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 분과의 만남은
인천의 작은 교회에서였다.
신혼초에 그 교회에 나가면
그 분은 언제나 정갈하고 기품있는 모습이었다.

양복의 정장은 겨울이 되면
격식에 잘 갖추어 입은 한복으로 변했었다.

그 교회에 다닌지
반년이 지나서야
그 분이 정년퇴임을 앞에 둔
교장 선생님이라는 것과
부인을 먼저 하나님께 보내고
혼자 사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본래 사귐성이 없는 나의 성품때문에
가벼운 목례이외엔 말 한마디도 나눈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어느새 나의 마음엔
그 분을 나의 이상적인 아버지 상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데
그 분은 나에게 책 한권을 주셨다.
그 책은 그 분의 수필집이었다.
나는 작은 노트를 준비하여
수필 하나 하나에 느낀 소감을 적어 나갔다.
때로는 그 수필 제목에 맞춰
시도 쓰고...
수필도 쓰고...
어느덧 그 노트는 그 책의 부록같이 되었다.

우리가 첫 목회 사역을 하기 위하여
그 교회를 떠나오던 날.
나는 그 노트를 그 분께 선물했다.

목회 사역을 하면서
세월이 빠르게 흘렀고
우리 교회에 왔던  말기 암환자를
속수무책으로 하늘나라에 보낸 후
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암으로 고통 받고 있는 것이 안타까와 견딜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의과 공부를 한 일이 없는 나로서는
암환자를 치료하지는 못하지만
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한
그들에게 믿음의 길을 알려 주고 싶었다.

성경은 생명의 근원이 피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피에 근원은 물에 있지 않을까
물이 맑고 공기가 신선하고
흙을 밟을 수 있는 자연속에서
사람 역시 하나의 자연이 되면
그 중에 혹 몇 사람은 치유 받을 수 있기도 할테지.
그 어떤 것보다 이 땅에서 갈 곳없는
말기 암환자들이 마지막 편히 쉴 수 있는
요양소를 만들어야겠다.

나는 그 열정 때문에
밤마다 기도했고
시간이 조금만 나면 그런 곳을 찾아 나섰다.

암환자들을 간호해 본 나의 경험에 따라
소화기 환자는 칡물이 좋고
자궁암 환자는 재배되지 않은 산 속에서 자란 쑥이 좋고
콩은 해독작용을 하는 것과
기관지 환자는
물이 떨어지는 폭포곁의 요양이 좋은 것을 경험했었다.

드디어 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자리를 찾았다.
그 곳은 가평군 외서면 대성리에 있었다.

그 때가 11월 이었는데
잔금은 12월 27일까지로 약속했다.
내가 지불할 수 있는 돈은
계약금(7백만원)이 전부였으나
무조건 계약을 한 것이다.

이 무모한 결정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면 이뤄주실 것이고
그 확신이 있을 때에만
나는 그 일에 내 인생을 기꺼이 헌신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생활은 단 한푼의 여유도 없어서
달포가 지나 잔금 치룰 날이 다가오는데
잔금 6,300만원 중에서 만원도 준비되지 않았다.
밀리고 밀려 잔금 전 날인 12월 26일이 되었다.

나는 나의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고
"내일이 잔금일이지만
하나님이 어디에 예비해 두셨는지
보물찾기 하듯 찾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언니는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너하고 나하고 한 부모밑에 태어나
똑같이 신앙을 받았고
한 하나님을 믿어오고 있는데
네가 믿는 하나님이 다르고
내가 믿는 하나님이 다르다더냐.
조용히 목회하면 됐지
꼭 일을 만들어 고생을 자초하니 난 모른다.
잘 됐어!
엄마가 너에게 준 돈 700만원이
우리들이 푼푼히 드리는 용돈을
3년이나 꼬박 모은 돈인 줄이나 알아라."
나는 화를 내는 언니의 진심을 잘 알고 있다.
왠만하면 언니가 해주고 싶은데
언니의 능력으로 해 줄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힘들게 살아가는 동생이
또 겪어야 하는  아픔 때문에
언니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저녁 6시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받아보니 언니였다.
"정옥아! 정옥아!."
내 이름만 부르더니 엉엉 소리내어 울고 있는 것이다.
나는 "괜히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언니를 이토록 힘들게 했나보다."하고
"언니 괜찮아. 언니에게 해달란 것이 절대 아니었어."

한참 말을 잇지 못하고 울기만 하던 언니는
"그래 맞아!
내가 믿는 하나님이 다르고
네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 다르더구나.
너의 전화를 받고 얼마나 화가나고
속이 상하던지 한동안 울다가
저녁 반찬이나 사려고 시장에 갔다가  
장 장로님을 만났지뭐냐
장로님이 동생 잘 있느냐고 안부를 묻길래
너의 엉뚱한 짓 때문에
한동안 울고 나왔다고 했더니
이번엔 장로님이 우시는게 아니니
왜 쓸데없는 말을 해서
이런 망극한 일을 만들었나하고쩔쩔매는데
장로님이 그 돈을 해주시겠다는거야.
그러니 네 통장 번호나 어서 말해봐."
언니의 울먹임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 때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감동을
나는 지금도 표현할 길이 없다.

그 이튿날 오전 10시에
잔금을 치룰 돈이 내 통장으로 들어왔다.
혹시 수표로 입금하면
내가 돈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을까봐
현금으로 바꾸어 입금해 놓은  
나를 위해  끝까지 배려하신 그 분의 사랑도 같이 들어와 있었다.

그 분을 다시 만난 곳은 병원이었다.
그 분은 말기 암환자였다.
환자복을 입은 그 분은 무척 야위어 있었다.
나는 그 때.
갚을 길 없는 큰 은혜를 입었을 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나에게
그 분은 온유한 음성으로
"그 돈은 아버지가 딸에게 주는 유산이야.
내가 오래전부터 너에게 주려고 마음 먹었어.
그 돈으로 네가 무엇을 하든지  상관 없으니 편안히 받아.
나는 인생을 다 살고나서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는데
이젠 그것을 실천 할 시간이 없네.
그리고 이 노트는 내가 하늘나라 갈 때 가지고 갈께."

내 손에 쥐어주는 작은 노트는
그동안 얼마나 많이 읽으셨는지
그 분의 흔적을 곳곳에 남겨두고 있었다.
오히려 나에게는 내가 쓴 글 같지 않게
생소하게 느껴지는 그 노트의 맨 뒷장에는
"사랑하는 내 딸에게서 받음."이라고
그 분의 필체가 적혀 있었다.

그 분에게는 자식이 없어
내가 유일한 자식이 된셈이다.
자식은 재산만 상속받는 것이 아니고
부모님의 삶도, 기업도, 꿈도  상속 받는 것이다.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고 난 후에
그렇게 살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어 이루지 못한  
그 분의 삶을 승계하고 싶다.
나도 시간이 없어 할 수 없는 때가 이르기 전에...

현재 그 곳에는 아무 것도 준비 되어 있지 않다.
오랜 세월을 목회하느라 여념이 없는 나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물과 나무와 흙과 숲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분과 나의 꿈이 있고
그 일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다고 인정하신 확실한 증표가 있다.

나는 이 밤
내가 해야 할 새로운 궂은 일을 찾았다.
그 설레임으로 하얗게 밤을 새워 새벽을 맞는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도와 줄 것이고
이미 하늘나라에 가 계신 그 아버지가
유일한 자식인 이 딸을 분명히 도와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