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할머니들이 많이 참석하는 구역에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길은
돈나물이 파릇 파릇 솟아 오르고 있었다.
"아! 돈나물이네!
내가 살던 안중에서는
봄이 오면 넓은 들판에 나가
봄나물을 캐곤 했는데
이젠 봄나물을 캐기는 다 틀렸어."
한 할머니가 너무 아쉬운 얼굴로
아파트 길가에
어렵게 비집고 나오고 있는 돈나물을 보면서
서글퍼 하신다.
그 분은 수 십 만 평의 논과 밭을 가지고
농사를 짓다가
남편이 암에 걸려
그 많은 논 밭을 다 팔아 치료비로 썼지만
남편은 끝내 돌아 가시고 말았다.
남아 있는 재산이라고는
시골 집 하나 뿐이었는데
시골에서 논밭없이 어떻게 살까 싶어
정든 시골집을 정리 하였다.
그 돈을 가지고 서울에 와서 들어 올 수 있는 곳이
이 곳 뿐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관절염으로 다리가 아파서
어디 먼 곳 나들이는 엄두도 못낸다.
다른 할머니들도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봄이 오는 데
넓은 들에 나가
봄나물 한 번 실컷 캐 보았으면 좋겠어." 하신다.
"목사님께 가서 말씀드려서
봄나물 실컷 캐게 해드릴께요."
아뿔싸!
나도 모르게 또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동안 노인들을 위한 나들이는
엄청난 댓가를 치뤘다.
목사님은 노인들이 자식들의 나들이에 밀려
가보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고
집안에만 갇혀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봄철과 가을이면 노인들을 모시고
산과 들로 나들이를 갔었다.
노인들의 나들이는 너무 어렵다.
노인들은 우선 거동이 불편하여
일대일로 부축해 드려야 한다.
차가 설 수 없는 곳에서
화장실에 가시겠다고 막무가내로 졸라댄다.
그 시간의 간격이 너무 잦아
차 운전에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중에 제일 큰 문제는 음식을 잡수시는 일인데
노인들에게는 음식이 남는 일이 없다.
음식을 무한정으로 상 위에 놓아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먹든 안 먹든
갖고 온 가방에 집어 넣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잡수셔야 하는 구운 고기는
양에 넘치게 잡수시다가
급체하거나 토하시기가 일쑤다.
몸이 허약한 분은 멀미를 심하게 하신다.
어린 아이들보다
더 어려운 것이 노인들 나들이다.
가을에 밤을 주우러 마석에 갔던 때 였다.
산의 얕은 곳으로 경계를 알려주고
세 명씩 한 조로 묶어
3시까지 점심을 먹은 자리로 돌아오시도록 하였다.
그런데 조에서 이탈한 한 노인이
한 시간이 지나도록 오시지 않는 것이다.
다같이 소리를 모아 이름을 부르고
호각을 불고
확성기로 불러봐도 안되어서
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이 온 산을
헤메어 찾느라 녹초가 되었다.
초죽음이 되어 겨우 찾았더니 하시는 말씀은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 밤을 주워야 더 줍는단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집에 돌아온 할머니가 음식을 토하셨다고
아들과 며느리가 교회로 항의를 하러 온 것이다.
어떤 음식을 잘못 드렸기에
할머니가 병이 난 것이냐며
병원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모든 책임을 지라고
비난이 빗발쳤다.
노인들 나들이 후에
이렇게 난감 한 일은 그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
그것을 감수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기세가 등등하던 아들과 며느리의 항의가
웬일인지 조용해졌다.
알고보니 병원에 가서 진찰 한
그 할머니의 병명은 말기 암 이었다.
그 할머니는
우리가 병원에 심방을 가면
밤 줍던 그 날의 나들이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 하셨다.
"얘 아범아! 목사님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그 산에 갈 수 있었겠니?
밤을 줍고 돌아서면 또 뻘건 밤이 툭툭 떨어졌단다.
내가 가장 많이 주웠을걸.
내가 시골을 떠나 아파트로 이사와서
처음 나갔던 나들이란다."
그 할머니에게 밤 주우러 갔던
그 날의 마석 나들이는
첫 나들이 이었고 마지막 나들이였다.
할머니는 돌아가시면서
당신의 장례를 목사님에게 맡겨 달라고 유언을 하셨다.
전라도 순창 선산에 어머니를 묻고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목사님!
어머니가 그토록 밖에 나들이 하고 싶으셨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우리들 끼리만 돌아 다녔어요.
어머니는 밤 주우러 갔다 온 이야기를
매일 수 없이 하시면서 그렇게 행복해 하셨어요.
목사님! 우리들의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내 어머니 가슴의 한을 목사님이 풀어 주신거예요."
아들은 울며 울며
어머니에게 무심했던 불효를 뉘우쳤다.
이렇듯 노인 나들이는 항상 조심 스러운 것인데
그 돗나물 때문에 덜컥 약속을 했으니 어쩐담!
나는 무슨 일이든 너무 뚜렷하게 기억을 해서 탈인데
왜 이럴때 아무 생각이 안나고
할머니들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 생각만 나는 것일까?
아마 주님은
나들이 가고 싶어하는 할머니들의 소리만 들리시나보다.
혹시 그 분들 중에
이번 나들이가
마지막 일지도 모르는 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 나들이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머리에 활처럼 휙휙 날아와 박힌다.
전날의 어려웠던 기억들을
난감했던 처지들을 어느새 다 잊어버리고
또 나의 지병이 도지고 말았다.
봄이 왔기 때문에...
돈나물 때문에...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길은
돈나물이 파릇 파릇 솟아 오르고 있었다.
"아! 돈나물이네!
내가 살던 안중에서는
봄이 오면 넓은 들판에 나가
봄나물을 캐곤 했는데
이젠 봄나물을 캐기는 다 틀렸어."
한 할머니가 너무 아쉬운 얼굴로
아파트 길가에
어렵게 비집고 나오고 있는 돈나물을 보면서
서글퍼 하신다.
그 분은 수 십 만 평의 논과 밭을 가지고
농사를 짓다가
남편이 암에 걸려
그 많은 논 밭을 다 팔아 치료비로 썼지만
남편은 끝내 돌아 가시고 말았다.
남아 있는 재산이라고는
시골 집 하나 뿐이었는데
시골에서 논밭없이 어떻게 살까 싶어
정든 시골집을 정리 하였다.
그 돈을 가지고 서울에 와서 들어 올 수 있는 곳이
이 곳 뿐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관절염으로 다리가 아파서
어디 먼 곳 나들이는 엄두도 못낸다.
다른 할머니들도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봄이 오는 데
넓은 들에 나가
봄나물 한 번 실컷 캐 보았으면 좋겠어." 하신다.
"목사님께 가서 말씀드려서
봄나물 실컷 캐게 해드릴께요."
아뿔싸!
나도 모르게 또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동안 노인들을 위한 나들이는
엄청난 댓가를 치뤘다.
목사님은 노인들이 자식들의 나들이에 밀려
가보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고
집안에만 갇혀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봄철과 가을이면 노인들을 모시고
산과 들로 나들이를 갔었다.
노인들의 나들이는 너무 어렵다.
노인들은 우선 거동이 불편하여
일대일로 부축해 드려야 한다.
차가 설 수 없는 곳에서
화장실에 가시겠다고 막무가내로 졸라댄다.
그 시간의 간격이 너무 잦아
차 운전에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중에 제일 큰 문제는 음식을 잡수시는 일인데
노인들에게는 음식이 남는 일이 없다.
음식을 무한정으로 상 위에 놓아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먹든 안 먹든
갖고 온 가방에 집어 넣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잡수셔야 하는 구운 고기는
양에 넘치게 잡수시다가
급체하거나 토하시기가 일쑤다.
몸이 허약한 분은 멀미를 심하게 하신다.
어린 아이들보다
더 어려운 것이 노인들 나들이다.
가을에 밤을 주우러 마석에 갔던 때 였다.
산의 얕은 곳으로 경계를 알려주고
세 명씩 한 조로 묶어
3시까지 점심을 먹은 자리로 돌아오시도록 하였다.
그런데 조에서 이탈한 한 노인이
한 시간이 지나도록 오시지 않는 것이다.
다같이 소리를 모아 이름을 부르고
호각을 불고
확성기로 불러봐도 안되어서
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이 온 산을
헤메어 찾느라 녹초가 되었다.
초죽음이 되어 겨우 찾았더니 하시는 말씀은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 밤을 주워야 더 줍는단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집에 돌아온 할머니가 음식을 토하셨다고
아들과 며느리가 교회로 항의를 하러 온 것이다.
어떤 음식을 잘못 드렸기에
할머니가 병이 난 것이냐며
병원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모든 책임을 지라고
비난이 빗발쳤다.
노인들 나들이 후에
이렇게 난감 한 일은 그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
그것을 감수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기세가 등등하던 아들과 며느리의 항의가
웬일인지 조용해졌다.
알고보니 병원에 가서 진찰 한
그 할머니의 병명은 말기 암 이었다.
그 할머니는
우리가 병원에 심방을 가면
밤 줍던 그 날의 나들이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 하셨다.
"얘 아범아! 목사님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그 산에 갈 수 있었겠니?
밤을 줍고 돌아서면 또 뻘건 밤이 툭툭 떨어졌단다.
내가 가장 많이 주웠을걸.
내가 시골을 떠나 아파트로 이사와서
처음 나갔던 나들이란다."
그 할머니에게 밤 주우러 갔던
그 날의 마석 나들이는
첫 나들이 이었고 마지막 나들이였다.
할머니는 돌아가시면서
당신의 장례를 목사님에게 맡겨 달라고 유언을 하셨다.
전라도 순창 선산에 어머니를 묻고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목사님!
어머니가 그토록 밖에 나들이 하고 싶으셨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우리들 끼리만 돌아 다녔어요.
어머니는 밤 주우러 갔다 온 이야기를
매일 수 없이 하시면서 그렇게 행복해 하셨어요.
목사님! 우리들의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내 어머니 가슴의 한을 목사님이 풀어 주신거예요."
아들은 울며 울며
어머니에게 무심했던 불효를 뉘우쳤다.
이렇듯 노인 나들이는 항상 조심 스러운 것인데
그 돗나물 때문에 덜컥 약속을 했으니 어쩐담!
나는 무슨 일이든 너무 뚜렷하게 기억을 해서 탈인데
왜 이럴때 아무 생각이 안나고
할머니들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 생각만 나는 것일까?
아마 주님은
나들이 가고 싶어하는 할머니들의 소리만 들리시나보다.
혹시 그 분들 중에
이번 나들이가
마지막 일지도 모르는 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 나들이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머리에 활처럼 휙휙 날아와 박힌다.
전날의 어려웠던 기억들을
난감했던 처지들을 어느새 다 잊어버리고
또 나의 지병이 도지고 말았다.
봄이 왔기 때문에...
돈나물 때문에...
2004.04.07 07:44:06
내 한분의 부모님에게도 해드리지 못하는 이런 큰사랑을 실천하시는
유정옥 선배님!!!!
정말 가까이 산다면 가슴으로 같이 실천하고픈 아침이예요.
많은 사람들과 늘 함께 사는것 같아도 진정 어려운 시간 함께 하는
이런 큰사랑은 보석과도 바꿀수 없겠지요.
보석같은 삶을 사시는 유정옥 사모님께 저의 작은맘을 이아침 보내드립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f)(:l)(:f)
유정옥 선배님!!!!
정말 가까이 산다면 가슴으로 같이 실천하고픈 아침이예요.
많은 사람들과 늘 함께 사는것 같아도 진정 어려운 시간 함께 하는
이런 큰사랑은 보석과도 바꿀수 없겠지요.
보석같은 삶을 사시는 유정옥 사모님께 저의 작은맘을 이아침 보내드립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f)(:l)(:f)
2004.04.07 09:29:08
시어머님 홀로 두고 설악산 놀러간적이 있었어요. 2뱍3일 내내 비만 맞고 후진하다가 차도 찌그러졌었지요. 마믐은 내내 찜찜하고..
어제는 여동생이 전화했어요. 언니네 동네 여의도가 요즘 벚꽃놀이 한창인데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놀러가겠다고... 저는 오즘 중요한 일로 몹시 바빠 벚꽃도 안중에 없었는지라, 가만 있어봐봐봐...그러고는 조금은 귀찮아 했는데... 유사모님 글읽고 뜨끔하여 만사제치고 내일 11시 대방역앞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벚꽃구경하고 집에와서 점심먹고 부모님과 내일 하루 즐겁게 보내겠어요. 투명한 벚곷그늘아래 부모님 다정히 앉혀 사진도 찍어드리고... 낼모레 여든이신데...
어제는 여동생이 전화했어요. 언니네 동네 여의도가 요즘 벚꽃놀이 한창인데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놀러가겠다고... 저는 오즘 중요한 일로 몹시 바빠 벚꽃도 안중에 없었는지라, 가만 있어봐봐봐...그러고는 조금은 귀찮아 했는데... 유사모님 글읽고 뜨끔하여 만사제치고 내일 11시 대방역앞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벚꽃구경하고 집에와서 점심먹고 부모님과 내일 하루 즐겁게 보내겠어요. 투명한 벚곷그늘아래 부모님 다정히 앉혀 사진도 찍어드리고... 낼모레 여든이신데...
2004.04.07 20:39:06
노인들한테 잘 해 드리기가 참 어려운 일인데.......
좋은 글 잘 읽었어요. 나도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숙희씨. 벗꽃구경 잘 하고 즐거운 하루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요.
좋은 글 잘 읽었어요. 나도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숙희씨. 벗꽃구경 잘 하고 즐거운 하루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요.
2004.04.07 22:49:24
할머니들의 돗나물 나들이가 제발 쪼금은 순조롭기를~~
기도 할 줄 모르지만 빌어드리고 싶습니다...
나도 숙희 후배처럼 지금 양 쪽 가슴이 따끔 따끔 찔리고 있어요..
한 쪽은 친정 어머니에게~~한 쪽은 시아버님께~~ ::$
영희 언니의 꽃구경. 고속철 여행도 축하 드려요~ 봄이란 얼마나 축복의 계절인지요~~(:f)(:f)
기도 할 줄 모르지만 빌어드리고 싶습니다...
나도 숙희 후배처럼 지금 양 쪽 가슴이 따끔 따끔 찔리고 있어요..
한 쪽은 친정 어머니에게~~한 쪽은 시아버님께~~ ::$
영희 언니의 꽃구경. 고속철 여행도 축하 드려요~ 봄이란 얼마나 축복의 계절인지요~~(:f)(:f)
2004.04.07 23:21:42
14기 최인옥님,허인애님.
만나서 반가와요.
10기 양숙희 선배님.
부모님들이 무척 행복해 하실거예요.
"나는 괜찮다. 먹기 싫다. 가기 싫다."고 하셔도
우리는 자꾸 권하고
자식이 함께 있기만 해도 좋아하시거든요.
행복한 꽃구경 이곳에서도 화사하네요.
3기 조영희 선배님.
브라질로 가시게 된 것 같아 너무 서운 하네요.
그 곳에 가셔도 인일의 홈페이지에서는
항상 만나게 되겠지요.
어느 곳에 머무시든지 강건하시길 기도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많이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 아시지요?
6기 이정기 선배님.
선배님의 기도에 힘입어 이번엔 잘 다녀 올 것 같아요.
4월 12일(월)로 날짜를 잡았는데
할머니들은 소쿠리는 얼마나 큰 것을 가져가야 되냐고
비닐 봉지는 몇개를 가져가야 되냐고
벌써 부터 신바람이 나셨답니다.
저는 인원수 대로 츄리닝을 예비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빠뜨리지 않고 잘 챙겨야 할텐데...
만나서 반가와요.
10기 양숙희 선배님.
부모님들이 무척 행복해 하실거예요.
"나는 괜찮다. 먹기 싫다. 가기 싫다."고 하셔도
우리는 자꾸 권하고
자식이 함께 있기만 해도 좋아하시거든요.
행복한 꽃구경 이곳에서도 화사하네요.
3기 조영희 선배님.
브라질로 가시게 된 것 같아 너무 서운 하네요.
그 곳에 가셔도 인일의 홈페이지에서는
항상 만나게 되겠지요.
어느 곳에 머무시든지 강건하시길 기도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많이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 아시지요?
6기 이정기 선배님.
선배님의 기도에 힘입어 이번엔 잘 다녀 올 것 같아요.
4월 12일(월)로 날짜를 잡았는데
할머니들은 소쿠리는 얼마나 큰 것을 가져가야 되냐고
비닐 봉지는 몇개를 가져가야 되냐고
벌써 부터 신바람이 나셨답니다.
저는 인원수 대로 츄리닝을 예비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빠뜨리지 않고 잘 챙겨야 할텐데...
2004.04.08 18:34:10
화창한 한낮에 화사한 벚꽃길도 걷고 한강에 가서 유람선도 탔답니다.
날씨가 너무 좋더군요. 엄마 덕분에 저도 모처럼 산보하였습니다.
벚곷터널속에서 사진도 찍고..
그런데 오늘따라 엄마키가 유난히 작아보였습니다.
4월 21일이 외삼촌 생신인데 시간되면 같이 가자고 하셔서
그러겠다고 했더니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유사모님 12일 소풍 즐겁고 신나는 날 되시길 기도드릴께요.
좋아하시는 할머님들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기쁨 충만한 부활절 보내시고요.
조영희선배님 저번 중앙역모임에 배신때린거^^ 너무 죄송해서
요번 토요일에 가뵙는단 말 못 올렷지만
남편친구들이 벚꽃구경 온다는것도 짤랐답니다.
남편들끼리 놀으라고 하고 압구정역으로 달려갈께요.ㅋㅋ
날씨가 너무 좋더군요. 엄마 덕분에 저도 모처럼 산보하였습니다.
벚곷터널속에서 사진도 찍고..
그런데 오늘따라 엄마키가 유난히 작아보였습니다.
4월 21일이 외삼촌 생신인데 시간되면 같이 가자고 하셔서
그러겠다고 했더니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유사모님 12일 소풍 즐겁고 신나는 날 되시길 기도드릴께요.
좋아하시는 할머님들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기쁨 충만한 부활절 보내시고요.
조영희선배님 저번 중앙역모임에 배신때린거^^ 너무 죄송해서
요번 토요일에 가뵙는단 말 못 올렷지만
남편친구들이 벚꽃구경 온다는것도 짤랐답니다.
남편들끼리 놀으라고 하고 압구정역으로 달려갈께요.ㅋㅋ
노인을 모시고 밤새도록 시내를 돌아다닌 얘기요~
그 내용 이상으로 가슴이 따뜻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