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회 - 게시판담당 : 최경옥, 정환복,설인실 - 11회 모임터 가기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달려가고 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하나하나가 반갑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는지 모른다.
길가에 핀 꽃한송이도 가지를 늘어 뜨리고 서있는 나무 한그루도 잔디 위에서 노니는 오리들도 매일 매일 보건만 볼 때마다 새롭고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길을 걸으며 만나는 까맣고 무뚝뚝한 인도계의 가족들도, 생긋생긋 웃는 백인 할머니도 모두 마주치면 반가운 이웃들이다.
오늘 교회에서 만난 JAMA의 김장로님은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를 감동시키셨다. 암과 싸우면서도 우리의 청소년들을 마약과 갱, 동성애와 게임중독에서 구하고자 피곤도 잊으채 온 몸을 던져 헌신하고 계신 분이시다. 이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힘이 솟아나고 도전 받게 된다.
지금 정옥이가 기다리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가고 있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 살면서 여고 동창을 만난다는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혜경이도, 전화 목소리가 들뜬 마음인 것 같다.
정옥이 딸이 다니는 교회는 언덕위, 태평양 바닷가 절벽 위에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 교회 앞에서 기다리고 서있는 정옥이와 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반가움에 손을 들어 소리 지른다. “ 정옥아!”
갸름한 딸이 예쁘다. 정숙해 보인다. 역시 수줍음도 내숭도 정옥이에겐 없다.
쾌활하고 시원시원하니 좋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같이 마음도 시원하게 해준다.
혜경이가 Elephant Bar 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나는 밝은 정옥이의 말을 신기한듯 재미있게 듣고 있다.
‘멀고 먼 알라바마’ 에 가까운 플로리다 바닷가에 사는데 한 낚시줄에 낚시를 여섯개 매어 드리우면 한번에 삼치가 다섯마리나 올라온댄다. 인천에서 “삼치집” 다니던 분들 침 넘어 가겠다.
할머니 이야기를 물었다. 할아버지가 인천여상 교장선생님, 우리 인천여중 초대 교장선생님 이셨는데… 아이고, 초대 교장 선생님 할아버지 생각해서라도 정옥이한테 잘 해야겠다. 육이오 때 미군들에게 학교를 조금 빌려주는 댓가를 받아 원형교사을 지으셨댄다. 그 건물 허물면 정옥이 섭섭하겠다.
정옥이의 웃음띤 이야기는 계속된다.
우리 딸 둘인데 예쁘게 다 잘 컸으니 데리고 가라고 농담반 넉살을 부린다.
내가봐도 욕심나는 예쁘고 착한 커리어 우먼인데, 내 아들이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무어라 할 말이 없다.
혜경이는 전보다 더 편안해 보인다. 교회생활이 좋은가보다. 집에 제비가 들어와 집을 짓는댄다. 아마 올해는 무언가 정말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다.
아쉬움은 크지만 사진이라도 찍고 헤어지자. 정옥이 딸이 차에서 내려 얌전하게 인사한다.
아, 좀 더 일찍 만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집으로 가는 길은 무언가 빠진듯 허전하다. 정신없이 달려가 만나고, 먹고 헤어지는 짧은 만남이었다. 아마 정옥이의 이야기에 쏙 빠져 더욱 그런가보다.
“우리 친구 정옥이 참 좋죠?”
“ 그래, 인일여고인걸! 그 친구하고는 하루종일 같이 있어도 심심하지 않고 즐겁겠어. 아마, 과일로 치면 빨간 석류같다 할까? 속이 알갱이가 알알이 꽉차게 들어있거든. 정 많고 사랑많은 알갱이들일거야. 빙긋빙긋 웃는 얼굴 보면 알 수 있지. “
그래, 밝게 웃는 네 모습 예뻤어, 정옥아.
나도 덕분에 많이 웃고 마음이 밝아졌단다. 고마워.
우리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자주 연락하자.
너 보고싶으면 따님 만나봐도 될까?
혹시, 아니?
6월 8일 2008년
San Francisco에서 김 경숙.
정옥이가 초대 교장선생님 손녀딸 인줄 몰랐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서 만날까?'
오랜 세월이 흘러서 잊혀진 것만 같았던 친구의 소식은
우리가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여러곳에 흩어저 사는 친구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인터넷도 좋고~~~
아영이가 무지 반가워 할텐데.
정옥아
넉넉한 웃음이 참 좋구나.
혜경이도 오랜만이고,
엘에이는 안 오는겨?
오늘 여유가 나서 등록 다시하고 댔글을 쓴다
지난 주일은 교회 성가대에서 상조회비 올해 들어 한번도 안낸 사람 명단을 계시판에 붙여 놓았는데
거기 떡하니 내 이름이 붙어 있는거야
성가대 여러가지 일에 후원하고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상조회비 안낸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거야
명색이 부총무고 모범을 보여야 할 입장인데, 내가 요새 이런단다
지난달엔 하나밖에 없는 시누이 남편 생일을 깜박 잊고 지나가질 않나... 결혼하고 처음으로 그런 대죄를 저질렀어 ㅎㅎㅎ
암튼 이제는 떳떳하게 댓글 써야지 흐흠
정옥이가 인천여중초대교장 선생님 손녀인걸 나도 오늘 처음 알았네
원형교사의 비밀도 역시..
밝게 웃는 정옥,경숙,혜경 모두 반갑다
경수도 오랫만이다
잘지내고 있는거지?
지난 주 6월 6일 초연이 닥종이 인형 전시회에 가서 작가에게 직접 작품에 대한 해설까지
듣는 영광을 누리며 좋은 작품을 감상했어
초연이는 두작품을 냈는데 다음에 사진으로 띄어볼께
비키니를 걸어놓고 열심히 런닝 머신 위에서 뛰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그 중 한 작품인데
마치 내 모습같아 정감이 가더라구
초연이는 예술가의 손과 마음을 가진 위대한 작가더라구
이곳에서 우리 소식을 전하고 듣고 너무 좋다
예전같으면 한창일 장미가 이곳 서울에서는 벌써 지고 있네, 잘 지내, 사랑하는 친구들
명분아, 정옥이는 지금 딸 컴에 한글이 깔려 있지 않아 댓글을 쓰질 못한다네.
그냥 영어로 써도 다 안다고 하니 뉴저지에 사는 하영희 같은 영어선생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냐며 집에가면 쓴다고하네.
나도 미국에 오래 살았지만 영어도 못하고 한국어도 제대로 구사를 못하니 창피할 때가 많단다.
생기발랄한 정옥이가 그러는데 네 모습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
명분이의 젊고 예쁘고 활기찬 모습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일까?
경수야, 우린 정말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이렇게 만날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꿈을 키워오던 여고시절로 돌아가 동인천도 축현학교도 홍여문도 원형교사도 머리로 그리며 걸어보았단다.
있는 자리에서 성실하게 자기의 본분을 지키며 슬기롭게 사는 우리 인일인이 자랑스러웠다.
하하하, 선미야, 깜박깜박 하는 것이 정상인가보다.
나도 그렇거든. 생각나면 그때그때 종이에 적든지 할 일을 해야 실수가 없더라고.
선미는 바쁜중에도 친구들과 좋은 만남의 여유를 가지니 참 좋다.
쉴새없이 수다도 떨고 우리들의 쌓인 이야기 하고 다음에 또 만남을 기약하고....
그리고, 너의 설명을 들으니 궁금하던 닥종이 인형작가 초연이의 전시회 가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고마워.
오늘은 괜히 꽃내음이 나며 싱그러웠던 여고시절로 돌아가 풋풋했던 선미의 모습을 한번 그려본다.
경숙이가 우리 11기에 글을 열심히 올려주니 11기 항상 활기가 넘친다.
따끈따끈한 미국 소식 전해 주어 가까이 있는듯해.
정옥아, 내 모습 뭘 봤는데 발랄 생기 넘친다는 거야?
아마도 조금 쌩쌩해 보인담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사는 때문 아닌가 싶다.
근데 이젠 나 하고 싶은거만 하고 살 때가 아니라
남들도 하고싶은거 하면서 살도록 봉사하면서 살 나이가 아닌가 싶다.
내껄 내놔야 할 때인데 말로만 하고 실천을 못하니
이러다 죽을 때까지 못할 것 같아.
작은 시작이라도 해야징.
인천시 창영동 9번지가 내 집이였던 나는 당연히 인천 창영국민학교를 다녔어. 지금 가 보아도 빨간 벽돌로 탄탄하게 지어진 창영 국민학교는 나의 최대의 pride였던 것 같애. 인해전술 쪽수로 말하자면 어느 학교도 따라오지 못해서 인천 '공설운동장'에서 무슨 행사를 할 때마다 제일 넓게 자리 잡고 '창영 창영 창창하다 우리학교 빛나는 역사' 하면서 교가를 목청 터지게 불러제끼곤 했지.
지경이 별로 넓지 못했던 그 시절 내 생각에 우리 학교의 라이벌이라고는 주위에 있던 송림이나 서림 정도 였는데 4학년때 송림학교는 큰 불이 나서 우리 학교 마당에 천막을 치고 공부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이미 날개 쭉지가 꺽여도 한 참이었고 송림동 끝에 자리잡은 서림은 동인천 역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무대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받았었지.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는데 ........
아주 작은 숫자지만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사립학교 출신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뻔지고 말았지. 그들은 우리 창영 출신들이 그저 돈 안드는 목청을 가지고 노래만 불러제치고 있을 때 사립학교 출신들은 피아노는 물론이고 바이올린과 아코디언 첼로도 있었던가? 암튼 이런 악기로 등장을 했으며 선생님들은 또 이런 사립학교 출신들을 어떻게 귀신같이 아셨는지 이런 아이들을 은근히 비호하고 있다는 느낌을 이 촌 녀-ㄴ이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야. (순진치 않았던 나만 느끼는 것이었나?)
그리고 사립학교 출신 말고 '새로운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것이 바로 인천의 중요 요지에 자리잡고 있었던 신흥, 축현의 존재였지.
내가 여기까지 숨차게 '국민학교의 지정학적 위치와 힘'에 대하여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조정옥'때문이야. 정옥이는 기억하는 지 모르겠지만 정옥이는 나와 같이 중학교 1학년 4반이었는데, 난 이 아이의 세련된 웃음, 애교, 말투에 적잖은 문화 충격을 받았던거야. 그당시 나를 비롯한 거의 모든 아이들의 표정은 한국의 1960년대 말기 경제 정치 배경만큼이나 그저 무표정한 (물론 까불기도 하고 웃기도 했지만 평상시의 표정은 무표정, 무덤덤 이었을 것이다.) 것이었는데 조.정.옥. 은 무엔가 서양 영화에나 나옴직한 발랄함을 간직하고 있었지.
게다가 말하거나 웃을때 피는 통통한 볼의 보.조.개.는 우리 모두 선망하는 것이어서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 같애.
-아아 난 정옥이랑 별로 말도 해 보지 않았는데 왜 이리 생생한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네-
학급회의 때 정옥이가 뭔가 책임을 맡고 있어서 일어나서 말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녀의 통통 튀는 목소리와 뚝뚝 떨어지는 애교는 우리 모두의 질시를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어.
우리 질시하던 아줌마들은 은근히 그런 발랄함이 퇴색되기를 바라기도 하는 것인데 정옥이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고 모습과 목소리 그리고 화법까지 고대로 유지하고 있으니 무조건의 존경을 보낸다.
꼭 오랫만에 나오면 잔소리처럼 말이 길어지네.
이 시대 최후의 로맨티스트 경숙이와 정옥이 그리고 말도 하지 않았는데 동창회 후원금을 보내주어 그 고매한 인격을 더욱 돋보이게 했던 혜경이 다 고맙다.
감사 또 감사
정옥이는 지금 누군가와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맛있게 먹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다가 따님과 집에 갔을거야.
아이키아에 가서 나는 엄두도 못내는 책상이랑 화장대를 사서 가져와 조립해 주었다지.
내일 밤에는 낭군님이 계신 플로리다로 돌아갈거야. 어쩌면 삼치를 째고 말려서 우리모두에게 하나씩 보내줄려나.
이제 샌프란시스코 방문기를 사진과 함께 재미있게 올려주겠지. 정옥아, 잘 자라.
보람되고 즐거운 삶을 살아가는 네가 참 자랑스러워.
영란이 특유의 장편소설 잘 읽었어.
생각이 깊고 넓기도 하지.
송림다닌 나는 오후에 신흥에서 더부살이하며 공부했지. 덕분에 싸리재를 오고가며 기웃기웃 구경도 많이 했단다.
신흥에서 공부만하고 한눈안판 혜경이는 지금도 축현이 어디 있었는지 모르고 있더라.ㅎㅎㅎ
창영은 정말 큰 학교였나봐. 창영 56회인 남편 왈,
한반에 평균 93명씩 13반 이었는데 인중에 56명 들어가고 축현이 40명, 신흥이 40명, 부국이 한 10명, 그 정도였지.
부국 나온 애들은 엄마 치마자락에 매달려 커서 모두들 얌전하니 계집애 같았다고...
영란이 덕분에 옆의 우리 남편의 목소리가 커졌다.

정신없는 엄마를 닮아 아이키아 파킹장에서 차키를 잃어버리고
며칠동안 볼일도 못보고 왕 짜증이 났었단다
그덕분에 혜경이랑 경숙이랑 찡하게 만나질못해 무척 아쉬웠지만
잰틀맨이라는 단어의 해석같은 경숙이 신랑이랑
영란이 말에 딱맞는 최후의 로맨티스트 경숙이
커리어워먼 답게 맛있는거 척척 골라주는 카리스마의 혜경이..
이시대 최후의 주책바가지 까불이 정옥이..
기분이 날라갔단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때 그시절의 감정과 느낌들로..
너무 즐거웠어
경숙이 신랑님이 제고를 나왔다고 하는 말에 나는 사르르 무너져내렷고
백경수야
담에 엘에이도 뜰께
영란아..
호호 나를 이쁘게 기억해주어 고마우이..
아마도 그때 내가 맡았던일은 환경정리였을꺼여
학교다닐때의 기억이라곤
수업시간에 몰래 뜨게질하던거랑
종이 쏙닥쏙닥 오려 벽에 붙이던 기억뿐이걸랑..
경숙아 지끔은 바쁜 시간일꺼구 이따 오후에 전화할께
오늘 아침은 플로리다 바다도 시시하다
딸네집 앞거리의 커피와
신문을 읽으시던 멋진 노신사와 같이 오던 강아지가 보고프다
경숙이 덕분에 정옥이 환하게 웃는 볼 수 있어 좋구나.
츠녀때는 입을 조금만 벌리고 베시싯 웃더니
이젠 넉넉하게 200%웃어주니 보는 사람도 좋다.
웃는 모습 자주 보여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