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이글을 시작하려 하니 아버지의 그리움에 목이 메인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오늘 따라 유난히 아버지가 그리움은 왜일까? 아까 문득 횡단보도에 섰을 때 아버지가 멀리서 오시는듯 환상이 보였다. 다섯살 때..................눈깔사탕 훔쳤다고 밤11시까지 잠을 안재우고 회초리로 방바닥을 두드려 대는 엄마~ 너무도 무서워 오줌을 질금대며 우는데 아버진 대머리 뒷끝까지 벌개진 얼굴로 나를 확 안으시며 엄마를 야단치셨다. "당신이 안 사줘서 그렇지~!!!" 난 그때부터 아버지가 좋아졌다. 여섯살 때..................고명딸이라고 무지 예뻐 하셨다. 고무신딸~이라고 사람들이 놀렸다. 툭 튀어 나온 마빡과 툭 튀어 나온 뒷통수를 늘 쓰다듬어 주셨다. 그나마 아버지 손을 많이 타서 앞뒤가 둥그스럼 해졌다. 일곱살 때..................송현학교 교감샘님이실 때 퇴근길에 신흥학교 앞까지 걸어 오시면서 포장마차의 100환짜리 국수를 사잡숫고 싶어도 그돈이면 우리 온식구가 저녁에 콩나물국 한그릇씩 먹을 수 있다고 시장하신데도 참고 걸어 오셨다는 얘기를 하셨다. 지금도 짜장면 하나 사먹을라 해도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덟살 때..................왼쪽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빨간 벨벳 원피스를 입고 신흥학교 운동장에서 입학기념 사진을 찍어 주셨다. 6남매중 그런 사진 찍은애는 나밖에 없다. 아홉살 때..................아버지 도시락을 가지러온 급사 언니한테 편지 한줄을 써보냈다. "아버지~! 바나나가 먹고 싶어요~!"삐뚤빼뚤한 글씨로.. 아버지는 빈도시락 보낼 때 그귀한 바나나 두개를 사보내셨다. 열살 때.....................미술대회 나가는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머리맡에 아버지가 사다 놓으신 새스켓치북,새화판,새크레파스가 놓여 있었다. 무지하게 좋은걸 아버지한테 씩~웃는것으로 대신했다. 아버지가 빙그레 웃고 계셨다. 막내 여동생이 태어났다. 고무신딸 소리도 못듣게 되었다. 꾀집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모두 예뻐해서 샘도 났다. 열한살 때..................엄마랑 아버지랑 몹시 싸우셨다. 큰오빠가 우리들을 모아놓고 물었다. "니들~엄마랑 아버지랑 헤어지면 누구랑 살꺼야?" 5명중 4명이 엄마랑 산다고 대답했다. 나도 엄마랑 살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불쌍해서 아버지랑 산다고 했다. 열두살 때...................몸이 약해 학교를 휴학했다. 아버지가 애기를 너무 많이 업혀서 병난거라고 엄마를 많이 야단치셨다. 아버지가 자라를 사다가 꺼꾸로 매달아 놓고 목이 길게 늘어질 때 목을쳐서 피를 내어 그 피에 활명수를 타 먹였다. 열여섯살 때................학교에서 돌아와 고구마 찐것을 두개먹고 급체했다. 몸을 뒤트는 나를 들쳐 업으시고 오밤중에 한의원을 두드려서 나를 살리셨다. 스물한살 때................맹장수술을 했다. 엄마,아버지 두분이 3일 밤을 꼬박 내곁을 지키셨다. 그때야 내가 주워온 애가 아니란걸 확인했다. 스물여섯살 때............결혼식장에 아버지 손잡고 들어가는데 들려오는소리 "색시가 아버지 닮아 키가 크네~!" 아버진 나 시집 보내는날 내방에 들어가셔서 한참을 우셨단다. 서른두살 때...............어깨에 골수염이 생겨 대학병원에 입원해 계신데도 애기때문에 움직이질 못해 병원에 가보질 못했다. 나중에 수술 자국을 보고 많이 울었다. 서른일곱살 때............내가 큰수술을 치루고 퇴원하던 날~이불을 어깨에 둘러 메고 아픈팔을 휘두르며 앞서가시던 꾸부정한 그 뒷모습이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 그때 나는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꽝꽝~! 박았다. 내딸 1학년 때............에미 떨어져 사는 모습이 안쓰러워 다 큰놈을 업어 주셨다. 운동회할 때 엄마 아버지 두분이 같이 운동회에 참석하여 주셨다. 본부석에 계시면서 그학교 교장선생님과 점심식사 하실 때 꼽사리로 먹던 갈비탕 맛을 내 딸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내딸 6학년 때 ...........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졸업식에 두분이 인천에서 올라오셨다. 사진속에 두분의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찍혀있다. 내딸 대학입학 때........교원대학교 갔다고 무지 기뻐하셨다. 당신의 뒤를 잇는다고..... 입학금이 82만원 이었는데 기쁜 마음으로 모두 내어 주셨다. 내딸 임용고사볼 때.....1차 합격후 면접볼 때 20만원 주시며 이쁜옷 사주라고... 하도 큰옷을 사줘서 임신했을 때도 입고 다녔다. 딸은 지금도 그 옷을 보며 할아버지 얘기를 하곤 한다. 돌아가시던날.............추석날 종일 안주무시고 오는사람 가는사람 모두 참견하시더니 손주사윗감이 처음 찾아와 인사드리니 억지로 눈뜨시고 손잡아 주신후 손주 사윗감가고 30분만에 돌아가셨다. 엄마방에 아버지의 웃으시는 사진이 있다. 난 그사진을 보며 혼자 중얼 거린다. '아버지~! 오늘 잘 지냈어? 나 다녀 왔어...좋은데 계시지? 근데~너무 보고싶다~" 유난히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은 나는 아버지가 오래 사시길 바랬다. 엄마보다....... 아버지가 하품하실 때 손가락을 쑥 집어 넣는 딸~ 아버지가 쇼파에 앉으실 때 손가락을 쇼파에 세워 찔러대는 딸~ 난 아버지에게 이런 딸이었다. 세상은 공평한건지...... 내가 愛憎으로 대하는 엄마는 투석 받으시면서도 하루에 다섯끼씩 잡수시는데 나를 너무 이뻐 해주시던 아버지는 엄마보다 두살이나 젊으신데도 먼저 가셨다. 3년전에... 오늘도 난 아버지를 잊지 못한다. "순호야~! 참아~성질좀 죽이고~기지배가~쯪쯪~!" 아버진 꿈에도 한번 안나타나신다. 아버진 돌아가시면서도 내 걱정을 제일 많이 하셨다. 아버진 나 가여워하 듯 내 딸을 많이 가여워하셨다. 이땅에 이렇게 튼실한 두다리 꽉 부치고 씩씩하게 잘 살아감은 모두 내아버지의 지극한 사랑 때문이다..... 아버지~! 아버지~!아버지~! 사랑하는 내아버지~~~!!! |
2008.03.31 15:14:10 (*.106.25.244)
순호는 그래도 행복하다.
아버지 사랑을 따사하게 받고, 그정도면 오래 사신편이라 손녀 신랑감까지 봐 주고 가셨으니까.
첫딸과 아버지와는 좀 특별한 관계라고, 둘째인 나와는 좀 덤덤한편이었지만 그래도 잔잔하니 밀어주신것 같애.
우리 아버지는 내가 고 3 일때 돌아 가셨으니까, 대학이니, 결혼이니, 손주니 봐 주시지 못했지.
무척 애들을 좋아하셨는데 손주를 얼마나 즐기셨을까 살아 계신다면, 하고 생각을 많이 했었다.
아프시기도 했었는데 내 꿈에서는 항상 건강하시지.
근데 네어머니가 이 글은 읽지 않으시는게 좋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되네.
아버지 사랑을 따사하게 받고, 그정도면 오래 사신편이라 손녀 신랑감까지 봐 주고 가셨으니까.
첫딸과 아버지와는 좀 특별한 관계라고, 둘째인 나와는 좀 덤덤한편이었지만 그래도 잔잔하니 밀어주신것 같애.
우리 아버지는 내가 고 3 일때 돌아 가셨으니까, 대학이니, 결혼이니, 손주니 봐 주시지 못했지.
무척 애들을 좋아하셨는데 손주를 얼마나 즐기셨을까 살아 계신다면, 하고 생각을 많이 했었다.
아프시기도 했었는데 내 꿈에서는 항상 건강하시지.
근데 네어머니가 이 글은 읽지 않으시는게 좋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되네.
2008.04.01 13:21:30 (*.12.199.161)
수인이 아버님은 멋쟁이셨네.
오토바이도 타시고....
우리 아버진 70대에 운전을 배우셔서
내가 옆에 타고 차몰고 가시다가
논두렁에 꼴아박으시곤
내가 결사적으로 반대해서
운전대를 놓으셨지.
그때 괜히 반대 한거같어.
좋아하시는것 하시게 해드릴껄....
혜옥인 아버님이 어릴적에 돌아가셨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대학공부하느라 정신없었을텐데,ㅉㅉ
살아 계셨으면 막내딸 손주들을 많이 예뻐 하셨을텐데....
울엄니는 당신도 내가 당신 안좋아한다는거 다아셔.
늘 차갑고,말없고,한번도 끌어 안아주신것 같지 않아.
원래 성품이 그러셔.
정말 딸이 없어서 주워 온줄 알았다니깐....
내가 지금 모시고 있는것도
화해하라고 위에서 붙여 놓으신것 같어.
엄니는 당신 할도리는 끔찍이 하시는데
입을 꽉다물고 계시니 옆에 스치는것도
어릴때 무서운적이 있었어.
걱정 안해도 돼.
내가 뭐라고 구시렁대도
못들은척하시고 "넌 짖어라 난 모른다~!"이시니까.
난 <적과의 동침>의 나날을 산다.
2008.04.02 15:43:45 (*.106.25.244)
마치 미움과 사랑을 도통한 사람같으네 순호는.
잘못된 만남이야?
확율로 따진다면 이세상에 잘못된 만남이 많은가 잘된 만남이 많은가?
나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 나이에 뭐 변할수도 있는걸까? 포기하는건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에 사람들끼리가 가장 힘들게 하는 사이가 되는것은 왜야?
하나님이 만드는 연속극인가 보다.
잘못된 만남이야?
확율로 따진다면 이세상에 잘못된 만남이 많은가 잘된 만남이 많은가?
나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 나이에 뭐 변할수도 있는걸까? 포기하는건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에 사람들끼리가 가장 힘들게 하는 사이가 되는것은 왜야?
하나님이 만드는 연속극인가 보다.
2008.05.07 06:16:08 (*.0.43.226)
나의 아버지! 제목이 마음에 들어 와 살짝 읽고 나가려다 순호씨의 애잔한 아버지의 사랑이 전해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저도 한줄 저의 아버지의 추억을 더듬어 보렵니다.
저는 2남 3녀의 둘째딸로 태어나 가운데에서 가장 치이고 모질라게 자랐지만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으로 밝게 자랄 수 있었읍니다. 엄마의 눈을 피해 항상 용돈도 찔러 넣어 주셨고 오남매 중에 내편은 정화 뿐이라며 친정에 다니러 가면 엉덩이춤을 추시면서 조금만 얼굴 더 보게 늦게 자라며 초저녁 잠이 많은 저를 잡곤 하셨지요. 선생 발령을 받아 파주에 근무 할 때 아버지가 보내 주신 편지를 읽을때 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종이가 헤어지도록 읽었는데 ......지금은 없어졌군요. 첫월급을 타서 아버지께서 수원에 전근가 계실때 아버지한테 달려가 드리고 수원갈비집에서 단둘이 회식하고 서호에서 서로 독사진 찍어 준사진은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읍니다. 키가 180이 넘으시고 자칭 김진규라고 하시던 우리 멋진 아버지 .......61세에 암으로 일찍 별세 하셨지만 친정에 아버지 뵈려 가면 현관에서 내려다 보시며 눈에다 딸의 모습을 동자에 찍어 놓으시려는 듯한 그 모습만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아려옵니다. 아버지! 아버지! 어버이날이 내일이군요. 이 철없는 딸이 가족과 함께 옥계해수욕장에 있을때 아버지 께서는 선몽으로 이딸을 불러 주셨지요. 새벽 2시쯤 엄마와 아버지께서 흰국화 노란국화밭을 거니시는 꿈을 꾸다 깼다. 다시 새벽4시쯤 이번에는 엄마 혼자서 흰국화를 쪼그리고 앉아서 들여다 보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부랴 사랴 집에 도착하여 발인전날 알고 온것처럼참석하여 망신을 면하였다. 지금 살아 계시면 89세 잘 해드릴것 같은데...... 철나면 부모님은 기다려 주지 않으시고 빈자리만 공허하게 우리 가슴을 헤이는구나 오호 통재라 오호 애재라........
2008.05.07 16:29:14 (*.12.199.161)
정화언니~!
어버이날을 맞아 더 맘이 아프시죠?
지금도 늘 어디든지 놀러가면 우리 아버지 여기 오시면 좋아 하셨을텐데....
우리아버지 이것 사드리면 잘 잡쉈을텐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언니~!
울지마시고 힘내세요.
언니네 아버지가 아시면 슬프실꺼예요.
못난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02.22 22:52:22 (*.169.44.242)
순호선배님 글 읽으니 저의 아버지가 생각나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선배님과는 공통점이 많아요.
아버지가 학교에 계셨다는 점 때문일 거예요.
저희집도 젊은 날 늘 아프기만 하셨던 엄마는 여태까지 살아계시는데
건강하고 의욕적이셨던 아버지는 4년전에 가셨답니다.
딸들이 대학 들어갔을 때
당신 딸이 대학 갔을 때보다 더 좋아하시던 것이 눈에 선하네요.
이상해요. 함께 살고 있지만 엄마와의 추억은 거의 없어요.
모든 것이 아버지와의 추억 뿐입니다.
엄마와도 엄마 얘기는 하지 않고 아버지 이야기만 해요.
친정에 가면 꾸러미꾸러미 싸 주시는 건 엄마가 아니라 아버지셨어요.
가을이면 친정 현관에 쌓아 놓은 쌀들을 우리집 뿐만 아니라
제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까지 다 퍼주었답니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열심히 차에다가 무거운 쌀을 실어주셨댔지요.
기일이 다가와서 그런지 요즘 더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선배님과는 공통점이 많아요.
아버지가 학교에 계셨다는 점 때문일 거예요.
저희집도 젊은 날 늘 아프기만 하셨던 엄마는 여태까지 살아계시는데
건강하고 의욕적이셨던 아버지는 4년전에 가셨답니다.
딸들이 대학 들어갔을 때
당신 딸이 대학 갔을 때보다 더 좋아하시던 것이 눈에 선하네요.
이상해요. 함께 살고 있지만 엄마와의 추억은 거의 없어요.
모든 것이 아버지와의 추억 뿐입니다.
엄마와도 엄마 얘기는 하지 않고 아버지 이야기만 해요.
친정에 가면 꾸러미꾸러미 싸 주시는 건 엄마가 아니라 아버지셨어요.
가을이면 친정 현관에 쌓아 놓은 쌀들을 우리집 뿐만 아니라
제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까지 다 퍼주었답니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열심히 차에다가 무거운 쌀을 실어주셨댔지요.
기일이 다가와서 그런지 요즘 더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올렸던 글인데 어딘가로 사라져서
.gif)
저장 되었던 글 올렸습니다.
무시로 아버지가 그리울 때 읽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