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시간이 되자
다른 아이들은 부스럭 부스럭 강의안을 꺼낸다.
"이를 어쩌나."
오늘이 두번째 시간인데 어디에 빠뜨렸는지
나는 챙겨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옆에 친구 책을 동냥해서 보았다.

한 두시간 후
그 과목 교수님이 나를 부른다는 전갈을 받았다.
"분명히 그 까탈스런 교수님이
내가 강의안을 챙기지 않은 것을 혼내실거야."
연구실 문을 노크 하고는
미리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섰다.

"교수님! 죄송해요."
왜 이 소리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을까
나오다가 다시 기어 들어간다.

"요즈음 각 과목 교재 구입하기가 어렵지?
내가 하나 사 놓았어."
교수님은 곱게 포장한 책을 나에게 내민다.

아! 교수님의 사랑 앞에
내가 이 책을 이미 구입했고
내 실수로 어딘가에
떨어뜨려 놓고 왔다고 말할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공부 하겠습니다."

나는 내가 이미 구입한 책은
다른 학생에게 주고
그 교수님이 나에게 주신 책으로 강의를 들었다.

나는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까 생각해 보았다.
책이니까 책으로?
아니면 넥타이?
그러나 물건으로는 무언가 갚을 수 있겠지만
교수님의 마음은 갚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두고 두고 갚아야지."로 결정했다.

그 은혜와 사랑을 가슴에 간직하고
성탄 때 마다 카드를 보냈다.

나는 며칠전
그 교수님을 찾아 뵙게 되었다.
교수님은 이제는 빛바랜
나의 카드들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그 때의 진실을 영원히 말하지 못할 것이다.

거절할 수 없었던 교수님의 사랑은
나에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가르치신 셈인데
은혜는 두고 두고 갚아야 하고
용서는 단 번에 하는 것임을 알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남에게 빚지는 것
단 한가지를  허락 하셨는데
그것은 사랑의 빚이다.
우리의 인생이 다하도록
두고 두고 갚아야 하는 사랑의 빚이다.

나는 오늘
갚을 길 없는 사랑의 빚을 졌다.
인일 10기들의 작은 모임이 이루어진 그 곳에서...

나는 인옥 언니가
미혼임을 알고
여러가지 밑반찬을 준비했다가
첫 만남이여서 그냥 가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일류 요리사도 만들지 못할
최고의 맛있는 요리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순수히 인옥 언니의 손 맛으로...

고 정은 언니의 닭 튀김

김 정원 언니의 푸짐한 떡

한 정희 언니의 감칠맛 나는 초장이 돋보이는 반찬

이 인실 언니의 무공해 딸기

김 혜정 언니의 아이스크림

임 광애 언니의 쵸코 케익

"따르릉
전영희 언니의 사랑의 전화.

이 모임을 뒤에서 후원하며
같이 기뻐해 주고 있는
인일 모든 동문들의 사랑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 준비해 온
이 아름다운 음식들을 앞에 놓고
우리 서로가 갚을 길 없는 사랑의 빚을 주고 받았다.
가슴에 사랑이 많은 사람은
마치 어린애 같다.
무슨 말만 하면 눈물이 글썽글썽.

언니들이 바리바리 꾸려준
음식 보따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사랑을 내 일생이 다하도록 두고 두고 갚아야지!
두고 두고 갚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