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구경분    2006-01-20 06:49:03    

<바람의 친구>  

산마을의 바람은 늘 뽐내기를 좋아합니다. 산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면서 언제나 큰소리를 칩니다.
“참나무가 살랑살랑 춤을 추는 건 내 덕분이야.”
“소나무가 우우! 노래하는 것도 모두 내 덕분이지.”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냇물이 말없이 미소를 짓습니다.
“야, 냇물아, 내말이 틀리냐?”
그래도 시냇물은 미소만 짓습니다.
참나무가 상수리 무게를 못 이겨 후두두! 후두두! 상수리를 떨어뜨립니다.
그 옆의 산밤나무도 에구구! 에구구! 알밤을 떨어뜨립니다. 바람이 냇물에게 말합니다.
“냇물아, 쟤네들이 떨어지는 것도 모두 내 덕분이란다.”
그래도 냇물은 웃기만 합니다.
하늘 높이 기러기 떼가 날아갑니다.
“냇물아, 쟤네들이 저렇게 날아다니는 것도 모두 내 덕분인 거 너 모르지?”
냇물은 부드럽게 미소만 짓습니다.
바람은 말없이 웃기만 하는 냇물이 답답했습니다.
이렇게 맹숭맹숭한 아이랑 친구하자고 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를 그만두자고 할까?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바람은 마지막으로 냇물을 약올려주고 달아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야, 냇물아, 너는 도대체 하는 일이 뭐니?”
미소만 짓던 냇물이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저 위 골짜기에서부터 조그만 돌멩이들의 발을 닦아주면서 내려왔어.
평평한 곳에 닿으면 큰 바위님들의 발도 닦아드리지.
그리고 돌멩이도 바위님도 없을 땐 작은 모래알갱이들의 발을 닦아준단다.
그리고 나무가 하는 노래를 들어주고 산새들이 부르는 노래도 들어줘.
나는 내가 발을 닦아줄 때 깔깔거리고 웃는 모래알들이 너무나 사랑스럽단다.
바람아, 너 사랑이 뭔지 아니?”
냇물의 말에 산골짜기의 모든 나무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풀들도 따라서 박수를 쳤습니다. 날아가던 산새들도 박수를 쳤습니다.
바람은 갑자기 냇물 앞에서 부끄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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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칼럼에 들어가면 각 기수의 동문들이 각각의 자기 방에 주옥같은 글을 올려 놓았습니다.
어느 글 하나 소홀히 볼 수 없을 정도로 제 눈엔 모두 훌륭히 보입니다.
학창시절 독후감 숙제에는 몸을 비비꼬며 할 수 없이 읽어야 할 책을 대충 훑어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 들어가 읽으며 감동을 받곤 합니다.
독후감을 강요하지 않아 댓글도 내 맘대로 옆길로 튀기 일쑤.
그래서 매일 들여다 보지는 않아도 분위기 있는 날(오늘같이 비가 오는...)
느긋이 앉아서 새로 올라온 글, 전에 한번 봤던 글들을 찬찬히 다시 읽게 됩니다.

6.구경분선배님의 자작 '어른들이 읽는 동화' 두편 중 한편을 골라봤습니다.
소리내어 말하지 않아도, 드러내 놓고 보이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하다보면
하늘을 향해 한점 부끄럼이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