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회 - 게시판담당 : 최경옥, 정환복,설인실 - 11회 모임터 가기
사실 내가 오늘 밤 꼭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하기 싫으니까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 중고등학교때 시험 전날 소설책 붙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임.
미국에 와서 장례식을 참 많이 참석했는데(한국에 비해서) 그 일정은 다음과 같다. 장지에 가기 전 날 저녁에 추모예배를 하는데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관 속에 시체를 넣어 관 뚜껑을 열어 놓고 예배 후 한 사람씩 그 앞을 지나며 묵념을 한다. 그것을 영어로는 viewing이라고 하지. 그 옆에는 유가족들이 죽 늘어 서 있어서 인사를 일일이 한 다음 밖으로 나가게 된다.
다음날 오전에 다시 한번 예배와 전날 참석치 못했던 사람들을 위해서 인지 다시한번 viewing을 하고 드디어 장지에 가서 묻게 되는데 이때 꽃을 하나씩 나누어 주어서 그 꽃을 땅 속에 들어 간 관 위에 던지며 묵념을 한다.
사실 난 한국에 있을 때는 땅이 너무 좁아서 화장을 하리라 생각했었는데 이곳 LA는 아직은 땅이 넓고 날씨가 너무 좋아서 묘지에 가는 것이 소풍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생각을 바꿀까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장례일정 중 하나가 바로 자식이나 친구들이 하는 '추모사'야. 맨 처음 남편 친구의 아버님 장례식에 가게 되었는데 장남인 남편 친구가 나와서 울면서 말하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난 가벼운 충격을 받았지.
최근에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동생같은 분이 49살로 돌아 가셨는데 (남자 분) 그날 밤의 추모사는 나 혼자 지니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이렇게 쓴다. 이 사람은 생전에 아주 재치있는 농담을 참 잘했는데 그 때문인지 자기 장례식을 아주 밝은 분위기로 해 달라고 했다는것이야. 그래서 굳이 까만색 옷을 입고 오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이 왔더라구.
그의 친한 친구가 나와서 울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돌아가신 사람의 이름이 최홍배 강도사(목사님 되기 직전의 title임))
"홍배는 언제나 자기는 사대문 안에서 살았기 때문에 왕족이라고 자랑하곤 했습니다. 훌쩍- 그런데 제가 요즘 '이산'이란 비디오를 보다 보니 조선시대의 왕들은 영조만 빼고 모두 단명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훌쩍- 그래서 홍배가 이렇게 빨리 죽은 것을 보니 진짜 홍배가 왕족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훌쩍"
우린 울다가 다 뒤집어지게 웃었다.
또 추모사는 이렇게 이어졌다.
"한 번은 우리 wife와 홍배 wife가 둘이 일주일 동안 여행을 가게 되었죠. 나는 바가지 긁히는 사람이 없어져서 자유스런 일주일을 보냈는데 워낙 wife사랑이 지극한 홍배는 일주일 동안 이 노래만 계속 불렀다 합니다. 그리곤 실제로 노래를 불렀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기는 홀로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 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홍배는 아내가 이제는 엄마의 위치로 바뀐 것을 발견했다고 하면서요."
우린 또 한 번 울고 웃었다. 하긴 샘터에 계속 연재하는 최인호의 '가족'을 보니 그도 자기 엄마에게나 맡을 수 있던 냄새를 마누라에게서 나는 것을 안 순간 소르라치게 놀랐다고 적혀 있는 것을 읽었다.
꼭 불교의 윤회나 기독교의 부활이란 거창한 얘기가 아니더라도 난 죽는다는 것이 꼭 '끝'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의 장례식엔 그가 있었다.
하나 사족으로 더 붙이자면 20-30대엔 그저 웃는 것이 좋더니 요즘은 울다가 웃는 것이 더 좋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을 수용해서 인지 모르지.
그 강도사님 참 다정다감 하셨던 분 같구나.
엄마가 섬그늘에~~~
그 부인은 남편이 몹시 그립겠구나.
친구였던두 사람의 유머와 감정의 교류도 남 달렀던 것 같고~~~
영란아
넌,글재주가 남 다르단다.
'장화리의 종소리'를 읽으면서 내가 울다가 웃다가 한 걸 넌 잘 모를거야.
그리 웃기지 않는 스토리도 너에게서 나오면,왜 그리 웃기던지?
"콩나물에,계란부침으로 네 시누이가 네 남편 도시락을 싸 주셨는데
그걸 나누어 먹던 이야기며,"
네가 쓴 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며,울다 웃다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단다.
자랑스런 친구,영란
사랑해요.
나도 우리의 장례 문화와는 사뭇 다른 미국의 장례 문화를 접하곤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 얘긴 나중에...
바쁘다 바뻐~~ 엄마 모시고 또 나간다.
영란아
LA에서 돌아와 맘놓고 수다 떨 시간을 못가지던차에 여기서 만나니 좋다
경수 말에 백번 동감
너 이시점에 너의 회고록이나 아님 아예 작가 전업을 생각해보는것도 고려해봐
너네 가족 문집 진짜 잼나게 읽었다
구수한 강화 사투리에 외할머니와 외가 생각에 젖기도 해가면서...
나도 고1까진 거의 방학마다 강화가서 살았거덩
보니까 너네 장화리랑 우리 내리랑 가깝더라구 화도장엘 다녔거든
버스도 거기서 내려서 걸어들어갔고 한 이삼십분? 어릴땐 되게 멀었어 으스스했고
근데 거기 친구들이 내가 고등학교 가니까 하나둘 시집을 가서 안가기 시작한거지
시부모님 얘기도 네가 다시 각색해서 쓴거아니니?
진짜 실력있더라 심각하게 고려해봐
울다가 웃으면~~?
이건 좀 표현이 그래서 끝까지 언급을 못하겠네요~~
하지만~
진실로 강도사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만이~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고~~
삶속에 그를 간직하고~
영원한 기억 속에 가두지 아니하고~
함께 공존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참고로~나도 중고등학교 때 시험 일주일 전부터~문학 서적을 탐독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