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부터 꾸물꾸물한 날씨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여행가는 내마음은 들떠 있었다.

가이드의 도움으로
무사히  비행기에 탑승한 후
안전한 여행과 좋은 날씨를 기원하며
친구들과의 수다는
어느새 훌쩍 2시간이 흘러
상해 공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넓은 공항청사는
추줄 추줄 장마때 처럼 내리는 비탓인지
좀 답답하고 지저분한 인상이었다.

대기한 버스에 올라타고
홈피에 올릴 그림을 구상하며
기억속으로 저장하는 동안
도심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내다본 상해는
우리나라와 별반 큰 차이 없어 보이는데

도심에 들어선 순간
어마어마하게 높이 솟은 빌딩과 거대한 고층 아파트는
상상을 초월 경악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보다  몇10년 뒤진
경제후발국이라는 고정 관념을 여지없이 깨버리는 것이었다.

또한 더욱 놀라운것은 5층의 고가차도와 고속철은
막힘없이 교통을 소통 시키고 있고
그사이로 끊임없는 자전거 햏렬은
질서가 없어 보이는데도
전용 도로가 있어
거대한 상해의 교통 체증은 없어보이는듯 했다.

상해임시정부 청사를 관람하며
선조들의 항일정신과 조국애를 음미하면서
창밖으로 내다본 골목은
더럽고 초라하기 이를때 없는데
거대한 빌딩에 압도되어서인지
가련해 보이는것은
모든 도시가 그럴진데
나만의 느낌인가?

윤봉길의사가 의거했던
노신이 묻혀있다는 홍구공원을 지나
상해를 동서로 관통하는
황포강 관광은 사건의 발단이었다.

강을 사이에두고 서쪽은
160 여년전 열강의 각축으로
아편전쟁을 치루면서 지어진
고색창연한 유럽풍 건물은
그위모도 크려니와 아름답기 이를 때없고

동쪽은 지금 개발중이라는데
세계에서 두번째 높다는 동방명주탑을 중심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현대식 건물들이
우리나라의 강남을 연상시켰다.

약10분간의 자유시간을 주며
황포강변을 관광하는데
내 발걸음은 바쁠수 밖에 없었다.

한정된 시간내에
상해의 아름다움을 함축해서 사진에 담아야겠는데
이리저리 카메라 앵글을 맞추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다된듯하여
약속된 장소로 가보니
일행이 하나도 눈에 띠지않는것이었다.

하루 200 만명이라는 관광객이 드나든다는
인파속에 일행이 금방 눈에 안띨 뿐이라 생각하며
느긋한 마음으로 조금 늦어지나보다하며
꼼짝않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가이드 2명도 일행도 나타나지않고
시간은 40분넘어 지나가고 있었다.

아마 내가 찾아오도록 기다리는 모양이라 생각이 든 나는
길건너 주차장소를 가는데 지하도 입구부터 달라지는게 심상치 않았다.
나와보니 모건 스텐리 부터 어마어마한 은행들이 밀집해 있는게아닌가?

이게 아니다 싶어
길건너 아까 장소로 가서 화단 둔턱위 높은 장소에
장승처럼 서있는데
시간이 20분 이상 지나고 날은 어두워 오니
이젠 슬슬 겁이 아닌 공포의 차원으로 돌입하게 된 나는
숨통이 막히면서
진땀이 나기 시작하는데 속수 무책이었다.

깃발을 들고 현지가이드가 나타난 것은
그후로도 시간이 꽤 흘렀는데
지하도 입구에서 눈에보이기 시작한 가이드에게
소리지르며 구원의 손을 마구 흔드는 나와  한참만에 눈이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얼싸 안고 싶은심정이었는데
너무나 놀란 가이드 식은 땀을 흘리는것이
나보다 더 놀란 모양이다.

이야기인 즉슨
내가 모이라는 장소에서 15 미터 떨어진곳에
넋 놓고 기다리는동안
똑똑한 (?) 미선인
버스안에서 미리 기다릴것이라며 기다리지도 찾지도 않고
가버렸던것인 모양이다.
내가 없으니 놀란것도 마찬가지
남자일행은 행길에서
친구들은 골목에서
"미선아~ 미선아~~"
부르며 찾고들 야단이었는데
내가 가이드랑 버스에 도착하니
상해 뒷골목은 미선이부르는 소리가
합창처럼 진동하고 있었다.

이로인하여
정작 야단 맞아 마땅한 나를
꽃본듯이 님 본듯이 반가워들 하는데
쥐 구멍 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정에 차질이 생겨
팔짜에도 없는 상해 야경을 볼수있게 되었는데
정부가 무상으로 주는 전기로
건물마다 뿜어내는 야경은 그아름다움과  화려함이
황홀 자체 였다.
내탓이 아닌 내덕(?)으로 하게된 야간 관광을 두고
이것을 인생의 아이러이라고 말할수 있지 않을까?

참으로 진땀나기 시작하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