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돌아와 아들과 마주 앉았다.
한 달 후이면 군대에 입대 할 막내 아들은  
나와 같이 있어야 할 시간이 별로 없다 여기어서 그런지
항상 내 곁에서 맴돈다.

"엄마!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그 성도님 때문인가요?" 한다

그 성도님은 금요일 새벽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경찰이었던 그는 직장에서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고
집에서는 아내와 자식 밖에 모르는
애처가였다.

그는 교회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내와 자식은 교회에 열심히 나가라고
권면할 정도로 호의적이었다.
그가 가족들과 함께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일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것은
3년 전 폐가 사막화 되어 가는 희귀한 병에 걸린지
1년이 되어 직장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부터 였다.
그의 아내는 이 병원 저 병원
병에 좋다는 이 방법 저 방법을 수없이 찾아 다녔다.
3년의 투병 생활 속에서
산더미 같이 빚도 졌지만
아내는 남편이 집에 가고 싶다고 심하게
조를 때 외에는 병원에서 최선의 치료를 받게 했다.
그는 병상에서야
비로서 지나온 세월 속에 지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요즈음 대소변을 받아내야 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그의 아내는 호흡이 언제 끊일 줄 모른다고
화장실 가는 것도 참으며 남편의 간병을 해 왔다.

그러던 중
아내에게도 몹쓸병이 들었다.
다행히 초기여서 병원에서는 되도록 빨리 수술을 권면했다.
그러나 아내 외에는 절대로
몸을 맡기지 않는 남편을 두고
죽을지언정 수술을 할 수 없다고
아내는 끝까지 남편의 간병 자리를 지켰다.

그의 아내가 정밀 검사를 받기 위해
부득이 남편 곁을 비워야 하던 날.
나는 그의 일일 간병사가 되었다.

그는 평소 예의 바르고 깔끔한 성격에다가
나와 동갑나기이다.
거기다가 여자인 나에게
좀처럼 자신의 몸을 맡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입이 쓰다고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누워서 음식을 받아 먹으려면
한 숟갈 먹을 때마다
산소 마스크를 떼었다 다시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저에 음식이 남아 있어도 최대한 짧은 시간에
음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흘리게 되고
물기가 있는 것은 얼굴에 여지 없이 흐른다.
그런 모습을 나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먹어야 기력을 차리지 않겠는가?

"아~ 입 벌리고 한 숟갈 더 먹으면 5년은 더 살지요"
밥 안 먹고 투정하는 어린아이 달래듯
달래면서 밥 반 공기를 먹여 주었다.
밥을 먹으며 조금 마음의 문을 연 그는
나에게 자신의 앙상한 몸을 맡겨
대소변도 편안히 보았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는
남편의 이 모습을 보며
"사모님! 사모님께 우리 선영이 아빠 맡기고
수술 받을께요.
선영 아빠는 나 외에는 간병사는 물론이고
누구 앞에서도 저렇게 편안히 몸을 맡기지 않으려 했어요.
그러니 어떻게 제가 수술을 마음 놓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선영 아빠가 사모님이 나만큼 편하대요."

마침내 아내의 수술과 회복 기간동안
내가 그의 간병을 맡기로 상의가 되어
6월 3일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그 기간이 차기 전
엊그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입관 하기 직전
얼굴에 산소 호흡기를 끼고
그토록 모진 고통을 하던 그의 얼굴은
마치 행복한 꿈을 꾸며 자고 있는 사람과 같이 평온해 보였다
내가 하는 말은 다 재미 있다고
나를 보기만 해도 웃던 그의 얼굴은
금방 웃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아~ 입 벌리고 한 숟갈 더 먹으면 5년을 더 살아요."하면
마치 그 날처럼 밥을 받아 먹을 것 같았다.

작아질대로 작아진 그의 몸이
좁은 관 안에 누울 때
그가 나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모님! 나처럼 돌봐 줄 사람 없는
불쌍한 병자들을 돌봐 주세요!
간병하는 것 별로 어렵지 않아요
저한테 한 것 처럼 하면 되요."

언젠가 나는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식모살이를 갔었다.
그 식모살이를 통해 주님은
나를 충실한 식모감으로 인정하였는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의 시중을 들 수 있는
식모일을 맡기셨었다.
그런데 이번엔 간병사 일을 맡겨 보신 것 같다.
식모살이 때는 오디션 기간이 보름 이었는데
이번 간병사 오디션은 하루 뿐이라니!

나는 십 수년 전에 말기 암환자 무료 요양소를 짓고
생활이 너무 어려워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환자들을 돌보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그것을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심으로
그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임을 확증해 주셨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터전도 주셨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 둘...
암으로, 불치병으로 보내면서
하루 빨리 그 일을 해야 할 것임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은 "엄마! 엄마는 지금도 더 할 나위 없이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오십세가 다 되어 시작하면 그 성과가 얼마나 있겠어요?"

"웅아! 나는 그저 돌을 던질 뿐이다."

"돌을 던져요?  무슨 뜻이예요?

"내가 어렸을 적 나의 어머니는
앉으나 서나 무시로 기도 하셨단다.
그 때마다 나는 어머니에게 투정을 했지.
어머니! 큰 이모는 기도 안하고도 부자로 잘 살고
둘째 이모는 고아를 데려다 기르지 않아도
하는 일마다 잘 되는데
어머니는 매일 기도하고 어려운 살림에
고아도 데려다 기르는데
우리는 부자도 안되고 잘 되는 일이 무언데요?
하면서 어머니의 기도와 헌신을 묵살했었지.
그 때에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간척지를 만들려면 바다물에 수없이 돌을 던진단다.
돌을 던지고 또 던져도 여전히 바다물이 넘실대지
그것만 보면 그 곳이 뭍이 되리라는 생각은 아무도 못한다.
그러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돌을 던지노라면  
어느날 그 곳은 바다가 변하여 땅이 되는 것이지
나는 너희들과 너희들의 후손을위해
돌을 던질 뿐이다.
내 눈 앞에 여전히 바닷물이여도
언젠가는 너희들이 밟을 땅이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의 돌 던지기는 여든이 훨신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단다."

나는 내 인생중  어머니가 던지신 돌이 어느덧
나를 물에 빠지지 않도록 떠 받쳐 주는 것을 수시로 경험한다.

그렇다!
나역시 내 눈 앞에 어떠한 성과로
나타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말기 암환자들을 위해 돌을 던질 뿐이다.
내 인생이 다 바쳐지고 난
나의 마지막 날에도
아직 수면 위에 아무런 흔적도 나타나지 않는
미미한 것이여도 좋다.
갈 곳없고 보살펴 줄 사람 없는
말기 암환자들의 호스피스 일에 돌을 던지노라면
언젠가는 그들이 편히 밟을 땅으로 드러날 것이다.

아직 나의 말을 이해 할 길 없는 아들은
언젠가 나의 이 말을 절실히 경험하게 되고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아들이 눈 앞에 나타난 성과를
지적하면서 기도와 남을 위한 헌신이
대체 무어냐고 묻는다면
아들 역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너를 위하여 돌을 던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