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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을 푼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나는 집보는 신세로 전락 하고 말았다.

딸과 아이들은 다운타운에 눈도장도 찍을겸
학교 수속과 교통편 알아보기 등등 여러가지 일로 우루루 나가 버리고
내 생전 이렇게 넓은 집에 남아 보기는 처음인지라
서먹 서먹하고 생소하다 못해 두려움도 은근히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가 머문곳은 버나비 끝자락에 있는 전형적인 주택가인데
보통 250평 정도 마당에 넓게 잔디밭을 품고 꽃을 예쁘게 가꾼 정원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동네이다.
거기에 높고 푸른 하늘~~
우리나라 애국가 3절에 나오는 그 가을 하늘이 흰 뭉게 구름과 조화를 이루니
그야 말로 한폭의 그림이요
천국이 이렇게 조용하고 아름 답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

우리 손주녀석과 둘이
집 안에만 박혀 딸 올때 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체질상도 맞지 않지만
시간도 아깝고
좌우지간 유모차에 애기 실고
"다 같이 도올~자. 동네 한바퀴~~(8)(8)(8)" 하며
집밖으로 나와 길 따라 슬슬 유람하듯 동네를 살펴보니
도대체 담벼락이 있는집은 눈에 띄지 않고
시원스에 넓은 앞마당에 잔디와 꽃이 어우러져 조용히 객을 반기는 듯하고
몇 몇 집은 집마당에 농구 골대에서 운동하는 서너명의 아이들을 보면서
선진국의 여유로움을 엿볼수 있었다.

이리 저리 김삿갓 유람하듯 동네 돌다 길을 잊어버려
헤메기도 했는데
주소는 커녕 동네 이름도 몰라요
전화 번호도 몰라
딸 휴대 전화 번호도 몰라
그토록 의지가 되었던 순희 전화 번호도 몰라
게다가 말까지 안 통하니
등꼴이 오싹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데
사람 그림자 까지 안 보이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은 이럴땐 무용지물이고
그저 배짱과 용기가 이럴땐 최고로
우리 손주 배도 곺을것 같고
집 찾아야 산다는 일념이 두려움을 제쳐버리고
이길 저길 막 찾아 헤메다 보니
동네 아름다움 예찬은 길 건너가 버렸다.

천신 만고 끝에 집 보이는 길 모퉁이에 다달아
휴~우 안도의 숨을 쉬고
우리 손주녀석을 보니
고개 푹박고 잠들어 버렸는데
무정한 할미는
그 불편한 유모차에 꽁꽁 묶은 손주 생각 아랑곳 않고
집 찾아 헤멘 생각하니
고 어린것 한테 미안한 마음이 하늘 만큼 땅 만큼~~

이리하여
TV 신문 잡지 거기에 컴퓨터 까지 안되는  
또한 아는 이웃 하나없는
철저한 무공해 시대의 서막이 올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