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시,소설 및 기타 문학적인 글을 쓰실 수있는 공간입니다
근래안부문여하(近來安否問如何) 님이시여 요즘 어떠신지요
월도사창첩한다(月到紗窓妾恨多) 창문에 달 비치면 새록새록 님 그리워
약사몽혼행유적(若使夢魂行有跡) 꿈 가는길 발자국 남기기로 하자면
문전석로반성사(門前石路半成砂) 님의 집 문앞 돌길 반은 모래 되었을 것이외다
그 동안 안부를 묻자오니
어찌 지내시는지요
달빛이 창에 비치오매
그리운 생각 끝이 없사옵니다.
만약 꿈길에 가는 넋이
발자취를 남길 수 있다면
그대 문 앞의 돌길은
닳고 닳아서 모래밭이 되오리다.
이옥봉의 시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작품으로 ‘운강에게 드림’이라는 시다. 사랑하는 님을 만나고 싶은 애타는 마음을 담은 시로 구절을 따서 몽혼(夢魂)이라고도 부르고 ‘나의 이야기(自述)’라고도 부른다.
이옥봉은 선조 때 옥천 군수를 지낸 이봉지의 서녀로 조선 중기 대표적인 여류시인이다. 어려서 부터 시문에 뛰어난 재주를 보인 옥봉은 첩살이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결혼을 포기하고 서울로 갔다. 단종 복위 운동에 뛰어 들었고 유명인사와 어울리며 곧 시귀를 짓는 선비들 사이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리고 옥봉은 서울에서 조원이란 선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여염의 여인이 시를 짓는 건 지아비의 얼굴을 깎아내리는 일이라면서 앞으로 절대 시를 짓지 않겠다는 맹세와 함께 첩살이를 자처했다. 자신의 시는 외로움과 허망함의 발로였으니 지아비를 얻으면 시를 쓰지 않아도 좋으리라고 생각하며.
어느날 산지기의 아내가 옥봉을 찾아와 남편이 소도둑 누명을 쓰고 잡혀 갔으니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옥봉은 ‘이 몸이 직녀가 아닌데 낭군이 어찌 견우가 되리오’ 라고 적힌 시를 파주목사에게 보냈다. 이는 첩의 신세가 직녀가 아닐진대 견우 즉 소를 끌어간 사람이 자신의 남편이 아니라는 말로 죄가 없음을 글에 담은 것이었다. 옥봉의 재치에 탐복한 파주목사는 산지기를 풀어 주었다.
그러나 이 일로 옥봉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조원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여자와는 살 수 없다”며 내친 것이다. 옥봉은 조원의 마음을 돌려 보려 애썼으나 모두 허사였다. 좌절한 옥봉은 중국행 배에서 바다로 뛰어 들어 생을 마감했다.
훗날 조원의 아들 조희일이 명나라 사신으로 가서 ‘이옥봉 시집’ 을 보게 되었다. 그 시집은 수십년 전 온 몸에 자신이 쓴 시를 노끈으로 감고 발견된 여인의 시체에서 나온 것으로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 이라 씌여 있었다. 조선시대 여성을 가정 안에서의 존재로 규정하고 그 틀을 벗어나는 여성은 천시하거나 사회적 보호 밖에 두었던 조선시대의 여성관에 죽음으로 항의하여 사랑을 위해 시를 포기했지만 자신의 삶은 결국 시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침묵으로 웅변하면서 죽음을 택했다.
2006.01.13 18:41:08 (*.234.131.125)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네요.
찬찬히 읽다보니 영화를 한 편 보는 것 같네요.
며칠 전에 테레비에서 스캔들(조선남녀상렬지사) 재방송을 본 덕분인지...
흠.... 역시 가인박명이군요.
찬찬히 읽다보니 영화를 한 편 보는 것 같네요.
며칠 전에 테레비에서 스캔들(조선남녀상렬지사) 재방송을 본 덕분인지...
흠.... 역시 가인박명이군요.
2006.01.13 21:09:41 (*.238.113.69)
윤옥후배~
어디서 이렇게 가슴아픈 이야기를 옮겨 놓았는지 잘 읽었어.
그리움이 얼마나 절실했으면 저런 시가 나올까?
근데 너무 슬프다.(x13)
어디서 이렇게 가슴아픈 이야기를 옮겨 놓았는지 잘 읽었어.
그리움이 얼마나 절실했으면 저런 시가 나올까?
근데 너무 슬프다.(x13)
2006.01.15 00:11:39 (*.116.77.107)
제고14회 허경진선배께서 쓴 책
<여섯사람의 옛시인--청아출판사,1980>을 보니,
허초희(허난설헌 1584년생/27세에 졸)는 재주로 보나 자세로 보나
남편에 비할 일이 없을 정도였다 하는데 그 때에 어떤 사람들이
허초희의 이름을 빌어 다음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인간세상에서는
김성립과 한번 헤어지고 나서
지하에 들어간 뒤
두목지(당대 중국의 잘생긴 시인)와 다시 만나리.
그러자 정만조라는 사람은 위의 시를 들면서,
만약 사랑의 시를 짓는다면 반드시 이와같은 모욕을 받을 것이니,
그러므로 딸을 기르는 사람들은 딸에게 엄히 시를 짓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천한 무리들은 듣고 보는 것이 거의 없으므로, 창기 가운데나 혹시 시를 짓는 사람들이 있다
라고 할 정도로 너무나도 심하게 난설헌을 헐뜯었답니다.
다음의 시를 보시지요.
가을의 호수는 맑고도 넓어
푸른 물은 구슬처럼 빛나는데,
연꽃으로 둘린 깊숙한 곳에다
목란 배를 매어 두었네.
님을 만나 물건너로
연꽃 따서 던지고는,
행여나 누가 보았을까봐
한나절 혼자서 부끄러웠네
이 아름다운 시가 당대에는 방탕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답니다.(:ad)(:ad)
**** 박윤옥님, 호주지부 모임이 즐거운 만남이 되기를 바랍니다.(:f)(:f)(:f)
<여섯사람의 옛시인--청아출판사,1980>을 보니,
허초희(허난설헌 1584년생/27세에 졸)는 재주로 보나 자세로 보나
남편에 비할 일이 없을 정도였다 하는데 그 때에 어떤 사람들이
허초희의 이름을 빌어 다음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인간세상에서는
김성립과 한번 헤어지고 나서
지하에 들어간 뒤
두목지(당대 중국의 잘생긴 시인)와 다시 만나리.
그러자 정만조라는 사람은 위의 시를 들면서,
만약 사랑의 시를 짓는다면 반드시 이와같은 모욕을 받을 것이니,
그러므로 딸을 기르는 사람들은 딸에게 엄히 시를 짓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천한 무리들은 듣고 보는 것이 거의 없으므로, 창기 가운데나 혹시 시를 짓는 사람들이 있다
라고 할 정도로 너무나도 심하게 난설헌을 헐뜯었답니다.
다음의 시를 보시지요.
가을의 호수는 맑고도 넓어
푸른 물은 구슬처럼 빛나는데,
연꽃으로 둘린 깊숙한 곳에다
목란 배를 매어 두었네.
님을 만나 물건너로
연꽃 따서 던지고는,
행여나 누가 보았을까봐
한나절 혼자서 부끄러웠네
이 아름다운 시가 당대에는 방탕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답니다.(:ad)(:ad)
**** 박윤옥님, 호주지부 모임이 즐거운 만남이 되기를 바랍니다.(:f)(:f)(:f)
2006.01.15 13:29:55 (*.215.12.116)
사자성어를 하다보니 '견우직녀' 가 생각났습니다.
견우직녀를 다른 방도로 써서 위기를 모면한 이옥봉의 재치가 생각났습니다.
이옥봉이 어떠한 사람인지 궁금해서 알아보고 이리저리 나름대로 검증을 하여 올렸습니다.
옥봉 말고도 수려한 한시를 남긴 여성 시인은 드물지 않습니다.
진수 선배님이 위에 올린 허난설헌, 그리고 신사임당, 황진이, 매창 등.
그러나 다른 여성 시인에 비해 옥봉이 돋보이는 부분은 정치와 사회 현실에 대한 깊은 응시와 비판이라고 하며 첩의 딸로 태어나 첩으로 살았기에 여느 여성과 달리 예민한 사회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닷새는 강을 끼고 사흘은 산을 넘었지 / 노릉의 구름 속에서 슬픈 노래도 끊기네
첩의 몸도 또한 왕실의 자손이라서 / 이곳 접동새 울음은 차마 듣기 어려워라
조원을 따라 영월로 가다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비참하게 죽은 단종의 능을 지나면서 애도한 <영월도중>으로 자기는 비록 첩의 자식이나 왕실 자손임을 자각하고 살아간다는 자부심과 의연함이 엿보인다고 하며 이 시를 두고, 시인 허난설헌의 오빠 허균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시가 맑고 강건하여 연지 찍고 분 바르는 얘기가 아니다.”
조선 후기 문인으로 시평에 뛰어났던 홍만종은 “사람들이 조원의 첩 옥봉 이씨를 조선 제일의 여류시인이라 일컫는다”고 시평집 《소화시평》에서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견우직녀를 다른 방도로 써서 위기를 모면한 이옥봉의 재치가 생각났습니다.
이옥봉이 어떠한 사람인지 궁금해서 알아보고 이리저리 나름대로 검증을 하여 올렸습니다.
옥봉 말고도 수려한 한시를 남긴 여성 시인은 드물지 않습니다.
진수 선배님이 위에 올린 허난설헌, 그리고 신사임당, 황진이, 매창 등.
그러나 다른 여성 시인에 비해 옥봉이 돋보이는 부분은 정치와 사회 현실에 대한 깊은 응시와 비판이라고 하며 첩의 딸로 태어나 첩으로 살았기에 여느 여성과 달리 예민한 사회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닷새는 강을 끼고 사흘은 산을 넘었지 / 노릉의 구름 속에서 슬픈 노래도 끊기네
첩의 몸도 또한 왕실의 자손이라서 / 이곳 접동새 울음은 차마 듣기 어려워라
조원을 따라 영월로 가다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비참하게 죽은 단종의 능을 지나면서 애도한 <영월도중>으로 자기는 비록 첩의 자식이나 왕실 자손임을 자각하고 살아간다는 자부심과 의연함이 엿보인다고 하며 이 시를 두고, 시인 허난설헌의 오빠 허균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시가 맑고 강건하여 연지 찍고 분 바르는 얘기가 아니다.”
조선 후기 문인으로 시평에 뛰어났던 홍만종은 “사람들이 조원의 첩 옥봉 이씨를 조선 제일의 여류시인이라 일컫는다”고 시평집 《소화시평》에서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2006.01.15 13:30:57 (*.215.12.116)
여러 인일 선배님들, 그리고 진수 선배님, 호주에서의 인일동창의 첫 만남, 감격이었습니다. 계속 지켜봐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2006.01.15 14:15:39 (*.126.134.181)
이 시대에 태어난 게 여자에겐 행운일세...::$
이역만리에서 살면서 우리 것을 아끼는 모습 인상적입니다.
옥봉얘기 잘 읽었어요.
이역만리에서 살면서 우리 것을 아끼는 모습 인상적입니다.
옥봉얘기 잘 읽었어요.
2006.01.16 17:46:38 (*.243.211.169)
박윤옥님, 이옥봉의 시 소개해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답례로 위에 글에 언급된 제가 좋아하는 매창의 시조와 한시 를 올립니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 한 임
추풍 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梅窓(1513~1550)은 중종 때 부안 명기로 거문고에 능하고 한시를 잘 지었는데 그가 지은 한시 40여수가 '매창집'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당대의 대시인 村隱 柳希慶과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의병으로 떠난 촌은이 소식이 끊겨 매창은 이 시조를 짓고나서 수절하였다 한다.
몇년 전에 TV 드라마로 허균의 일대기인 '천둥소리'를 방영할 때 매창, 허균, 촌은의 사귐도 나왔는데 이 시조가 절창이라면서 소개되어 무척 반가웠다.
매창이 죽은지 얼마 후에 부안의 시인 단체에서 묘비를 세웠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글자가 마멸되어 다시 묘비를 세웠다고 한다. 또 부안의 서림공원에 가면 지방 유지들이 '매창기념사업회'를 조직해 매창 시비를 세웠는데 이 시조가 새겨져 있다고한다. 남존여비와 반상의 구별이 엄격했던 당시에 기생의 묘비가 유생들에 의해 두번이나 세워졌고 시비까지 세워 기념하는 일은 아마 최초가 아닐까한다. 그러나 매창,그에게는 조금도 분에 넘치는 일이 아니다. 그는 그만큼 뛰어난 詩人이었으니까.
그가 남긴 '次過客韻'이란 한시 한편을 소개한다.
平生恥學食東家 (평생치학식동가)
獨愛寒梅映月斜 (독애한매영월사)
時人不識幽閑意 (시인불식유한의)
指點行人枉自多 (지점행인왕자다)
평생에 기생된 몸 부끄러워서
달빛 젖은 매화를 사랑하는 나
세인은 내 마음을 알지 못하고
오가는 손길마다 추근거리네.
답례로 위에 글에 언급된 제가 좋아하는 매창의 시조와 한시 를 올립니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 한 임
추풍 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梅窓(1513~1550)은 중종 때 부안 명기로 거문고에 능하고 한시를 잘 지었는데 그가 지은 한시 40여수가 '매창집'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당대의 대시인 村隱 柳希慶과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의병으로 떠난 촌은이 소식이 끊겨 매창은 이 시조를 짓고나서 수절하였다 한다.
몇년 전에 TV 드라마로 허균의 일대기인 '천둥소리'를 방영할 때 매창, 허균, 촌은의 사귐도 나왔는데 이 시조가 절창이라면서 소개되어 무척 반가웠다.
매창이 죽은지 얼마 후에 부안의 시인 단체에서 묘비를 세웠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글자가 마멸되어 다시 묘비를 세웠다고 한다. 또 부안의 서림공원에 가면 지방 유지들이 '매창기념사업회'를 조직해 매창 시비를 세웠는데 이 시조가 새겨져 있다고한다. 남존여비와 반상의 구별이 엄격했던 당시에 기생의 묘비가 유생들에 의해 두번이나 세워졌고 시비까지 세워 기념하는 일은 아마 최초가 아닐까한다. 그러나 매창,그에게는 조금도 분에 넘치는 일이 아니다. 그는 그만큼 뛰어난 詩人이었으니까.
그가 남긴 '次過客韻'이란 한시 한편을 소개한다.
平生恥學食東家 (평생치학식동가)
獨愛寒梅映月斜 (독애한매영월사)
時人不識幽閑意 (시인불식유한의)
指點行人枉自多 (지점행인왕자다)
평생에 기생된 몸 부끄러워서
달빛 젖은 매화를 사랑하는 나
세인은 내 마음을 알지 못하고
오가는 손길마다 추근거리네.
나도 작가 섹션에 오면 마음이 차분해 지고 편안해 집니다.
참여하시는 선배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