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그 교회 이름이 <영양교회>였음도 그 곳에 도착을 하고서야 알았다.
따져 보니 우리는 꼭 27년 만에 그곳을 다시 찾아간 것이었다.
교회는 그 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어 보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교회 앞에 있던 시장이 복개공사를 했는지 깨끗하게 정비가 되어 있고
제법 규모가 큰 음식점도 몇 개가 새로 생겼고
말끔하게 단장을 한 군청 건물이 늙은이가 입은 새 옷처럼 생뚱맞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봐도 우리가 살았던 동네가 어디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오직 기억이 나는 것이라고는 시장 근처에 있던 교회의 붉은 건물과 동네 목욕탕, 중국집뿐이었다.
주일이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오는 길에 중국집에 들러 짜장면을 먹고 왔다는 생각밖에 나질 않으니
어디에다 대고 무엇을 물어볼 수도 없었다.
우리의 27년된 추억줍기는 불과 30분도 되지 않아서 다 끝났다.
토요일인데도 문이 꽉 잠겨 있는 교회 앞에서 그저 서성거리며 사진 몇 장 찍고 나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목욕탕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중국집도 거기에 있었지만 들어가 볼 마음이 나질 않았다.
하기야 불과 서너달 밖에 살지 않았던 동네인데 무슨 살뜰한 정이 그리 많이 남아 있을까.
그 때 만났던 사람들도 모두들 이곳을 떠나고 없을것이 자명한데 누구를 찾을까.
게다가 부대조차 철수를 하고 지금은 예비군 대대가 되어 있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거의 세번쯤 변할 시간이 지났으니 당연한 일이라 여기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으로 싸아하니 바람이 들어 오는것 같았다.
우리는 차를 돌려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아직 해가 중천에 걸려 있고 정오도 채 지나지 않은 벌건 대낮이었다.
남편이 영양에 한번 가보자고 했을 때 나는 그저 농담인 줄 알았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딱히 찾아갈 만한 추억의 장소도 없는 그곳을 찾아갈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남편이 처음 중대장으로 근무를 했던 곳이라는......
그것도 4개월쯤 근무하다가 죽변에 있는 해안부대로 가게 되는 바람에 거의 슬쩍 스치듯이 지나간 곳이었다.
- 이젠 속이 시원해요? 그렇게 와 보고 싶다더니...
- 정말로 여기는 기억나는게 별로 없네. 우리 그냥 죽변까지 가 볼까?
- 죽변에 가면 오늘 돌아오기는 어려우니까 오늘은 그냥 가고 다음에 여정을 새로 잡아요.
- 하긴.... 오늘 돌아오려면 너무 피곤하겠지?
남편은 그 길로 영덕을 지나 울진, 죽변까지 달려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곳들은 자기 삶의 전적지와도 같은 해안 중대장을 했던 곳이었으니까.
군대 생활 30년, 육사 시절까지 다 합치면 34년 동안 군복을 입었지만
남편이 야전에서 지휘봉을 잡고 근무를 한 것은 해안에서 중대장을 한 것밖에 없었다.
그 30년 중 약 삼분의 일은 위탁교육을 받으러 미국에 가서 공부하느라 고생을 했고
삼분의 일은 초급 지휘관과 정책부서에서 참모를 하며 보냈고
삼분의 일은 연구소에서 무기를 개발하며 보냈으니
보통의 군인들과는 약간 다른 경력을 쌓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에게 군복도 입지 않는 <무늬만 군인>이라고 놀려댔다. .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이번 1월에 예편을 하고 나자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그가 휘청거렸다.
말이 예편이지 연구소에서 하는 일도 똑같고, 보직도 똑같고,
정년은 오히려 더 늘어나고,
달라진 일상은 아무것도 없는데
자기를 지탱하고 있던 마음의 중심축이 무너지는양 서운해 했다.
30년 이상 신고 있던 워카를 벗으려니 발이 잘 빠지질 않는다나....
게다가 처음 육사에 입교를 하던 날 느꼈던 두려움과 설렘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는지
술 한잔 하고 들어 온 날이면 자꾸만 되풀이해서 그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그러더니 자기가 군복을 입고 아이들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어 거실에 걸어 놓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자기 곁에 있어 주어서 정말 고맙다며 내 손을 잡고 영양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도 했다.
사복을 입고 있어도 그는 결코 무늬만 군인이 될 수 없는 전형적인 군인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이러는 것도 다 삶의 한 획을 긋느라 진통을 겪는 것이지 싶다.
그러니 나는 그의 곁에서 장단을 맞춰 주며 그가 다시 민간인으로서의 새로운 자아상을 만들때 까지 기다릴 수밖에....
그래서 그와 함께 오래된 추억을 찾아 영양에도 가고,
정복을 입은 그와 함께 식구들이 활짝 웃고 있는 가족사진도 큼지막하게 새로 찍어 거실에 걸었다.
춘선이 글 읽으며
음악 들으며
내 마음에서도 싸아하는 바람 소리 같은 게 들렸어.
생각해보면
남자들이 허전해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는 게 여자들의 그것보다 더 안쓰럽게 느껴져.
난 어릴 때 같이 놀던 동네 친구들이 여자는 거의 없고 다 남자애들이었는데
어느날 문득 마주친 그 중 하나의 얼굴의 세월이 얼마나 마음을 쓸쓸하게 하던지.....
별로 내세울 것도 성공한 것도 없지만 순하게 늙어가는 모습이 아주 오래 마음에 남더라.
이상도하지.
아들만 키우며 남자들 틈에서 살아서 더 잘 이해가 되는걸까?
명옥언니...건강하시지요?
맞아요. '젊은 시절의 실패란 게 얼마나 값진 것'인지 ...절대적으로 ....공감해요.
계속 즐겁고 자유롭게 지내시기를....!
춘서나~!
내친구중에 너랑 똑같은 처지의 친구가 있었지.
육사나오시고...
30여년 나라를 위해 근무 하시고....
근데 그친구는 모든 일상적인 일들을 거부하고
약1년간 남편 옆에 있더라.
집에 계실때 꼭 붙어서 식사해 드리고
남편 움직이는대로 같이 움직이더라.
우린 뭐 저렇게 까지 할까?
했으나 지나놓고 생각하니 참 현명 했었어.
그후 남편이 다른 일 을 시작하시고 움직이시니
그때야 자기도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더라.
지금은 남편이 일주일에 두번 정도 강의 나가시는데
그때만 바깥 나들이 하고 남편 집에 계실땐
늘 같이 움직이며 지혜로운 보디가드가 되있더라.
남편이 30여년간 먹여 살리며 보디가드 해줬으니
이젠 니가 보디가드가 되드려야지?
너의 이모작에만 심취하지 말고 남편에게도
새로운 이모작의 즐거움이 생기시길 바래.
춘서니는 잘해낼꺼야.
가슴의 공허함을 네사랑으로 채워드려라.
뭐니뭐니 해도 부부사랑밖에 없지.
대화 많이 하고....
여행 많이 하고....
"내가 당신을 이~~따 만큼 사랑해요~!" 하는걸 보여드려.
병나시지 않게 조심하고...
명희 언니 ~
문득 그 남자가 늙어가고 있음을 보게 될 때
마음 속에서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연민의 정이 생겨남을 알겠어요.
그게 남편이든 소꿉친구든 일터의 동료든 상관이 없이
예전과 다르게 부쩍 왜소해진 모습을 보게 되면 위로해 주고 싶어져요.
이것도 일종의 모성본능일까요?
순호 언니 ~
이번에 남편이 그리도 허전해 하는 것을 보고
동기생 부인들에게 제가 전화했어요.
느그들 남편 제대하면 정말로 신경써서 잘해 주라고....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까
소외감 느끼지 않도록 각별히 마음을 써 주는 것이 좋겠다고 말예요.
남자들이 의외로 약한 면이 참 많아요.
우리 남편은 예편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어요.
연구소에서 하는 일도 똑같고, 여전히 바쁘고....
다만 신분이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바뀐 것 뿐이지요.
앞으로 정년퇴직을 하려면 멀었는데 이번에 연습을 미리 톡톡히 한 셈이예요.
이것도 소중한 마음훈련이다 싶어서 감사해요.
이번에 캄보디아에 간 것이 남편에게 아주 좋은 휴가가 되었어요.
변화의 시기에는 일상을 벗어나서 머리를 식히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지요.
저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어요.
군복을 벗는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서운해 하지 말고
이제야 정식으로 연구원이 되어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기뻐하라고요.
요즘은 인생을 이모작, 삼모작을 하는 시대임을 명심하라고요.
지금이 바로 다시금 새 인생을 시작하는 시기라고요.
인생이 뭐 별거 있나요?
날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새 날을 새 마음로 사는 것이지요.
남편도 지금은 제 말에 많이 공감을 하고 평안하고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왔답니다.
언니는 분명히 아름답고 즐거운 노년을 보내실거예요.
형부가 무사히 정년을 하시게 된 것을 축하드려요.
이제부터는 마음이 가는대로 하고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는 자유를 얻으신거예요.
두 분이 함께 여행도 다니시고
서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도 해 주세요.
언제든지 대전에 오시면 제가 따뜻하게 영접해 드릴게요.
그저 몸도 건강, 마음도 건강하게 날마다 승리하시기를 빕니다..
가슴이 뭉클하는 너의 글을 읽곤 잠이 더 달아나버렸어.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긴 세월을 몸 담고 계시다가 얼마나 허전하시겠니?
그러나
현명한 부인을 옆에 두셔서 바로 극복할 수 있으시니 얼마나 다행이니!!!
난, 우리 남편이
IMF 땜시 젊다 젊은 51세 때, 그러니까 올해로 꼭 10년 전이네~
내가 학교에 나간다는 핑계로
전혀 챙겨주지도 못하고
그렇게 허전하다고 느꼈을 것조차도 생각지 못했으니...........................................
이제야 너의 글을 읽곤 아하~~~ 그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바보네.
이제 지난 1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돌이킬 수 없는 그 날을 어찌 보상해 줄 수 있나???
난 정말 바보였네~~~~~나 지금 찔찔이가 되고 있어.
잘 해드리고 있으니까~ 걱정 없어. 똑똑한 춘선이!!!
순호언니랑 광숙언니도 안녕하시지요?
제가 몇 년 전부터 좋은 화가 선생님을 만나 학교 선생님들과
동호회를 만들어서 유화를 배우고 있는데요.
작년에는 전시회를 해서 작품이랍시고 일곱 개를 걸었었지요.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내어 눈에 보이는 그대로 유화 물감을 칠한 것일 뿐이지요.
화림 언니 어록을 빌면 '정통 아마추어' 임에 틀림 없는데
그런데 그 작품을 눈 여겨 본 어떤 사람이 제게 말해 주었어요.
작품에서 '세월'이 느껴진다구요.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요. 그림 실력에 연륜이 있다는 뜻이 전혀 아니구요.
그림의 주제랄까 색깔이나 내용들이
한결같이 지난 일을 추억하는 분위기라는 거지요.
그러고 보니 정말 제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인일 홈페이지 자체가 이미 추억을 공유한 이들의 마당이니까요.
광숙언니....울지마세요.
보상해드릴 시간이 아직 많이 많이 있잖아요.
춘선이처럼 현명하면서도 마음 따뜻한 사람이 우리 봄날 에 있고
인정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언니들 있어
먼지나는 일상이지만 다시금 돌아보게 해 주는 것 자체가 복이 아닐른지요.
그러저러한 온갖 이유로
늘 '봄날'인 우리 '봄날'
광숙아!
언젠가 나가 네게 전화로 "네 남편 목소리 참 멋있다. 뭐 하시는 분이니?'하고 내가 물으니
네가 "방콕이지 뭐!"라고 대답했지.
난 그 때까지만해도 방콕이란 마이 뭘 뜻하는지 몰라서
"방콕에 비지니스가 있니?"라고 대답했지~~~ ㅋㅋㅋㅋㅋㅋ
그래, 그 때 너 니 남편 많이 미워하드라. 그랬지??
네가 지금 찔찔 짜면서 마음 아파하는 니 심정 이해가 갈 것 같다.
난 내 남편이 나보다 8살이나 위이니
나보다 먼저 은퇴했지.
자기 비지니스하다 정리하고
많이 허전해 하며 새벽기도에 가면
울면서 기도하던 모습 지금도 기억 나.
지네 아버지에게 뭔가 울면서 털어놓더라구~~~
난 그래서 하나님 무서워서
우리 남편 구박 못 하고 잘 섬겼지.
요즘은 우리 아들 비지니스가 너무 바빠서
아들을 돕고 있는데, 돈 맏아서 내게 갖다줄때
아주 행복해 한단다.
나한테 많이 고마워하고 미안해 하지.
함께 새벽에 일어나
남편이 뽑아다 주는 커피 마시면서
함께 새벽기도회에 가고
함께 Breakfast를 먹으며 아들들 서로 자랑하고 대견해 하고........
나 이거 자랑하는 것 같다.
이래도 되는건가??
그냥 춘선이의 글을 읽고
나도 느끼고 생각하는바를
한번 늘어놔 봤는데
용서해 주세요~~~~
사실 우리 봄날들은 너무 사려가 깊고 정이 많아서
자기 자랑은 숨기고 남은 띄워주는 게 좀 심하거든,
(나 쫒겨나는 거 아닐까? ㅎㅎㅎ 이렇게 미리 쓰면 안 쫒겨난다. ㅎㅎㅎ)
그래서 난 꺼꾸로 맘대로 쓴단다.
우리가 착한사람 컴플렉스에서도 벗어나야한다고 생각하거든.
슬픈 일은 함께 슬퍼하고 기쁜 일은 같이기뻐하고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가는거쟎아.
한꺼풀 씌운거야 이방만 나가면 온통 천지빼까리에 가득인데 뭐!
춘자가 아버지 무서워서 잘해줬단 말 맞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까지 안 가도 자식들이며 친구들~~~~~ 다 무섭지.
특히 사람빽중에서 쎈게 요 봄날 빽이야.
30년동안 무서운 거 없는 사람이던 우리남편(요사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없어서 막가파 고아거든)
봄날 동생들 무서워서 나한테 아주 잘하게 됬단다.
전화만 오면 눈치본다. ㅎㅎㅎㅎㅎ
요새는 미국에서도 심심치않게 전화오니까 내가 아주 편하다니까.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야 휴우.....!(요건 우리 남편 멘트)"
근데 사실 마누라에게 잘 해주는 것처럼 남는 장사가 또 어디있니?
되로 주면 섬으로 받쟎아?
춘선아~
현명하고 야무진 춘선이~
너희들에게 많이 배운다.
담 모임엔 너 올 수 있는 날로 잡음 좋겠다.
모임이 있다고 하면 " 나 어느날 되요~" 그렇게 써 놓아.
그래야 얼굴 한번 볼수 있지 ~
광숙아~
내가 너 다 이해해.
너도 남편 대신 생활전선에서 일 열심히 했잖아.
어느 집이나 사정이 다 똑같진 않으니까 자책하지마~
나도 그랬어.
첨에 남편이 회사 그만두고 나선 맘 안다치게 한다고 하느라고 했는데 워낙 노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도 지치고 본인도 힘들고 그러다보니 상황이 더 나빠지더라구~
우린 17년을 놀았으니 말 다했지 뭐~
그 사이 잠깐씩 일한건 다 합해도 3년 정도 밖에 안될꺼야.
지금도 내가 내조를 좀 더 잘했더라면 ~하고 생각될때도 있지만 ~
자책하는 그 시간에 남은 시간 더 노력하고 상황에 맞춰 살아야지 뭐~
착한 광숙이 울지 말고 화이팅~
명옥아~
네가 건강 거의 찾고 남편하고 같이 잘 지내니 넘 보기 좋아.
아직도 너의 멋진 피아노 선율 귀에서 맴돈다.
이거 넘 이상해.
또 쓰려고 하면 영문자 표기가 되서 두번 써야 한다.
광야~ 넘 이상해.
명희야~
바쁜데도 지난번 봄날 모임에 와서 반가웠어.
왜 너만 보면 그 맛있는 크리스피 도넛 생각이 나니? ㅎㅎㅎ
.
반가워. 잘 지내지?
아들일이 잘 된다니 축하한다.
명랑하고 다재다능한 춘자 남편 복도 많아요.
여기 봄날 따스한 아랫목에 앉아 담소하는것 같아 넘 좋지?
자주 놀러와.
봄날이란 소 공동체가 있어서 너무 감사해요.
동생들 언니들에게 많이 배우고 친구들이 있어 힘이 나요.
모두 휴일 잘 보내시길~
언니를 잠깐 동문합창제에서 스치듯이 본 것 뿐인데
늘 만난 사람처럼 가깝게 느껴져요.
새벽이면 부부가 나란히 기도하러 가시는 모습을 그려보니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날마다 아버지께 낱낱이 고하고 하루를 시작하시는 장로님도 멋지고
아내에게 커피를 따라 주며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편도 멋있어요.
두 분의 삶이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빌게요.
저도 그런 모습으로 나이를 먹어가고 싶네요.
화림언니 ~
저는 언니에게서 정말로 많은 것을 배워요.
언니는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분이세요.
봄날의 따스한 햇볕처럼 얼어붙은 마음들을 사르르 녹여내는 능력을 지니셨지요.
언니가 있어서 우리 봄날이 진짜 봄날이예요.
언니들 ~
제 말이 맞지요?
하모하모 맞고말고!
화림이하고 있으면 옆에 있는 사람까지도 마음이 넓어지는 느낌이라니까.
"어려울 때도 웃을 수 있다는 거" 요거이야말로 축복이 아니겠니?
근데 실제로도 그렇지만 동영상에 찍힌 화림이보고 힘들다고 할 사람이 있겠니? ㅎㅎㅎㅎㅎ
여기는 댓글 쓰려해도, 글딸려, 생각딸려,
남편 위하는 맘도 딸려, 기부터 죽어요~!
그치요? 딴 봄날들? 아닌가요?
맘고운 우리 봄날 식구들 아무쪼록 변치말고
자~알 삽시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의 춘선이 모습이라고나 할까?
우리집도 이번 2월29일자로 정년을 맞았거든!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아니 내 생각엔 본인의 생활은 별로 달라진 거 없고
나의 살림만 줄었다고 푸념했는데- 느꼈는데 춘선이 말 듣고 보니 좀 이상해진 것도 있다.
우리집은 꺼꾸로 "편하다, 편하다"하면서 지내는데 은근히 떼거지를 많이 쓴단다.
사실 이번 일본 여행도 이런 저런 의미에서 했고 가서 정말 기쁜 일도 많아서
정년우울증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고 요즘도 신경 쓰고는 있어.
허지만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과정이쟎아?
난 대학 졸업 후에 한 반년인가 일년인가 아팠단다.
그냥 시름시름 소화도 안되고 기운도 없고..............놀러가는데는 다 따라가고....ㅎㅎㅎㅎ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소속이 없어진 상실감 때문이었던 것 같더라.
그냥 별 생각없이 대학까지 다니다 처음으로 나의 의견이라는 걸 내세워
피아노를 포기해버린 게 무척 아팠었나봐.
중간에 곁 길로 나가 본 경험이 있었더라면 그런 무모한 행동을 저지르지 않았을텐데..... 싶어서
난 젊은 애들에게 실패를 두려워말라고 강조하지.
젊은 시절의 실패란 게 얼마나 값진 것인지!
우리 부부는 그냥 노년을 즐겁게 살거야.
나갈 때 되면 나가야지 마냥 같은 생활을 할 수 없쟎아?
춘선아!
우리 대전까지 하루 갈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