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이명박 박근혜 이회창 진영을 막론한 전체 보수 정파들의 정치적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이명박 진영은 집권한 지 3개월도 채 못 돼 좌파와 우파의 협공을 동시에 받고 있다.
박근혜씨와 이회창 진영은 광우병 괴담과 관련해 공격의 표적을 좌파보다는 이명박 정부에 돌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주전선(主戰線)이 어디 있는가가 흐려진 이념적 혼미(昏迷)라 할 수 있다.
우선 이명박 진영은 '여의도식(式)' 정치를 배척하는 나머지,
광범위한 협력체제(coalition building)를 위한 정치의 순(順)기능까지 외면했다.
언행의 즉흥성, 경박성도 드러냈다.
각료 인선, 공천 과정, 총선 후 정쟁, 쇠고기 파동에 대한 대처방식 등 일련의 사태를 지켜본 국민들,
특히 이 정부를 탄생시킨 '애국 보수층'이 자신들의 그간의 '이명박 지지'를 급속히 철회했다.
"어떻게 되찾은 '10년 만의 대한민국'인데 이 정부가 이렇게밖엔 못하는가?" 하는 질타가, 한 원로(元老) 집회의 노기(怒氣) 서린 분위기였다.
이명박 진영의 이런 죽 쑤기의 뿌리는 과연 무엇일까?
한마디로 '철학 없는 실용주의' '인문(人文) 소양 없는 실용주의' '몰가치적 실용주의'라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를 "재주만 있으면 된다"로 잘못 해석한 것 같다.
실용주의는 원래 미국의 초창기 개척정신을 반영한 철학이었다.
그들 미국 개척자들은 '재주만 있으면 된다'가 아니라, 목숨을 던진 신념의 소유자들이었다.
자유, 민주, 공화(共和), 극기(克己), 경건(敬虔), 희생, 용기 같은 덕목들을 일관되게 지켜낸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러나 예컨대 이명박 정부의 국무총리 한승수씨 같은 이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그가 5공의 훈장을 받은 것을 시비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만한 공(功)을 세웠기에 그만한 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국무총리 인준 청문회 때 "훈장을 반납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것을 즉각 반납해 버렸다.
일 잘하고 재주는 있지만, 이(利)를 위해선 그 어떤 구속력에도 얽매이지 않는 지극히 편의주의적인 처신. 실용주의란 결코 이런 게 아닐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보수'에는 이런 유형의 인물들이 너무나 많다.
학계, 문화계, 미디어, 교육계, 경제계에도 이런 전천후 얌체들이,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평생 대운(大運)'을 누리고 있다.
이런 무원칙한 기회주의 보수로는 목숨을 던지는 좌파와 게임이 될 수 없다.
그들에게는 보신(保身)과 영달(榮達)만 있을 뿐, 일신을 던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따위는 없다.
그들은 설령 김정일이 내려온다 해도 여전히 예쁜 표정으로 생글거릴 만년 이기주의자들일 뿐이다.
광우병 괴담, 삼성(三星) 사태, 투기(投機) 의혹자들의 요직 등용(登用)을 지켜본 반(反)대한민국 세력은 이명박 정부와 '보수'의 바로 그런 문화적, 도덕적 결함을 파고들며 일대 세(勢) 결집에 나서고 있다.
이것이 '촛불'의 또 다른 측면에 도사리고 있는 저들의 상투적인 전술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씨와 자유선진당은 '촛불'의 '일반적 이명박 반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유선진당은 반(反)대한민국 세력의 그런 전술에는 함구한 채 현 사태를 즐기고만 있다.
박근혜씨는 쇠고기 파동을 "이념적으로만 볼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반(反)이명박 촛불문화제를 통해 대중들의 투쟁에 불을 붙인다… 이를 통해 5·31에는 전국 각지에서 투쟁을 폭발시켜 이 흐름으로 이명박 정부를 쓸어 버리고 6·15에 민족통일대축전을 성사시킨다"는 일부의 '계획서'는 이념인가 아닌가?
이렇듯, 무임승차로 '땡잡은' 범(汎)집권 측은 진짜 절실한 싸움을 회피하면서 땅 따먹기나 하고 있다.
참 자격 없는 사람들이다. "한국 개고기가 미국 쇠고기보다 더 위험하다"고 한 김문수 경기지사가 그래서 돋보였다.
이명박, 박근혜, 강재섭,정몽준을 능가할 '혁신 우파' 도전자들은 과연 없는가? <펌>
정치적인 것은 온전히 순수할 수 없어 좋아할 수 결코 없는 분야.
그렇지만 정치가가 정치를 잘해야 살맛나는 세상이 된단 사실 또한 중요한 현실이지.
수인이는 한국정치 관심 끊고 살아도 지장없으니 좋겠다.
그렇다고 내가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로 인한 사회적 지장에는 무관심할 수 없어 개운하지 않다.
그냥 어려서 부터 좋은 책 읽는 교육을 시키고 책 읽는 사람들이 주류인 나라가 된다면
`돈`에 대한 가치도 몰가치하지 않을 것 같고 그럴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구나.
경선아,
`철학 없는 실용주의,인문 소양 없는 실용주의는 몰가치적 실용주의다`
한번 생각해볼만한 주제 같아 반갑네.
경선이가 화두를 던졌으니
이번 기회에내 자신을 정리하는 셈치고 짧은 생각이나마 잠시 나누고 싶구나.
<절학있는 실용주의>
21세기에 필요한 정치 도구를 실용주의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겠지만
굳이 거기서 찿으려면
특히 지도력을 논할 때 필요한 덕목이란 생각이 들어.
국민 전체의 안녕과 복지를 늘 염두에 둔 치리를 하려면
인간 - 사회 - 국가 - 인류 - 등...
본질에 대한 고민 (철학) 속에서 가장 본질에 근접한 정치 철학을 지니려고 노력하는
지도자들이 많을수록 백성들의 안녕과 복지를 위한 섬김에서 실수가 적을 것 같구나.
가정이란 기본 단위로 부터 사회 ? 국가 ? 온 세계 …
공동체에 필요한 ‘살림살이’를 '정치' 라고 내 나름데로 정의한 틀 속에서
국가적으로 우리나란 어떤 정치 도구가 필요할까를 생각해 본다.
21세기
초대형 기업 독점이 국가라는 경계선까지 무너뜨리며 ‘정치’하는 세계화 속에서
우리나라가 생존하려면
아니, 생존 이상으로 온 백성이 그래도 평안히 살려면
특히 정치인들의 철학이 중요한 거 같아.
우리나라를 들여다 보면
땅 덩어리로 보면 작고도 작고
게다가 갈라진 국토에서 남북의 긴장은 풀기 어렵고
특히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구..
기본 자원의 엄청난 부족을
제 3차/4차 산업을 근면과 두뇌로 극복하는 나라의 백성이 우리라면
그런 백성을 섬기는 살림지기는 어떠해야 할까?
비록 상대적인 잣대이긴 하나
인간 생존의 기본인 의식주, 의료, 교육 혜택...등 생존의 기본을 백성 모두가 누리고
인간다운 인간을 부러워하고 닮으려는 백성들이 많아지는 나라로
이끌어가려는 의지와 길을 부단히 추구하되
피라밑 이론에서 보듯이
백성의 인구 분포가 가장 많은 밑바닥에서 중산층 계층의 백성을
보듬으려는 살림 방식을
세계 정치 사회 구도에서 자국민 보호의 근간으로 접근하는 지도력이
국가 차원에서 절실하단 생각이 드네.
이런 내 생각이 ‘정치’를 모르는 이상주의적이고 비현실적인사고(思考)로 받아질거란 생각도 들어.
하지만, 가지지 못하고 눌린 자들의 편이 되어 노력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감수하는 '지도자'들이나 ‘보통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전통이 역사적으로나 전세계적으로
버림받지 않고 꾸준히 이어오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민주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저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지도력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증거가 아닐까?
그래서 경선이 말처럼
‘철학있는 실용주의’의 가치를 지닌 지도자들이 더 많이 있었음 좋겠다.
요즈음 <미국산 소고기 ? 광우병 우려>에 대한 소식 듣고 있단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 내 입장을 정리하긴 어렵다만
국민 건강과 안녕이 협상 조건의 우선이 되었으면 싶다는 아쉬움이 있네.
일본서도 까다로운 규제를 했다는데…
마이크로 소프트에게도 <한글 ? 한컴>이 눌리지 않았던 민족일진데
아쉽게도 정부가 조금 섯부른 결정을 내린 듯 싶다.
글세 멀리서 잘못 보고 한 내 생각인지 모르니
의견이 다르면 "그럴 수도 있겠다" 라고 받아주렴.
"정치"하면 왠지 잡스럽다는 생각을 많이 가졌던 사람 가운데 나도 끼어 있었어.
방관자로서 비판만 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온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좀 더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와 마음의 여유가
나이가 들면서 더 많아져서 인지는 몰라도
혼자 산속에 들어가 독거하지 않는한
진정한 정치인이 참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더라.
게다가 '정치' 혹 ‘정치인’이란 고상한 단어가 망가진 치리자들로 인해 오염되어 있어서
참신한 단어가 있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나라 살림지기' 같은 거 말이다.
‘정치’란 단어에서 풍기는 군림, 지배 (원래는 그렇지 않는데) 보담
살림지기에선 섬김, 낮춤, 겸손이란 덕목이 드러나는 것 같고
돈, 명예에 노예되지 않을 것 같아
그러한 ‘나라 살림지기’들이 많을 때
피해야 될 화제 중 하나가 정치적인 것이지.
여기서는 정치를 논하자는 게 아니고 뭐랄까 우리 모두 인생을 살아가면서 갖춰야할 기본 소양을
소위 정치가들도 이해타산으로 빛깔 변하게 하지 말고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지.
온나라가 소고기 파동으로 들썩이지만 신문에서나 TV에서나 그에 관련된 기사는 읽지도 않을 정도로
골치 아픈 일에는 섞이기 싫은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하지만
사욕 없이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야말로 진정한 멋쟁이가 아닐까 생각한단다.
철학과 인문학적 소양이 없는 실용주의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윤 추구를 하는 격 낮은 장사치의 가치관과 동격은 아닐까?
절개란 말이 死語가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순수란 단어는 어리석음의 다른 말 정도로 여겨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난 그냥 그런 단어들이 원래의 의미대로 사용되는 그런 사회를 바랄 뿐 정치란 말은 종내 낯설기만 하구나.
댓글을 쓰고싶은 마음 굴뚝 같았으나
이몸 일상이 육체적으로 할일이 산적해있어서
열무얼가리 물김치 담는일 서부터 이것저것 하다보니 늦은 시간에서야
컴앞에 앉게 되었다네. 컴은 로그인 한 상태로 놔두면서..................
우선 경선이 말대로 종내 한결같던 내용이 아닌
글을 읽고 종교나 정치문제 사회문제를 거론하거나
거론한 글을 옮겨 올리는것도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 껄끄럽고 피하고싶은 문제들이 실상은 우리가 피해가기만 할
문제가 아님으로 어느땐 이런글도 천편일률적인 내용의 글보다는
신선할 수도 있다는것이지.
이글 내용이 신선하다는것은 아니고
가끔은 우리도 파격적인 내용의 글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비켜갈수만은 없고 전문적으로 파고들만한 실력은 없더라도
관심밖에 일이라고 근접도 안하려고 하는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컴맹에서 겨우 깨어나와서 인일홈피도 아마 생겨나지 않았을 즈음
서울서 한시간내 거리에 사는 이곳에서 TV로 비쳐지는 뉴스보다
읽을거리가 좀 더 있는 신문을 구독하려하다 그것이 여의치 않아서
인터넷신문을 보려한것이 컴을 익히는 첩경이 되었는데
그때 시점이 정치적으로 남북이 무언가 석연치않게 교류가 시작되고
어릴때이긴해도 육이오를 겪은 우리세대들이 표현은 못해도
걱정하던때였지싶었네
그때 나이어린 세대들 막내아들보다 어린학생들이 갖고있는 생각들이
급진적인 사고로 치달려 나가고 있음에 깜짝놀라
오십중반에 들어서는 내 나이에 전업주부이면서 대학생을 둔 어머니로서
그들과 토론방에서 갑론을박을 한 경험이 있었지요
6.25사변 4.19혁명 5.16 등등 파란만장한 격변, 정치사속에서 살아오면서
그래도 우리가 무너지지 않고 버틴것은 수많은 경험을 나름대로한
우리세대들이 한가지 중요한 생각을 버리지않고 있음이라고 봅니다.
비록 지금 정부도 여러가지 부족한점이 보여지고 답답하고
걱정스러운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서도
실패한 공산주의 이념의 국가 보다는 우리가 살고있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우리 나라 앞날이
지금정부의 철학이없는 실용주의 정책이라도
부족한대로 그래도 나아지지 않을가 하네요.
실용주의를 앞세우다보니 소고기 파동도 일어나는것이고
그걸 빌미로 이때다 하고 국민을 위한다는 취지아래
헤게모니 잡으려는 집단들도 아우성이지만...........다수의 국민들은
정부가 잘못된 길로 나아가질않길 바라는 염원을 갖고
잘해주길 바라고 있다고 봅니다.
극우니 극좌니 가뜩이나 패거리를 잘 만드는 우리 민족이
전세대에 유물인 이 단어를 또 들먹이게 된것이 답답하긴 합니다만
분단된 상태의 국가로 남는동안은 우리들이 숙명적으로 안고갈
숙제이고 문제일거지요.
오늘 틈틈이 들락거리면서 정치, 이데올로기, 관념적사고,
공산주의, 자본주의, 실용주의, 인문주의,
엥겔스 , 헤겔 , 마르크스, 레닌 등 등
고대 플라톤서 부터 망라한 축약된 내용등을 주욱 흝어 보면서
모처럼 다시한번 재미없지만 골 아퍼보는 시간들로
손주 들여다보는 시간도 잊고 지냈지요.
미국에 보낼 메일도 오늘 꼭 써야 했었는데
이제는 두가지는 못하는 그런 시절이 왔으니...........
나부터라도 모든걸 그냥 받아들이는 연습 끝없이 해야하리라.
경선이 덕분에
몇년전 아들같은 아이들과 대적(?) 하려고 들쳐보던 이것저것
다시한번 새삼스레 찾아보기도 하였으니
경선이가 또 까마득히 잊고사는 어느부분을 일깨워주고 촉발시켜줌에 감사한다오.
19세기?후반?이후?미국을?중심으로,?실제?결과가?진리를?판단하는 기준이라고?주장하는 철학?사상.?
행동을 중시하며,?사고나?관념의?진리성은 실험적인?검증을?통하여?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이어야?한다는?주장으로,?
제임스,?듀이?등이?대표적이다. ≒실제주의?프래그머티즘.
?
?원래는 미국 신학자 피어스(C.S. Peirce)가 주창했던 언어의 의미에 관한 이론이다.?
피어스는 수많은 추상적인 형이상학들이?
용어들의 명확한 의미를 결여한 한낱 "횡설수설"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한 단어나 표현의 합리적인 의미는?
생활에서의 행위에 어떤 의미를 주느냐에만 달려 있다.?
그런데 실험으로부터 연유되지 아니한 모든 것은 행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므로,?
누구든지 긍정이나 부정이 가능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실험적 현상들을 정확히 정의할 수 있으면,?
그 때에야 비로소 한 개념을 정확히 기술한 것이요,?
이외에는 다른 가능성이 절대로 있을 수 없다.
" 예를 들어, 어떤 문제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때에는?
그 문제를 확증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실험을 할 수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제임스(William James)나 듀이(John Dewey)는 피어스의 개념을 빌어서 발전시켰으나,?
그 의미를 근본적을 변화시켰다-
어떤 비평가는 그들이 피어스의 의미를 혼동시켰다고 하였다-
피어스가 실용주의를 "의미에 관한 이론"이라고 생각한 반면,?
제임스와 듀이는 "진리에 관한 이론"으로 전환시켰다.?
한 단어의 의미를 확립하는 것과 진리를 수립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그리하여 실용주의는 사람이 추구하는 목적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 진리라고 하는 개념과 동일시 되게되었다.?
이러함으로써 종교적, 윤리적 의미도 함축하게 된 것이다.?
실용주의는 20세기의 신학에, 특히 로마 가톨릭 현대주의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실용주의를 얘기 했다해서 꼭 정치적으로 결말을 보아야한다는 법은 없겠지요?
와우!
혜경이~~~~~
반갑습네다요 피곤이 아직 풀리지 않았을텐데
혜경이 말대로 꼭 실용주의를 꼭 정치적으로 결말을 보아야한다는 법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한국정치 가운데 선 사람이 외쳐대던 그 실용주의라는 용어
알고는 넘어가는것도 우리에게 해 될건 없을 일이고
어제 나도 덕분에 퍼스(피어스)나 듀이 제임스등 실용주의 철학자들의
면모를 간략하게나마 다시 짚어보기도했으니
그것만도 어느 학문의 개요서부터 영향까지 대략이라도 훑어볼
기회를 갖었으니 시간이 아깝지않았지요...............요말도 실용주의 노선........ㅎㅎㅎㅎㅎㅎ...
그러나 저러나 미국의 학자 제임스의 관한 흥미가 생겼으니
그 하나만으로도 재미있는 일이지요.
제임스의 아버지의 관한 부자지간의 영향이나 가족구성등을 보면
큰 영향을끼치는 학자들이나 예술가들의 환경을 무시할 수 없더라구요.
다음에서 실용주의 검색하고 브리테니카에 나오는 내용을 읽어보다보면
제임스에 눈이 가더라구요.
아침시간이라 반가워서 잠깐 들어와 보았네요.
다시 들어와 볼게요....시간이 나는데로.
윗글은
`철학 없는 실용주의,인문 소양 없는 실용주의는 몰가치적 실용주의다` 라는 부분에
밑줄 긋고 같이 읽고 싶어서 퍼온 글.
정치인들의 이름이 실명 거론된 것은 부담스럽지만
읽는이의 생각에 따라 글쓴이의 그들에 대한 생각과 다를 수 있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 방,노냥 감성을 건드리는 글이 주류였는데
이런 글로 긴장해 보는 것도 흥미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