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일기2


아버지의 갑작스런 병환으로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보름쯤 되었다.
처음 병원 에 갔다가 온 날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머리를 움켜쥐고  들어온 젊은이로부터
뇌졸중으로 막 쓰러진 노인까지 병원은 환자들로 넘쳐 났다.
나중에는 임시로 침대를 만들어 통로에 죽 늘어놓기도 했다.
아픈 채로 좁은 침대에 누워 의사의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들의 모습은
사람이 사는 세상이 아닌 지옥이었다.

그러나 며칠 병원에 다녀 보니 그곳에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했다.
아파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도 삶은 존재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서로서로 격려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병원 밖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버지의 콩팥을 받은 젊은이,
동생에게 콩팥을 이식해 주기 위해 함께 병원에 입원하는 자매,
한 가족이 아픈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매달리는 모습,
15년간 남편 병간호로 세월을 보낸 촌부의 이야기까지
어느 것 하나 감동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의사와 간호사와 보호자와 환자들의 눈물겨운 노력들은
병원 밖에서 보기 힘든 아름다움이었다.  

그곳은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죽어 가는 사람 옆에서 산 사람은 살려고 밥을 먹었다.
누구는 살아서 나가고 누구는 죽어서 나갔다.
병마와  사투를 벌려 이기면 살아나가고 지면 죽어서 나가는
전쟁터보다 더욱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었다.
그래서 병원에서의 삶은 병원 밖보다 더욱 감동이 많았다.

병은 모든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업이다.
병들어 죽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병마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누구든 조금의 틈만 보이면 파고든다.
그래서 병원에 가 보면 공평하게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있다.

돈과, 명예를 잃는 것은 조금 잃은 것이지만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는 말이 있다.
돈과 명예를 쫓아 살다보니 어느 날 병에 걸렸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흔히 본다.
돈과 명예에 대한 집착이 사람에게는 큰 스트레스다.
스트레스가 병의 가장 큰 원인이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인간에게 무관심과 망각이 없다면 아마도 모두 다 미쳐버리지 않을까 한다.
잃은 것은 적당히 잊고,
갖고 싶은 것에 적당히 무관심하기에는 우리가 인간이기에 쉽지가 않다.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이란 모든 소유에서 벗어나 무소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하겠다.
그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무아의 경지을 말할 것이다.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죽고 싶을 때 병원 응급실에 가 보라.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살리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보면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도 사치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한다.
욕심 없이 마음을 비우고 관조하며 사는 삶의 태도가
신의 섭리에 순응하는 최선의 방식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