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지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현호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서울대학 어린이 병동 중환자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우리를 기다리는 현호 엄마는
금방이라도 실신할 것 같은 창백한 얼굴이다.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이니
대기하고 있는 상태란다.

오전10시와 오후 8시
하루 두 번 15분간 면회를 할 수 있다.
현호는 이미 혼수상태이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옴 몸에 거미줄처럼
호스가 연결되어 있다.
현호 엄마는
아들의 부어오른 배를 어루 만지며
"현호야! 엄마 곁을 떠나지만 말아라.
평생을 이렇게 아파도 괜찮으니 떠나지만 말거라."
어머니의 피를 토하는 오열을
어린 아들은 듣고 있을까

현호는 올해로 16살이 되었다.
아장 아장 걸음마를 할 때 부터
우리교회에 다녔으니
나에게는 내 아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초등학교 때는 튼튼하고 다른 애들에 비해
키도 훌쩍 컸었다.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한 4월
감기가 낫지 않는다고 병원에 갔다가
백혈병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 때부터 14번이나 되는 항암치료를 받았다.
독한 항암 치료제의 후유증으로
한창 성장 할 나이에 성장이 멈췄다.

설날 무렵
병원에서는 최후의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부모님에게 아들의 죽음을 담보로 하는
동의서를 받은 후에.

치료를 받다가 혼수상태에 들어갔는데
몸의 중요한 모든 기관이
이미 파손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아이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나는 가슴이 저미는 아픔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간절히 진정 간절히 기도 할 뿐이다.

현호 엄마는
현호가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에
"목사님과 사모님이 보고싶다."고 했단다.
그 날 밤은 현호의 친척들까지도
병원 대기실에서 지새웠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는 동안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현호는
병원에서까지 의아해하는 기적을 이루며
거미줄 같았던 호스를 하나씩 하나씩  빼어내고 있다.

현호가 죽음이 임박했다고
가족 전체의 면회를 허락했던 병원에서는  
이제는 면회를 통제하게 되었다.

비록 현호를 보지 못하지만
병원 대기실에서 서성였던
열흘 간의 밤처럼
나는 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신약 성경의 첫 장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낳고...낳고...로 시작한다.

현호야!
더도 덜도 말고
현호는 아들을 낳고
현호의 아들은 현호의 손자를 낳고...낳고 하거라.
낳고... 낳고...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