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내산 일출광경 )

日 出 記 세 편



나이 오십이 되도록 해 뜨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아마 태생적으로 아침 잠이 많아서 그랬겠지만 특별히 떠오르는 해를 봐야겠다는 열망이 없었던 탓이다.
그런 내가 작년에 중국 황산에서 일출을 본 것을 시작으로 통틀어 세번이나 해 뜨는 광경을 지켜 보았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남들이 다 해보는 일중의 하나를 해 본 셈이다.
그래서인지 해돋이를 하던 그 순간의 감격이 너무도 커서 내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 제 1편 :  낙타 타고 올라서 본 시내산 일출

이스라엘에서 이집트 국경을 넘어 들어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광야길을 달려서 시내산에 도착했다.
이집트 날씨가 낮에는 너무도 뜨거워서 시내산을 오르려면 새벽 두시부터 길을 나서야 했다.
서걱거리는 굵은 모래와 황토색 바위들로 이루어진 구불구불한 절벽길을 걸어서 가든지
미국돈 10불을 주고 베두윈족이 모는 낙타를 타고 가든지 해야 한단다.
걸어가도 힘이들고 처음 보는 짐승을 타고 가는 것도 만만치 않게 두려웠다.
그래도 워낙 산에 오르는 것을 힘들어 하는 부실한 처지라 낙타의 신세를 지기로 하였다.

산 밑에서 걸어갈 사람과 낙타를 타고 갈 사람을 나누었다.
타고 갈 사람들이 모여서 낙타몰이 베두윈들의 대장에게 1불을 내면
곧바로 산행을 도와 줄 몰이꾼의 이름을 불러내 손님과 짝을 지어 주었다.
산행 도중에 몰이꾼이 강도로 돌변하는 사례가 하도 빈번하여 실명제를 실시하는 것이라 했다.
어둠 속에서는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피부가 새까만 베두윈을 따라 자기가 타고 갈 낙타를 찾아 일행이 모두 흩어졌다.
내가 탈 낙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마침 정월 대보름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은 살짝 찌그러지긴 했어도 맑은 달빛이 구름 속에서 나오고 있어서 옆에 가는 베두윈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그는 키가 작고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말랐지만 탄탄한 체격의 남자였다.

낙타는 엎드려 있었다.
앞다리와 뒷다리를 모두 완전히 꺾어서 제 몸 밑에 접어 넣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짐승의 모습이
너무나도 겸손해 보여서 그 등에 올라 타기가 미안했다.
낙타 등에 있는 혹에 굵은 나무 기둥이 박혀 있는데 그것이 손잡이였다.
혹과 혹 사이에다 안장을 얹어 놓은 곳에 몸의 중심을 잘 잡고 앉아야 했다.
엎드려 있던 낙타가 휘~청 하면서 일어섰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낙타 등이 높아서 가슴이 섬찟했다.
그리고 발끝에서 느껴지는 뭉클한 촉감과 짐승의 체온이 낯설어 엄마야 ~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낙타는 생각보다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산을 올라갔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도 빠듯한 좁은 길을 낙타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져 행렬을 지었다.
앞에 가는 낙타의 걸음걸이를 보니 금방이라도 절벽으로 굴러 떨어질 것처럼 위태롭다.
무슨 심산인지 낙타들은 모두 길 가운데를 놔두고 낭떠러지쪽으로 바싹 붙어서
가느다란 다리를 한발짝씩 떼어 놓았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걸음인데도 등에 얹혀가는 것이 생각보다 편안했다.
온 몸에 있는 힘을 다 빼고 짐승에게 온전히 내 몸을 맡기고 나니
두려움도 가시고 꺼떡꺼떡 올라가는 리듬을 타게 되었다.


머리 위로 무수한 별빛이 쏟아지고 달빛이 온 몸에 감겨 들었다.
가슴 속에서 시뻘건 불덩어리가 치밀어 오르는 듯
갑자기 목이 콱 막히더니 울음이 터져 나왔다.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던 하나님을 나도 경외하나이다.
그 때 그가 만났던 여호와를 지금 저도 만나기를 원하나이다.
내가 죽어서 주를 뵈옵기 전에 이렇게 살아서 주의 임재를 보기 원하나이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를 향해 주를 뵈오러 가나이다.

낙타를 타고 가는 1시간 반 동안 나는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이 멀리까지 무사히 온 것이 감사해서 울고,
며칠 후에 시험보는 수험생 아들을 위해 기도하다 울고,
성경에서만 보던 곳에 실제로 왔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울고,
두고 온 식구들 생각에 미안해서 울고,  
나를 태운 짐승이 고마워서 울고,
(낙타의 평균 수명이 40년인데 시내산 낙타는 평균 5년밖에 못 산다고 했다. 노역이 너무 힘겨워서.)
살아서 좋은 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떠난 엄마 생각이 나서 울고....

감정이 절정에 이르면 자기도 주체할 수 없이 우는 사람이 있다더니 내가 그랬다.


그렇게 울면서 한시간 반을 올라 낙타와 작별을 하고 나니
이번에는 돌계단 760개를 내 발로 딛고 올라가야 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갈 수 없는 좁은 계단길 바로 옆은 낭떠러지 였다.
쉬엄쉬엄 조심조심 앞 사람의 뒷모습만 보면서 다시 한시간쯤 올라가다 보니 돌계단이 끝났다.
정상에 오른 것이다.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먼 하늘에서 부터 희뿌옇게 동이 터오고 있었다.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 해가 떠오르는 쪽 바위산은 온통 사람으로 병풍을 쳤다.
기온은 아주 많이 낮았지만 다행히 칼바람은 불지 않아서 목을 길게 늘이고 일출을 기다릴 수 있었다.

동쪽 하늘 전체에 붉은 띠가 드리워졌다.
붉은 띠 어디에서 해가 나타날지 몰라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러시아에서 왔다는 키가 큰 순례객이 나를 자기 앞에 끼워 준 덕분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해 뜨기만을 기다릴 수 있었다.
이윽고...
바로 내 앞에서 용광로에 넣어 달구어 낸 것같은 시뻘건 것이 손톱만큼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숨을 죽이고 있다가 산이 터져라 함성을 질러댔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시내산에서 맞이한 태양은 포철 용광로에서 들어 올린 달군 쇳덩어리 같았다.
게다가 그것은 조금씩 천천히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달음질쳐 오르는 것처럼
순식간에 찬란한 빛을 뿌리며 후다닥 날아 올랐다.

햇살이 퍼지고 나니 황무하고 삭막한 시내산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풀 한포기 없는 시뻘건 돌산이 켜켜로 층층이 쌓여 있었다.
결코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없는 풍광인데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찬양을 불렀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시내산은 그저 평범한 산이 아니라 靈山이 분명했다.
내 말이 짧아서 당시의 느낌들을 다 옮길 수 없는 벅찬 감동을 주었으니 말이다.
이것이 내 생애 세번째 일출기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3-18 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