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에 대한 시각 ***
부처님께서 꼬살라국 사왓티 기원정사에 머물 때, 사왓티 사람들이 자비스럽고 부모에게 효도를 잘하며 삼보(三寶)를 잘 받든다는 소문이 마가다국 왕사성까지 퍼졌다.
왕사성에 사는 한 바라문이 그 소문을 듣고 사왓티로 오다가 늙은이와 젊은이가 밭갈이하는 옆을 지나게 되었다. 그 때 갑자기 독사가 나타나 젊은이를 물어 쓰러뜨렸다. 늙은이는 그것도 모른 채 밭만 갈고 있었다. 바라문은 젊은이가 밭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노인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여기 젊은이가 쓰러져 있는데, 누구요?"
"내 자식입니다."
바라문이 쓰러진 젊은이를 살펴보니 이미 죽어있었다. 바라문은 아들이 독사에 물려 쓰러져 죽었다고 말하는데도 노인은 여전히 밭갈이만하고 있었다.
"여보시오. 당신의 아들이 죽었는데도 울지도 않고 밭만 갈고 있으니 어찌 그리 무정하시오?"
"사람이란 태어났으면 반드시 죽게 마련이고, 만물 역시 생겼다가는 부서지는 법이라오. 착한 사람에게는 선(善)의 과보가 있고, 악(惡)한 사람에게는 악의 과보가 있는 법이거늘 내가 무엇을 근심하고 걱정하겠소. 내 자식이 죽었다고 내가 지금 땅을 치고 운다한들 이미 죽은 자식에게 무슨 득(得)이 있겠소. 내 그대에게 청이 하나 있으니 들어주시겠소. 그대가 성안으로 들어가거든 우리 집을 지날 때 내 아들은 이미 죽었으니 한 사람 분의 점심만 가져오라고 한다고 마누라에게 전해 주구려."
바라문은 저 늙은이가 자식이 죽었는데도 먹을 것 타령만 하는 것을 보니 사왓티 사람들이 자비심이 많다는 말도 헛소문이라고 생각하며, 성안의 노인 집으로 가서 죽은 아이의 어미에게 말했다.
"당신 아들이 밭갈이를 하다가 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비가 되는 사람은 슬퍼하지도 않더이다. 더구나 죽은 자식의 밥은 빼고 한 사람 분의 점심이나 가져오라고 하니 아비가 어찌 그리 무정할 수 있습니까?"
노인의 아내는 바라문에게 비유로 말했다.
"내 자식이 비록 내 몸을 빌어 태어났다고 하지만 내가 오라고 불러서 온 것이 아니었지요. 제 스스로 왔다가 제 스스로 가버리는 것을 어미인 난들 어찌 가는 것을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마치 손님이 와서 주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때가 되어 가버리는 것을 붙잡아 둘 수만은 없듯이 우리 모자(母子)도 그와 같답니다. 자식이 오고 가는 것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지은 업(業)을 따르는 것이라서 나도 어찌할 수가 없답니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그 일을 두고 내가 슬퍼하고 통곡한들 무슨 득이 있겠소."
바라문이 다시 죽은 이의 누이에게 말했더니 그 역시 담담하게 말했다.
"목수가 숲 속에 들어가 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들어 흘러가는 물에 띄웠을 때, 갑자가 폭풍을 만나 나무를 묶었던 끈이 끊어져버리면 나무들이 흩어져 물결 따라 제각기 떠내려가듯이, 우리 형제가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도 그와 같답니다. 형제의 인연이 되어 한 집에 태어나 살다가 제 명(命)의 길고 짧음의 인연을 따라 서로 헤어져 버린답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으니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은 정(定)한 이치일 터이고 보면 목숨이 다해 먼저 가는 것도 자신의 업을 따르는 것이거늘 형제인 전들 어 말릴 수가 있겠습니까? 설사 내가 때를 굶고 슬피 운들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내가 목을 놓아 울고불고 한들 가족에게 슬픔과 아픔만을 자초하지 않겠습니까?"
바라문은 죽은 자의 아내에게 말을 했지만 그 역시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다.
"하늘을 날던 새가 날이 지면 나뭇가지 위에 모여 잠을 자다가 날이 새면 제각기 먹을 것을 찾아다니다가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고 인연이 없으면 헤어지는 것처럼 우리 부부도 그렇답니다. 부부의 인연일지라도 생사(生死)의 길을 가고 오는 것은 자기 업을 따르는 것이거늘 내 힘으로 어찌하겠습니까? 내가 지금 남편의 죽음 앞에서 손을 놓고 울어보아야 한때나마 아름답던 사랑만을 잃게 할 뿐이니, 그 역시 부질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바라문은 마지막으로 그 집의 하녀에게 말했더니 그녀 역시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우리 주인과 인연으로 만났으나 주인은 어미 소와 같았고 나는 송아지와 같았었지요. 송아지가 어미 소를 따라다니지만 사람들이 어미 소를 죽일 때 송아지가 옆에 있다고 한들 어찌 어미 소의 목숨을 구해낼 수 있겠습니까? 내가 지금 주인의 죽음 앞에서 슬퍼해 보아야 그는 알지도 못할 터인데 내가 일손을 놓고 슬픔에 빠져보아야 괜스레 내 일손만 더디게 할 뿐이지요."
바라문은 그 가족들의 말을 듣고 앞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지만 이왕에 사왓티에 왔으니 부처님이나 뵙고 가야겠다고 기원정사를 찾았다. 그는 부처님을 뵙고 자기가 본 것을 말씀드리고 다시 여쭈었다.
"저는 왕사성에 사는 사람인데, 사왓티 사람들이 자비심이 깊고 부모를 섬기는 효성이 지극하며 삼보(三寶)를 잘 받든다고 소문이 났기에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멀리서 왔습니다. 그렇지만 저 사람들을 보니 자비심도 없고 은혜도 모르며 인정머리조차 없는 것 같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그 사람들은 그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사람들이 아니오. 그들이야말로 육신(肉身)이 덧없는 것이라는 도리(道理)를 가장 잘 알고 있는 현명한 사람들이 아니겠소. 죽음이란 고금(古今)의 성인들도 어찌하지 못했거늘 하물며 범부들이 땅을 치고 울고불고 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자기에겐 죽음이 없을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어리석은 것이요. 진실로 소멸(消滅)되게 되어 있는 것은 소멸되게 마련이고, 파괴되게 되어 있는 것은 파괴되기 마련이오. 태어났다가 죽는 일은 어떤 한 개인 또는 어떤 한 마을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라도 일어나는 일이지 않소. 이 세상 어디에도 죽지 않는 생명이 없고, 어떤 존재도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것은 없소이다. 생명은 모두가 죽게 마련이고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소멸되기 마련이라는이 엄연한 이치를 깨달아야 할 것이오. 바라문이여, 삶이 확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이 확실한 것이오. 다만 언제 어떻게 죽을지를 모르기 때문에 마치 죽음이 없는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것이 범부들의 어리석음이 아니겠소."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난 바라문은 그들에 대한 불신(不信)과 의혹이 사라지고 장님이 눈을 뜨듯이 마음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그 후 바라문은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경전을 일고 수행에 힘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