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작년 말에 11회 게시판에 김정희 동기의 글에 달았던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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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과는 무관하지만 정희글을 읽으면서 나도 생각난 게 있어 적어본다.

우린 집안이 기독교 집안이라 아주 어려서부터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다.
할머니, 고모, 엄마(아버지는 가끔 교회에 가시는 편)등과 다녔었는데,
그냥 헐렁헐렁 다녔었지.  지금 애들은 유치부등 많은 조직이 있었지만
그땐 별로였었던 것 같다.

이래저래 나이가 들어서 결혼을 하려하니, 덜커덕, 신랑은 천주교라네.
물론 기독교나 천주교의 기본은 하나님이니까 무에 그리 대수리요마는.
그리고 솔직히 그 당시의 나는 거의 나이롱을 입고 다닐 정도의 信者 수준이었고.
시어머님 또한 그런 종교에 대한 것에 대해서는 크게 마음 쓰시지 않았다.
물론 같았으면 최고로 좋은 것이지만.
신랑감은 태어나서 부터 천주교 집안.  
본명은 마르꼬인데, 내가 후에 말코라고 바꿔 부르며 놀리곤 했다.

문제는 결혼식장이 문제였다.
대개는 신부는  신랑이 원하는 곳에서 식을 치루는데,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지.
그냥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그 어머님이 나 좋은대로 하라고 하셨다.
그집 친척은 거의 외국에 있고 어머님도 멀리 떨어져 계시니
일이 많아질 우리집 편한대로 하라고. 아무데면 어떻냐고.
그럼 그렇지. 얘기 듣던 대로 어머님은 먹던 떡이야(죄송)-너무 편하신 분.

문제는 내가 나이롱이라는거다. 고모와 언니를 앞세워 교회에 가서 결혼식을
말씀드리고 허락 받고, 결혼식까지 어영부영 몇번  교회에 나가 머리 조아려 기도를 했다.
마음은 늘 믿음 안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도 게으른 성정이 나를 붙잡아 놨었다.
설레이는 맘으로, 어찌보면 겨울보다 더 추웠었던 3월에 결혼을 했다. 나만 추웠나?

얼마전에 어머님이 두 무릎을 수술하셔서 요리 빼고 조리 빼고 눈치만 보다가
드뎌  못 견디고 일주일간 부산에 다녀왔다. 가야 한다는건 기정 사실인데  왜 그렇게
몸이 움직이질 않는지. 가야할지 말지 거의 한달간 맘 고생을 했다.
어느날, 미국에 계신 시아주버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계수님, 어머니 부탁 드려요.'
그 한마디에 난 당장 다음날 새벽에 내려갔던 겄이었다.  제목은 '시어머님 병간호'
여기저기서 착한 며느리라고 온갖 치하를 들으며 개선장군처럼 내려갔다.

근데, 아침이면 어머님보다 늦게 일어나서 남이 차려주는 밥 얻어먹고,
식곤증을 못견뎌 꾸벅꾸벅 졸다가(어머님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를 도닥거려
이불까지 덮어 주셨다)
점심도 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한끼 떼우고, 저녁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또 늦어서 허겁지겁 와보면 벌써 한상 차려 놓은데를 숫가락만 들고 자리에 앉고.
일주일 내내 나는 그러고 있다가 왔다.
우리 엄마를 혹시 올케가 그런 식으로 병간호 했으면
아마 뒤에서 모진 흉을 다 봤을꺼야. 세상은 그런거니까.
그렇게 놀다가 왔는데도 이상하게 몸무게가 조금 줄었다.
이유가 뭘까?  아예 컴퓨터는 할 생각도 안하고, 몸도 편했는데.
지금은 원상 복귀되어서 다시 동글동글이야.

정희말대로 난 내가 용서해 줄 사람은 없다.
용서받을 일은 무지무지 많은데.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해줘라. 모두들.
특히 교인들에게  용서를 빌어야지.
교인이라며 입으로는 떠들고 다니면서 진심으로 행동이 따르진 않았으니까.
이 죄많은 죄인을 용서해 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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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유정옥 후배의 글에 수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감동을 받고
덕분에 뜻 깊은 만남도 가졌었습니다.
어찌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세월동안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경험과
고통, 어려움을 이리도 잘 극복하고 지냈는지 속으로 많이 반성하고 또
수도 없이 마음 속으로 찬사와 격려를 보냈습니다.
더구나 유정옥 후배는 만나 본 사람들도 느꼈겠지만, 너무도 소탈하고
순박해서 일단 한번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그러한 매력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타고 났다고도 생각합니다.

이 글을 올리면서 저는 여기 들어오는 모든 동문께 감사를 드리려 이 글을
씁니다.

유정옥 후배의 첫 글부터 하나도 빼놓지 않고 죽 봐 왔는데,  한편 우려하는
마음이 생겼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이기에 종파 또한 각양 각색이라 생각됩니다.
조금 달리 생각해보면 유 후배의 글은 거의 기독교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글들 입니다.  그리고 이런  단체의 場에서 특정 종교의 글이 자주
오른다는 것은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기에 충분히 얘기꺼리를 만들 소지
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동문들이 각자의 신앙에 관계없이 한 가지 마음으로
같이 즐거워하고 같이 슬퍼하는 것을 보니 그런 노파심이나 기우가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종교인이든 비 종교인이든, 어떤 종교를 믿든 종교 자체를 부인하든, 그런 것
을 모두 배제하고 오로지 선 후배로서의 '유정옥'을 그 자체의 인간으로 봐주고,
그 신앙 자체를 인정해주는 느낌이 들어 이렇게 생각지도 않은 글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후배를 아끼고 선배를 존경하는 풍토가 조성된 느낌이 들어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아니, 원래부터 그런 관계일 수가 있었는데 선 후배가 서로
만나서 얘기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총 홈페이지가 생기면서 이렇게 많은 동문들이 같은 주제로 얘기하고 즐기게되어
얼마나 좋았던지,  이렇게 두서 없는 글을 왜 올리는지도 모르며 글을 맺습니다.
앞으로도 유정옥 후배의 글 외에도 주옥같은 많은 글들을 수도 없이 퍼 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