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내가 그 남자를 처음 본 것은 8월의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꿈결처럼 들리는 노래가 있었다. 흘러간 올드팝송이 귓전에 흘러가는 듯하는가 싶더니 많이 들은 듯 하기도 하고, 처음 듣는 것같기도 한 음성에 숙여진 고개를 들었다. 패티패이지의 테네시월츠가 흐를 때에는 조느라고 다소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하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정 양복에 넥타이를 단정히 맨 40대 정도의 남자가 핸드케리어를 저쪽으로 부터 내가 있는 쪽을 향해 끌고 오고 있었고, 음악은 바로 그남자의 핸드캐리어 위에 있는소형 레코더에서 흘르고 있었다. 그렇게 음악이 이곡저곡 바뀌더니 그 남자는 자신을 소개하며 정품 테이프인 올드팝 모음 셋트(10개)를 소개하고 10000 원이라고 했다. 그 말하는 태도나 올드팝을 소개하는 태도가 지하철에서 일반적으로 여러가지 상품을 판매하는 사람과는 달리 정중하고 한번은 쳐다보게 만드는 호기심을 자아낸다고나 할까.. 그 남자를 자꾸만 쳐다 볼 수가 없어 지하철 창 밖을 내다보는 둣하면서 슬쩍 한번 쳐다보고 가방 한번 고쳐 잡는 척 하다가 한번 슬쩍 쳐다보고 하면서 그 남자의 핸드케리어 안에 몇 개의 카세트셋트가 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그 남자의 하루 수입을 얼마나 될까도 궁금했다. 그러더니만 그 남자의 전직은 ? 레코드회사에 다녔나? 아니면 대기업에서 퇴출 후 퇴직금 몽땅 사기 당해 이런 식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걸까? 아니면 작곡한 곡이 뜨지를 못한 가난한 작곡가 일까? 별 쓰잘데기 없는 상상을 하며 올드팝을 감상은 했지만 그 남자는 그 칸에서 한 셋트도 팔지 못하고 다른 칸으로 가고 있었다. 작은 연민이 일어나면서 성큼 사주지를 못하는 내 자신이 순간적으로 얄밉기까지 했던 .. 바로 8월 여름의 지하철에서 그 남자... 넉달 후, 12월 나는 다시 그 남자를 지하철에 볼 수 있었다. 팝송 소리가 점점크게 들려오기 시작하자 나는 직감적으로 8월의 그 남자가 떠올랐다. 마치 여고시절 버스통학길에 관심두었던 남학생이 버스에 올라 타면 얼굴이 붉어지고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했던 것 처럼 나는 그남자를 보자 시선을 어느 곳에 둘지 몰라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가방을 괜히 이리 놓았다 저리 놓았다 하기도 하고 구두 속의 발가락을 꼼지락 대기도 했다. 그 남자는 여름처럼 똑같은 억양으로 카세트를 소개하고 이번에는 책자까지 승객에게 나누어 주며 영업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책자 하나가 내 무릎에 놓여지고 영어가사와 오선지에 콩나물이 그려진 악보까지 있는 책자였다. 이 때, 건너편에 앉은 내 또래의 중년여인이 10000원 내어 놓으며 구입하기를 원했다. 그러더니 그 옆의 50 이 넘은 여인도 도미노현상이 일듯 구입을 하였다. 순간적으로 비슷한 연령의 아저씨도 저쪽에서 부르고 구매를 하였다. 나는 그 대열에 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잠시 고민을 하며 승객의 무릎에 놓여진 책자를 수거하는 그 남자의 뒷 모습을 슬쩍 슬쩍 훔쳐 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남자는 물건을 팔고 받은 돈을 호주머니나 지갑에 넣지 않고 손에 계속 쥐고 있었다. 오늘은 여름 처럼 공치지 않고 제법 판듯하여 나도 내심 마음이 흐뭇하였었지만 그 남자의 손에서 계속 들려져 있었던 초록색 지폐들이 순간적으로 내 시야에 꽂히고 말았다. 그 남자는 다른 칸으로 가기 위함인지 핸드캐리어의 지퍼를 채우더니 손에 든 여러장의 지폐를 마치 카드놀이 할 때 부채처럼 펴듯이 펴고선 손가락 끝으로 톡톡~ 쳐보곤 했다. 그 때 그 남자 뒤에 아들래미를 앞세우고 동전을 구걸하는 맹인이 찬송가를 틀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태산을 넘어 험곳에 가도 빛가운데로 걸어가면♪....소리가 올드팝송과는 달리 애처롭게 들렸다. 맹인의 아들래미가 그남자 뒤에서 동전바구니를 들이밀고 동전을 구걸했지만 그 남자는 지폐를 검은 양복 안쪽호주머니에 넣고선 열린 지하철 문을 향해 그냥 내려버리고 말았다. 나는 맹인에게 주려던 동전을 다시 집어 넣고 그 남자가 파는 테이프를 살까 말까 망설였던 때와는 달리 지폐를 꺼내 아이의 바구니에 넣었다. 아까 그 남자의 카세트를 사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 남자... 그 남 자 ,... 혹시라도 다음에 그 남자를 지하철에서 만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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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는 제가 4년 전에 모 싸이트에 올렸던 꽁트입니다.
송혜교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다가 이 글이 문득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
그 당시 지하철 안에서 이러한 카세트 테잎으로 음악을 들려주고 파는 판매행위는 거의가 없었는데
요즘은 여자들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판매를 하더군요.
드라마 작가도 거기서 힌트를 얻었는지 송혜교의 직업을 그리 설정했더만요
읽어 내려갔습니다.
기대와는 좀 어긋났지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