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을  만 명으로 만나던 선생님(1)

내가 어렸을 적 다니던 교회에는
우리 5학년을 가르치던 특별한 선생님이 계셨다.
그 분이 우리 학년을 맡게 되었을 때 나는 조금 실망을 했었다.
왜냐하면 다른 반 선생님에 비해 나이가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 분은 가르침에 있어서 탁월한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분이 내 인생에 많은 영향과 변화를 준 것은
결코 다른 선생님보다 뛰어난 재능 때문이 아니었다.
어느 주일날 교회에 갔더니 우리 반이 세 명밖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나는 친구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은 것이
왠지 내 책임인 듯하여 마음이 무거웠다.
다른 반은 열 명이 넘어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모습이 보기 좋은 데 말이다.
그런데 우리 세 명을 둘러보며
“오늘 우리 5학년은 3 만 명 이나 모였네!” 하시면서
원래 큰 눈을 더욱 둥그렇게 뜨면서 놀라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3만 명은 무슨 3만 명이야 달랑 세 명 뿐인데.
정말 이상한 선생님이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선생님의 교안 노트였다.
마치 3만 명이 되는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준비한 것처럼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히 써 내려간 교안 자료는
그 선생님은 말로만 세 명을 3만 명이라고 한 것이 아님을 입증하고도 남았다.
그 분이 준비한 것도 몇 만 명 앞에서 가르치는 것으로 여기고 준비했고
가르칠 때에도 열정과 사랑과 지혜가 넘치는 분이셨다.

하루는 우리들의 앞날의 꿈을 발표하게 되었다.
어떤 아이는 목사님이 되겠다고 했고 또 어떤 아이는 장군이 되겠다고 했고.
어떤 아이는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했다.
그 분은 우리들을 집으로 보낼 때.
목사님! 다음 주일까지 안녕!  
사모님! 다음 주일까지 안녕!
의원님! 안녕!
그렇게 우리들의 앞날의 꿈에 대한 호칭을 불러 주었다.
그런데 그 호칭은 아무도 모르게 우리들을 변화시켜 가고 있었다.
우리들은 마치 목사님이 된 것처럼, 장군이 된 것처럼
의젓해지고 우리들의 품위를 지켜가게 되었다.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은지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 선생님을 잊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때 그 선생님이 불러 주던 호칭이 실제의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
목사님도 되고 사모도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내가 한 사람이 아님을 늘 생각하고 있다.
내가 단지 한 사람의 몫으로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책임지게 된다.
나는 적어도 만 명의 열매를 위한 한 알의 밀알임을 잊지 않는다.
지금의 나도 한 명을 만 명으로 여기는 소중함을 잃지 않는다.
아무리 적은 인원이 모인 곳일지라도 그 선생님처럼
수 만 명이 모여 있다는 비중을 가지고 철저히 준비하는 버릇이 생겼다.
지금의 나의 모습은 나도 모르게
그 선생님과 거의 닮은 모습이 되었다.
“오늘 우리 반은 6만 명이나 모였네!”
**********************************************************************************

제자를 찾아가는 선생님(2)

5월말 고사를 치루던 나는 도저히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통증에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 아픔을 참으며 국어, 산수, 사회, 자연 4 과목 시험을 치뤘는데 4과목으로 봐서는
내가 1등이라는 예감이 왔기 때문이다.
어떡해서든지 실과, 음악, 미술이 한 과목으로 되어있는 것만 잘 치루면
5월말 고사에서도 1등을 지켜낼 것 같아서
나는 아픈 기색도 못 내고 참아내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이었던 우리들은 한 달에 한 번 치루는 월말고사의 성적순으로
자리를 배정 받았다.
1등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어린나이에 밤을 새우며 공부 하던 때였다.
4과목 시험을 치룬 후 점심시간이 왔다.
나의 얼굴에서 진땀이 비 오듯 쏟아졌는데 신음 소리 한마디 내지 못했다.
선생님이 양호실로 가라고 할까봐서 속으로
“이 과목만 치루면 된다. 제발 이 과목 치룰 때까지만 참자” 하려니
나도 모르게 진저리가 쳐진다.
점심을 못 먹고 괴로워하는 광경을 지켜보던 담임선생님이 내 곁으로 왔다.
“너 왜 그러니?
아니 이 녀석 어디가 이렇게 아프길래 다 죽어 가고 있잖아?  
언제부터 이렇게 아팠어?“
“어제 밤 부터요.”
“이렇게 아픈데 왜 학교에 왔어?”
“오늘이 월말고사잖아요”라고 대답하고 싶은데
너무 아파서 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전에 군의관 일을 보았다는 담임선생님은 나를 감찰하더니
“이 녀석 급성 맹장인데 빨리 집에 가라.
김명희! 너 정옥이 집에 업어다 줘라!
되도록 빨리 가야지 늦으면 큰일난다.“
같은 학년이었지만 나보다 두 살 위였고
키가 우리들의 큰 언니 같이 커서 농구 선수였던 명희는
나를 등에 업더니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빨리 달렸던지 나무가 휙휙 뒤로 지나갔는데
자동차보다 빠른 것 같았다.
명희는 전속력으로 뛰면서 계속 물었다.
“정옥아! 괜찮아?”
"정옥아! 괜찮아?"
친구의 등이 땀으로 흥건히 젖었던 것과
그의 목소리가 울먹이는 목소리였던 것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대답도 못하고 친구의 등에 업히었던 나는
그 길로 황인의원에서 맹장 수술을 받았다.
저녁에 병원에 오신 선생님은 오늘 아이들에게 가르친
학습 진도를 나 하나의 제자를 위해서 다시 가르치셨다.
나는 수술 경과가 좋지 못하여 20일 동안 입원해 있었다.
선생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에 오셨고
마치 교실에서 70명이 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한 명의 제자를 가르치셨다.
퇴원을 하고 얼마 안 있어서 6월말 고사를 보았다.
내 자리를 다시 찾은 비밀을 알길 없는 아이들은 이렇게 수군거렸다.
“정옥이는 정말 천재인가봐!
한 달이나 학교에 못나오고도 저 자리에 앉는 것을 보면...”


  

    









***** 손님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 + 카테고리변경되었습니다 (2006-06-22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