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시간에 즈음하여 터미널에 도착한 아비는 둘째가 오기를 기다렸다.
      마침 부산에서 비슷한 시간에 첫째도 터미널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베란다 창문에 고개를 삐끔히 내민 친정엄마와 나는
      아직도 터미널에서 떠나지도 않은 3 남자를 기다렸다.

      아파트정문을 들어오고 있다는 핸펀을 받고
      슬립퍼를 신은채 아파트 마당으로 나갔다.
      2동 코너에서 3남자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나타났다.
      가슴이 터억~ 숨을 쉴수가 없었다.

      " 필승~ 이병 *** 휴가.........."
      짜식~ 엄마 보고 달려들어야지 거수 경례부터 하다니.

      비록 편지를 들고 나 혼자 눈물을 흘린 날은 많았지만
      한 번도 아이들 앞에서 우는 모습은 보여준 적이 없었으므로
      내 딴에는 결코 우는 모습은 안 보이리라고 다짐했었다.

      그 결심은 온데간데 없고
      거수 경례 붙이는 두째의 품에 안겨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소리까지 내면서 엉엉~
      아파트 마당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엉엉~

      " 엄마는..다들 가는 군대인데 왜 우세요 "
      저도 눈물을 흘리면서 어른 같이 철 다든 소리를 하는 바람에
      그냥 소리내서 엉엉~ 둘이 울었다.
      마디에 매듭이 생겨 거칠거칠해진 손이 안쓰러워 눈물이 그치지를 않았다
      내 살점으로 만든 내 자식의 손을 이렇게 만드는 군대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옆에서 멀뚱 서있는 첫째가 눈에 들어온 것은 잠시 후였다
      첫째랑 세째랑은 공부하러 기숙사로 떠나서 그런지
      염려는 되고 보고도 싶었지만 둘째 만큼 가슴이 터지는 느낌은 없었다.

      공부도 둘째가 3중에서 가장 뒤졌고
      가운데 자녀들이 다른 형제들에 비해 느끼는 상대적인 애정결핍증상(그건 순전이 본인생각)때문에
      심술맞은 투정을 많이 하여 자라면서 엄마에게 꾸중을 도맡아 맡았었다.

      여동생과 싸우고  여동생 운동화에 침을 뱉어 놓기
      형친구는 자기 친구라고 형친구들이 오면 거기 끼어서 방훼놓기
      미술 숙제를 안하고 여동생이 그려논 미술과제를 가져가기
      아마도 가장 많이 꾸중을 들었던 것은 본인도 기억할 것이다.

      엄마아빠의 관심을 더 받고자 엄마아빠에 부비고 기대고  떨어지지를 않았다.
      제발 좀 떨어져 달라고 호통호통했던 둘째의 별명을 " 찐뜨기" 라고 불렀었는데
      사춘기를 지나면서 살만 닿아도 펄쩍 ...싫은 내색을 하여 엄마가 오히려 섭섭해 하였었다
      찐드기라는 별명은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했지만
      100일 휴가 나온 그날
      우리는 찐드기가 되어 서로 부둥켜 안고 떨어지지를 않았다.

      집에 들어와 할머니에게 큰절을 하고
      할머니 부둥켜 않고 또 한번 눈물바다가 되었었다.
      눈물잔치가 끝난 뒤
      6명이 4달만에 가져보는 저녁시간은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차린 것은 넉넉치 않아도 성찬이 따로 없을 만큼 웃음과 행복이 넘치는 시간이 되도록
      그날의 호스트는 당연 둘째였다.
      4박 5일동안 소화제까지 동원하여 미련할 정도로 먹어대는 아들은 가족들과 꿈같은 밀월을 즐겼다.

      첫날의 군기가 들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군기빠진 군인이 되어 할머니에게 어리광 피우는 모습에서
      겨우내 마음 아팠던 그리움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채
      영낙없는 예전의 귀여운 찐드기 내 아들이 되어 있었다.

      해병군가를 해병박수치며 불러 제끼는 통에
      껄껄껄 모두가 따라서 박수치며 웃기는 했지만
      웃음이 왜 그리 허탈했을까

      저녁마다 군대의 행정관에게 하루 일과를 무사히 잘 보냈노라고 전화를 하였다
      배탈난 것까지 보고하는 것을 옆에서 듣자니 상관과 가족처럼 지내는 것같아 마음이 많이 놓였다
      군인도 같은 군인이냐고 해병의 자부심까지 가진 것을 보면
      제대로 철저히 세뇌(?) 되었나 보다^^

      제대하면 손도 다시 원상태로 되고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 치던 아비까지
      둘째가 군화를 신는데 온 가족이 그 옆에 앉아
      끈을 매는 것을 지켜보며 한마디씩...
      초보 군인가족들의 우스꽝스런 모습들이었다.

      그 아들..
      이제는 다시 귀대하여 잘 하고 있겠지
      24개월 중 가장 힘든 4개월을 보냈으니
      무사히 남은 20개월도 잘 적응하여 제대하기를 바래본다


군복이 어설픈 왼쪽이 둘째
제복이 2년차라 제법 세련되어진 오른쪽이 첫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