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헤알이면 얼마큼 되는 액수일까?  
오늘의 10 헤알은 3 불50 센트쯤 되지만 당시의 10 헤알은 아마 그 곱은 되었을 것이다.

내가 한국에 와 있는지가 석달쯤 되었는데 나는 아직 거지를 만나보지 못했고
한국에서는 요즘 거지에게 얼마정도를 주는지 알지는 못한다.

브라질은 법적 최저임금이 몇년전에야 겨우 100 불이 되었으니 그런 사회에서 하류층 서민이
거지에게 5 불이상의 동냥을 주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브라질 화폐의 단위는 ‘ 헤알 ‘ 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달러,  일본의 엔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매일 저녁 뉴스시간에 시세가 나오니까.
브라질 화페의 시세는 일년을 가도  CNN 뉴스에도  안 나온다.  
별로 중요한 화폐가 아니니까  그 화폐 가치가 약해지던지 강해지던지 세계경제에 그다지 큰 영향이 없으니 그럴테지.

브라질 돈이 헤알인데 철자는 REAL 이라고 쓴다.  
유명한 스페인의 축구팀 REAL MADRID  와 같은 스펠이고 같은 뜻이다.
스페인 팀은 스페인에서도 레알 마드릿 이라고 부르지만
브라질의  REAL 은 레알이 아니고 헤알,  현지의 더 정확한 발음은 ’헤아우’ 이다.
복수 일 경우는 ‘헤아이스’ 가 된다.

브라질에서는 R 의 소리값이 우리나라  ‘ㅎ’ 에 가깝고  L 은 ‘ㄹ’ 일 적도 있고 ‘우’  일 적도 있다.
그래서 월드컵 스타RONALDO 가 로날도 가 아니고 호나우도가 되고
능청스러운 RIVALDO  가  리발도 가 아닌 히바우도이며  
못생겼지만 귀여운 RONALDINHO 가 로날딘호 가 아닌 호나우디뇨 인 것이다.

폴투갈어를  폴투게스라고 한다.   폴투게스도 한글처럼 표음문자이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몇가지 특별사항만 좀 익히면 뜻을 몰라도 그럭저럭 읽을 수는 있다.  
글자는 알파벳을 그대로 쓴다.
이런 연유로  브라질 말은  누구던지  비록 처음일지라도  대충 읽어낼 수는 있다.


내가 브라질에 도착해서 불과 몇 달만에 처음으로 고용하게 된 가정부가 있었는데  
오종종하고 자그만 그녀는 북동지방의 가뭄지역에서 왔는데 글자도 숫자도 읽지 못하는 문맹이었다.
  
얼마 후에 고향의 어머니에게서 편지가 왔다.  
딸은 미처 못 가르쳤어도 그 어머니는 읽고 쓸 줄을 아는 모양으로 꼬불꼬불 지렁이글씨로 두 장 가득히 사연을 써 보내었다.
나의 가정부는 나보고 그 편지를 읽어달라고 하였다.

자신은 없었지만 폴투게스 교본을 옆에 놓고  들여다 봐 가면서 읽어보기로 하였다.
더듬 더듬  읽어 나가노라니 때로는  그녀가  되물어오기도 하였다.
다시 읽어주면 그럭저럭 무슨 소리인지 알아 듣는 모양이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정작 나는 하나도 모르면서 내가 거진 반 페이지쯤 읽었을까 했을 때
내 옆에 앉아서 듣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쿨쩍쿨쩍 울기 시작하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내가 뭘 잘못 읽었나하고 다시 한번 그 부분을 읽어주었다.   그녀는 계속 울었다.
내가 고만 읽을까하는 제스츄어를 보였더니 그냥 계속하란다.  
다시 또 더듬더듬 한참을 읽어주었다.

얼마후 어디쯤에서 이번에는 금세 울던 여자가 피식하고 웃었다.
왜 웃었을까?  왜 울었을까?
나는 그걸 그녀에게 물어보았고 그녀는 나에게 대답을 해 주었다.
그러나 물론 나는 아무 것도 알아듣지 못했다.

며칠 후  딴 사람에게 그 편지를 보이고 전말을 알게 되었다.
처음 그녀가 운 이유는
상빠울로로 내려올 때 그녀가  친정어머니께 맡기고 온 6 개월 된 아기가 그여이 죽었다는 소식때문이었고
나중에 피식 웃은 이유는  옆집 아가씨와  바람이 나서 도망을 가버린 그녀의 남편을  
그녀의 친정 어머니가  “그 빌어먹을 녀석“  이라고 욕을 한 부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가뭄에,  남편의 배신에,  게다가 셋째 어린애를 낳고도 생활고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여
세 자식을 친정에 맡기고 상빠울로까지 돈벌러 온 이 불쌍한 브라질 여인은  
우리 집에 한 2 년 있었는데 우리 집을 나갈 때는 문맹을 쪼금은 면하였다.  

우리 동네에 있는 카톨릭대학에서 야간에 문맹 퇴치 교실이 있다기에  나는 그녀에게 거기에 다닐 것을 권하였다.  
밤마다 공부를 하러 다녔어도 글을  완전히 깨치기에는 그녀의 두뇌가 너무 굳어졌고 그녀의 감성이 너무나 여성적이었다.

겨우 제 이름 싸인이나 하게 되었을 즈음 그녀는 멋을 내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 있어 주말에 나갔다가 외박을 하기 시작했다.  
상빠울로에  아는 사람이 없는 그녀는 그 동안은 주말 외출후 아무리 늦어도 집에는 꼭  들어왔었는데.

결국 얼마 안 가서 그녀는 우리 집 가정부일을 그만두었다.
낮에도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어렸던 나의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집에 아무도 없어서 문 열어주는 사람이 없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때때로 생겼기때문이다.

그렇게 서로 헤어져 그 후 한번도 더 만나보지 못했지만 이따금 나는 그녀가 잘 사나 궁금해 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