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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배추 없어지기 전에 마지막 김장을 하려고 해남에다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어제 그것이 밤 늦게 도착해 무 채썰어 고추가루에 버무려 놓고 양념거리 다듬어 준비한 후 일단 잤다.
새벽에 일어나 배추 속 넣고 김치통에 넣으니  두통이 착실히 됐다.

김치 담그는 일을 힘든 일로 치부하고 있는 형편이니  괜시리 피곤한 것 같아 가물 가물 졸려는데
핸펀이 울린다.

"여보세요? 경선언니?
"누구...인데...?
"캐나다 순희예요"

어마나! 반가워라
일면식도 없건만 단지 인터넷을 통한 홈피에서 알게된 후배인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잠이 싹 달아남은 물론 마음에 따뜻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캐나다 벵쿠버 근처 아름다운 섬에 사는 순희
생활이 단조로와 더욱 홈피에서 노는 게 즐거운 순희
먼나라 뉴질랜드에서 지낸 경험이 있는 나로선 백프로 공감가는 얘기
별볼일 없이 번잡한 이곳에 삶보다 단조롭고 평화로운 순희의 삶을 부러워하며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


"봄날 식구들 참 좋지요 언니? 저 봄날 회원된 것 너무 잘한 것 같아요."
"그럼 너무 잘했지...여기서 순희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어....." 

나붓나붓한 순희의 목소리를 들으며,  거창하게도 홈피의 純기능을 생각하며 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或者는 드러나는 이름을 저어해서
或者는 드러난 이름이 해부당할 것을 부끄러워해서
或者는 익명의 섬에서 드러낼 흰 이를 감추며

홈피를 들락거리면서도  흔적을 남기지 않겠건만
우리가 홈피에서 얻는 의미는  대단하다면 대단하다.


부부의 연보다 더 연이 깊다는 동문 수학의 연을 확인하는 장소가 홈피이기 때문이다.
유년의 뜨락을 같이 노닐고 공부하던 인연을 찾아 맺으니 善緣이요,
해서 잃어가던 젊은 감각도 돌이켜지니 어찌 아니 좋을까
사실 나는 퇴화 되어가는 감각기관의 치료를 여기를 통해서 받은 고마움을 갖고 있다.
그것이 홈피에서 노닥거리는 시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오늘은 음식 만드는 날로 잡았기 때문에 이제부터 만두거리 손질해 만들어야하고 
밑반찬도 몇가지 해야하는 바쁜 날임에도 불구하고
이 생생한 기분 잊기 전에  잠시 홈피에 들어와 주절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