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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나갑 500원이라고 공책 한 귀퉁이에 썼던,
엄청난 양의 빨래와 이상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던 가느다란 손가락,
다 식어버린 밥을 물에 말아 먹고 있다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를 향해 짓던 큰 웃음,
내 등을 후려치던 힘찬 손바닥, 그때 찬장에서 50원을 훔쳐서 무언가를 사먹었지.
고 3 어느 날, 낯을 있는대로 찡그리고 뜨거운 햇빛을 견디며 학교를 나오는 나를 다 괜찮다 다 괜찮다 바라보던.
외로움이랄지 그리움이랄지 번뇌랄지 후회랄지 도무지 감정이라고는 비치지 않던,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삶의 무게가 우리보다는 훨씬 무거웠을, 자기의 존재를 또각또각 구두소리에서만 비쳤던, 나중에 모든 것을 기억하기도 귀찮은 듯 입을 다물어버리신.
카네이션이 여기저기에 보이는 날~
드디어 입이 열렸네.
반가워.
이젠 우리가 카네이션 받는 나이.
이미 가버린 그 분들은 고운 환상으로 잘 포장하여 가슴에 묻고.
그 어느날엔가 다시 만나게 되면 얼싸안고 울어야지.
그땐 너무 어려서 잘 몰라서 그랬노라고
회한에 잠겨 마구 핑계도 늘어 놓으며
다시 또 한번 그 몸을 빌어 태어날 수 있다면 그땐 아주 후회없이 잘하겠다고
입에 발린 말 같지만 속에서 우러나온 고백을 해야지.
내 마음 속으로 하얀 카네이션을 달고 지냈던 날.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