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는 브라질 사람만 살고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브라질에 한국사람이 살고 있음은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이 알고 있다.
어쩌다 밀려서 밀려서 거기까지 흘러갔나 은근히 무시하면서도 때로는 “에이, 나도 브라질같은데나 가서 살까부다.”  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눈이 팽팽 돌아가게 바쁘고 빠른 만원사례 한국생활에서 도저히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 종종 그런 말을 한다.  
말만 그리할뿐이지 가지도 못하면서 이도저도 안되면 그래도 갈 곳이 있다는듯이 버릇처럼 그런다.

브라질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에서 밀려난 사람들일까?  도저히 한국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부진아들이 만만하고 태평하고 기후는 좋고 살기좋다는 브라질로 몰려갔을까?

정말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내 경우를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한반도의 모든 부진아들이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누구나 다 브라질로 이동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어가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외국으로 살러 가는 사람은 어쨌든 우선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두려워하지 않았다기보다 두려움을 무릅쓰고도 변화를 마주 대적할만한 용기는 가지고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지금 브라질에 살고있는 한국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현재 브라질 한국 교민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대강 5 만명 정도 될거라고 모두들 말한다.
5 만명이라고 치고 그 5 만명은 5 만가지의 이유를 가지고 브라질땅에서 살고 있다.

이민을 가게 된 동기도 가지각색이다.
미래의 땅, 신천지를 찾아 청운의 푸른 꿈을 가슴에 안고 이민선을 탔던 초창기 이민자들을 비롯하여 최근에는 한국땅에서 말못할 잘못을 저지르고 한국으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뺑소니를 친 사람까지 그 이유를 열거하자면 밤이 새도 부족할 것이다.
서로 서로 한국에서의 과거를 모르고 본인조차도 한국에서의 과거를 묻어두고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  이민생활이 아닌가한다.

이민은 가기로 작정하기도 어렵고 가기는 더욱 어렵고 가서 살기는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이민을 가서 첫날부터 후회를 했다해도 도로 돌아오기는 더욱 더 어려운 것이다.  

이민 가는 것도 팔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브라질에서 살고 있는 우리 교포들을 나는 나하고 팔자가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우선은 매우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도 없다.  

교포들은 대부분 같은 지역에서 몰려 살고 있다.  벌어먹고 사는 생업도 대부분 같은 업종이고 서로서로 연관이 되어있다.  
멀리 멀리 타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다.  수년씩 수십년씩 같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저렇게 정이 들고 직접 개인적으로 자주 만나지는 않아도 간접소식조차 완전히 끊기는 경우도 드물다.  
누군가를 잘 알지는 못해도  아주 모른다고 할 수는 없는 그런 정도의 인지도는 거의 모두에게 상호적용이 될 수 있다.

또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아이들이 자라서 결혼을 하게 됨으로서  사돈이 되고 그 사돈네 누구하고 누구가 또 결혼이 되서 겹사돈이 되고  “이러다가 전 교포가 다 사돈 되겠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사랑도 미움도 모르는 상대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다들 어느 정도는 서로 아는 사람들이니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5 만명을 다 안다고야 할 수 없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는 서로를 알고있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입장에서 같은 팔자로 살고있음을 너도 알고 나도 알고있다. 
 
이렇게 말하면 브라질 교포사회는 아주 사이좋은 이상적인 집단같이 보일지도 모른다.   완전히 그렇지는 않지만 조금은 그렇다.  
때로는 미울 때도 있지.  그러나 미움도 뿌리는 결국 사랑의 뿌리와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성당에서 야외 미사를 간 적이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 여기 저기 자기네 돗자리를 펴고 점심 먹을 준비를 할 때 였다.  나무밑에다 자리를 펴면서  큰 올케가 나를 부른다.
“고모, 일루 와.  우리는 여기서 먹자.”
내 옆에 있던 S 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묻는다.
“고모?  저이하고 어떻게 되는 사이야?”
“우리 큰올케예요.”
“그럼 오라버니댁이라구?”
“네”
“어머나, 까딱했음 큰일날뻔 했네.”

무슨 험담이라도 할려고 했던 참인가 S 는 아슬아슬했다는 듯이
“나는 여태 몰랐네.  참 말조심해야 되.  다들 뭐가 되니까…“  한다.

올케도 전부터 잘 알고 있었고 나하고도 친분이 있던 S 는 올케와 나와의 촌수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S 씨는 수년후에 우리 집안네의 사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