리라.

촛불 앞에 소녀의 기도로

촛불 앞에 소년의 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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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25 10:50:08
14.허인애
전영희 선배님!! 이글 이기순 선배님의 실화인가여??
감동의 물결이 넘치고 넘칩니다.
너무 빨리 지나가 한자라도 놓칠새라 눈동자의 껌벅임도 없이
읽어봅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듯~~~~
삭제 수정 댓글
2004.05.25 12:39:08
11.전영희
줄 간격을 넓혔습니다 보기 좋게
이기순선배님의 자작글인지는 모르겠구요
6회에 놀러갔다가 다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같아 퍼왔지요
여자들 마음은 똑같지 않겠나요? (:c)
삭제 수정 댓글
2004.05.25 12:40:26
3송미선
안돼!소리
잔소리 별로 들어보지않고 보낸결혼생활이
어언 35년이 되었다.
그랬다고 꼭히 편한생활이었나?
되돌아 보면
세월의 소용돌이 속에 꽤나 허부적 거리며
나름대로 애쓰고 살은 세월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남편의 넉넉한 마음을
자상하지않음으로 몰아부쳐 마음한구석엔 불만이 켜켜로 쌓였었고
때론 친구남편과 비교하는 어리석음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준 시간들의 낭비,
어쩜 말없음속에 혼자 눈물을 삼켜야 했을 외로움도 눈치 못챘던
어리석고 바보 같은 아내에게
휴가원도 안내고 일상을 훌쩍 던져버리고
떠나겠다는 나에게 역시나 말없이 미소로 흔쾌히 승낙하고 후원해 주는 나의남편
고맙다는 말한마디가
보답이 될까만서두 나는 바보처럼 말로도 표현 못하고
마음속으로 진정한 사랑을 알고 실천한
나의남편에게 무얼로 보답해야될지 모르겠다.
나의 밝고 건강한 모습자체가 사랑의 표현이라 생각하면서
한달간의 나의 유럽여행을 즐겁고 건강하게 다녀옴이
나의남편에 대한 보답이라고 약간은 뻔뻔하게 생각해본다.(:l)(:z)(:x)(: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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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25 16:08:31
제고8.한종준
잘 보았습니다.
허락없이 퍼 가겠습니다.
삭제 수정 댓글
2004.05.25 18:26:13
6.이기순
좋은 글이나 그림을 발견하면
친구들에게 물어다 나를 욕심만 앞서
인터넷 예의랑 상관없이 퍼다 올리는
나의 무례함으로 인해 오해가 생긴듯 한데
절대로 내 얘기는 아님.
삭제 수정 댓글
2004.06.01 14:35:51
12.곽경래
송미선선배님!]
유럽엔 언제 가셔요?

벌써 가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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