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오마이뉴스 정현순 기자]
“엄마, 엄마 크린싱 크림 없지?”
딸아이가 몇 가지의 클렌징크림을 내놓는다. 그러면서 한 가지 한 가지씩 사용법을 자세하게 가르쳐 준다. “아니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았어?” 내가 물었더니 “지난 번 와서 자고 갔을 때 세수하려고 보니깐 식용유병만 있던데”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세심하게 마음을 써주는 딸아이가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사야지, 사야지 하면서 미처 사놓지 못했던 것이다. 딸아이의 그런 마음 씀씀이를 보면서 나도 엄마 생각이 났다.
과연 난 엄마에게 몇 번이나 화장품을 사드렸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번도 없는 것 같다. 며칠 전 엄마 집에 갔을 때의 일이다. 마침 엄마가 세수를 하시고 얼굴에 무언가를 바르고 계셨다.
그때 내가 “엄마 오늘 보니깐 엄마 피부가 많이 고와졌는데”했더니 엄마는 수줍다는 듯이 “내가 아주 큰 마음먹고 비싼 영양크림을 샀다. 그걸 발라서 그런가보다” 하신다. 난 엄마의 작은 화장대를 봤다. 구태여 화장대라고 할 것도 없었다. 장식장으로 된 한 귀퉁이에 엄마만의 화장대를 꾸며 놓으신 것이다.
그 작은 유리문을 열고 어떤 것들이 있나 하고 살펴보았다. 그러나 엄마의 화장대엔 제대로 된 화장품이 거의 없었다. 색조 화장품은 한 가지도 없었다. 그나마 작년에 손녀딸이 사다 준 연한 색의 립스틱도 눈에 띠지 않았다. 그야말로 엄마의 화장대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다. 가지런히 놓여진 것 중에 한두 가지만 빼놓고 대부분은 작은 '샘플병'에 든 화장품들이었다.
난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 이 샘플들은 다 어디에서 생겼어요”했더니 엄마는 “그거 지난 번 이 화장품 사면서 얻은 것들이다. 내가 비싼 화장품 샀으니깐 샘플 많이 달라고 했지. 거긴 단골가게라서 나한테 아주 잘해 줘”하시는 게 아닌 가 난 코끝이 짠해졌다.
그리곤 속으로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나의 잘못된 생각을 되돌아보았다. 엄마는 평소에 화장을 잘 하시지 않으니깐, 엄마는 화장하시는 것을 싫어하시니깐 나 혼자 생각하고 결론까지 낸 것이다. 우리 엄마는 화장품하곤 거리가 먼 사람이란 생각을 무의식중에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그런 좁은 생각이 얼마나 형편없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난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엄마에게 다시 그랬다. “엄마 다음에 올 땐 내가 좋은 화장품 사가지고 올 게요”했더니 엄마는 대번에 “뭐 하러 그래 엄만 이거면 충분하다. 돈 없애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하시는 게 아닌가. 82세의 노모께서는 작은 일 한 가지에도 여전히 자식걱정에 여념이 없으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그런 일들을 마음에 담아놓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엄마의 그런 마음을 알 게 된 것이다. 분명 엄마도 길을 가다가 어디에서 향이 좋은 냄새가 나면 ‘어디에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날까?’하며 무심코 한번쯤은 냄새를 좇았을 것이다. 왜 그런 엄마의 숨은 마음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일까?
그동안 성의 없었던 나의 마음을 뒤늦게 반성해본다. 그리곤 다음에 갈 땐 엄마를 위한 화장품을 꼭 사다드려야지 하곤 마음을 다잡아본다. 벌써부터 조금은 화사해질 엄마의 화장대를 그려본다. 어느새 엄마의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다. 그런 엄마의 얼굴이지만 로션 한 가지만 바른 엄마의 모습은 정말 예쁘다. 아마 그건 사랑하는 나의 엄마여서 일 것이다.
/정현순 기자 (jhs3376@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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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엄마를 엄마로만 보아왔던 나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엄마가 같은 여자로 보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까지 보지 못 했던 일, 안보여졌던 일들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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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식들이 장성해서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나들이를 갔는데 찬합에 엄마 좋아하시는 것 싸왔다고 하며 뚜껑을 열었는데 그 곳에는 고등어 머리(대가리)만으로 만든 반찬이었다고.....
자식들의 눈에는 어려서 한점이라도 자식들 먹일려고 대가리가 맛있다고 먹던 어머니의 모습이 마냥 각인 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이 글을 읽고 엄마가 같은 여자로 보여 지고 있다는 것이 같이 나이 듦이 아닐까....
갑자기 돌아 가신 엄마가 생각 나네요... (x23)
우린 엄마의 그늘에서 너무 행복한거 알면서 착한딸도 못하고....
그보다 더 후회되는건 착한 며느리도 못했던거.. 많이 후회된다.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모두 우리에겐 너무나 소중한데....
오늘은 위대하신 우리들의 어머님들에게 사랑을 보내는 하루가....(: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