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연말이 되면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 저희 가정은 늘 연하장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학이나 눈 덮인 산, 난등이 그려진 여러 가지 연하장을 사오면 간단한 인사말을 적어서 또 저에게 부치고 오라고 하셨는데  연하장이나 카드를 보내는 것은 그 당시의 중년부인으로선 매우 드문 일이었는데도 어머니는 제가 기억이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을 졸업 할 무렵까지 빠짐없이 연하장을 보냈습니다
“일 년 동안 신세 진 것을 이 것 하나로 때우는 구나 연하장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라는 말을 자주 하였는데 저는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엄마, 엄마가 언제 이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어?”라고 물었었고 저희 어머니는 “사는 게 다 신세란다 다 신세지고 사는 거야”라고 대답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외할머니 역시 “신문 값을 받으러 온 아이라도 집에 들여서 물 한 잔이라도 먹여 보내야 한다. 농사짓고 길쌈 하지 않는 사람은 다 신세 지고 사는 사람들이야 다 고마워하면서  살아야 해”라고 하시며 집에 손님이 오시면 늘 “넉넉합니다, 많이 있습니다” 하시면서 있는 것을 다 꺼내 놓으시고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아이건 어른이건 꼭 손에 무언가를 들려서 보내셨기에 저는 어른은 다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유독 신세지는 것에 예민한 할머니이기에 제가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로 “할머니, 가장 큰 신세는 창조주 하나님께 지고 사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께  갚을 수 없는 신세를 진 거에요 그리고 우리가 어부에게도 감사해야 하지만 그 것은 그 사람들의 수고에 대한 감사이고 진짜 감사는 물고기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해야 되는 거예요 ”라고 전도를 하였는데 평생 유교를 신봉하시던 할머니께서 “그렇지, 조물주가 다 주신거지 사람들은 배달만 해줄 뿐이야 그것도 고마운거지”라고 말씀하셔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유교를 신봉하는 사람이건 불교인이건 진실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이 세상 이치를 깊이 생각한다면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결국 우주를 운행하시는 창조주 하나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스캇 펙이란 학자는 ‘죄’에 대하여 정의하면서 “죄란 생각의 게으름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통찰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직 삼강오륜을 지키며 삼종지도를 따라 팔십 평생을 사셨으면서도 이 세상을 운행하시고 생명을 있게 하시며 우리에게 햇빛과 비를 내려 주시는 조물주를 인정하시던 할머니는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소천 하셨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가끔 “공자를 믿는 사람들도 신세를 지면 꼭 갚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너무 야박스럽고 감사할 줄 모르더라”라는 말씀도 하셔서 저를 곤혹스럽게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신세를 진 것이 있다면 생각의 게으름을 극복하고[일부러 생각을 피하는 것을 포함하여] 그 것이 물질이든 마음 씀씀이든 영적인 후원이든 어찌 하든지 갚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더구나 우리가 아무리 헌신한다 하여도 다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며 이제 남은 시간들을 빚진 자로서 더욱 겸손히 기도하며 선을 베풀기에 힘쓰며 살아야 하겠습니다[롬8:12]

13회 이평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