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
교회의 중. 고등부 예배실  청소를 하다가
가방 하나를 발견했다.
누군가 공부하다가 잠깐 자리를 비운 듯하다.
놓여있는 노트의 이름을 보니 관용이 것이다.

관용이의 아버지는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그의 어머니는 혼자의 몸으로 두 아들을
신실한 믿음과 반듯한 인격으로 잘 길렀다.
그의 어머니는 모 교회의 여전도사로 일하고 계셨는데
작년부터 병이 나셨다.
할 수 없이 교회를 사임하셨다가
어려운 생활 형편때문에
다 낫지도 않은 몸으로 복직 하셨다.

관용이의 형은 신학에 다니고 있다.
공부를 잘하는 관용이는
병든 어머니와 형을 돕기 위해서
자신의 꿈을 접고 공업고등학교를 입학했다.

관용이는 방학이 되면  
추우나 더우나 쉬지않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집안의 어려운 생계를 돕는다.

주일이면 우리 교회 심부름을 도맡아 한다.
우리 교회가 지하에 있어서
교회 식당에서 밥을 하면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교회 식당까지 운반해야 한다.
이 일은 매주일 중 고등부 학생들이 맡아서 한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작은 것, 가벼운 것을 들고 가게 배려해주고
관용이는 항상 무겁고 뜨거운 국을 운반한다.
나는 못내 안타까와서 국을 여러 그릇에 나누어 놓는다.
그러면 관용이는 여러 그릇에 나누려면
내가 힘들다고 그냥 큰 그릇에 담아놓으라고 한다.
어떤 심부름 앞에서도 "아니오." 라고 거절 할 줄 모르는 아이.
교회의 궂은 일을 말없이 하는 아이.
관용이는 이름만 떠올려도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아이다.

나는 그 아이의 기특함을 떠올리면서
노트를 가지런히 해주려다가
노트속에 끼워져 있는 종이 하나를 보게 되었다.

독 촉 장

학부모님께.

귀 자녀의 2003년 공납금이 아래와 같이
미납되어 학교 행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사오니
2004년 2월 12일까지 납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공납금은 학교 수업료 및 입학금에 관한
규칙 제 7조(징벌)1항의 규정에 따라
체납이 2월이상 자는 출석정지 처분 할 수 있습니다.

그 독촉장을 보는 나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관용이는  이것을 차마
병든 어머니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교회에 와서 기도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 관용이의 학교에 전화를 했다.
아직 납부금이 납부되지 않아서
조만간 출석정지 처분이 될거라고 직원은 냉정하게 말했다.

나는 관용이의 학교까지 걸어서 갔다.
우리집에서 세 정거장 거리인데
차비를 아끼려고 매일 걸어다니는
관용이의 걸음 걸음을 똑같이 느끼고 싶어서 였다.

지난번 인일 동문들은 얼마의 돈을 모아 나에게 맡겼다.
선한 일에 써달라고...
나는 그동안 그 돈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고
동문들 전체가 흐뭇해 할 곳에
쓰이게 해달라고 기도해왔다.

그동안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제 기숙사로 들어가는 두 아들에게
그 돈에서 2만원을 꺼내어 만원씩을 더 주었다.
평소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식비와 교통비로 한 아이에게 주 25,000원을 주고 있는데
새학기이니 강의안도 구입해야하고 노트도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또 25,000원으로는 커피 한잔 사먹을 여유도 없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2만원을 빼주고 동문들의 글이 쓰여져 있는
그 봉투에 죄스러운 마음으로 "20,000원을 지출했음."이라고 썼다.
그런데 아이들이 학교로 떠나고 난  뒤 책상에 가보니
"어머니! 우리는 25,000원으로 충분해요."라고
아들이 써놓은 메모지와   돈 2만원이 그대로 놓여져 있었다.
결국 동문들이 준 돈이
한 푼도 흩어짐없이 고스란히 있었다.

그 돈을 가지고  
관용이의 학교를 찾은 것이다.
남학교에 들어서니 내가 꼭 이 남학생들과  
같은 또래의 여학생인 것처럼 가슴이 설렌다.

행정과에 찾아가
그 아이의 밀린 납부금을 냈다.

여직원에게 "관용이에게 알리지 마세요.
그렇다고 관용이에게 두 번 받는 것은 아니지요?"
여직원은 "그럼요.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 어디에 또 있겠어요.
맑은 눈물이 고이는 눈으로 여직원은 대답했다.
나는 밝게 웃으며 "나는 그저 심부름 하는 거예요." 라고 말했다.

내가 대학 4학년 마지막 학비를 못냈을 때.
누군가 나에게 알리지도 않고 내 학비를 내준 일이 있었다.
나는 그 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알게 되었다.
또 그 고마운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하니
만나는 모든 사람을 혹시 이 사람이? 하면서
그 고마운 사람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아마 하나님은 관용이에게도
하나님이 관용이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알려주고 싶으셨나보다.
그 사랑을 알게 되는 관용이는 어떤 일도 힘들지 않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나가게 될 것이다.
관용이는 보이지 않는 이 사랑을
누구를 만나든지 갚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이
하늘까지 날아갈 것 같았다.
나는 "주님! 이런 심부름은 매일 했으면 정말 좋겠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왕복 여섯 정거장을 걸어서 아낀 교통비로
관용이에게 줄 노트 몇 권을 샀다.

관용이가 이 노트를 마음에 들어할까?

우리 인일 동문들이 나의 이 심부름을 마음에 들어할까?  

주님이 나의 이 심부름을 마음에 들어 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