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태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가 떠나려 하는데
공안에서는 자꾸 나의 비자에 문제가 있다면서 이리와라 저리와라 하며 생트집이다.
이 비자는 일 년 동안 입국 때 마다 비자를 받지 않아도 되는
다차 비자인데 공안들이 무언가 다른 것을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중국말을 잘 못하니 그들과 협상하기가 어려워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때 한 젊은이가 내 앞을 지나다가 내 발을 꽉 밟았다.
“아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어이쿠! 죄송해요.”
나는 한국말에 귀가 번쩍 띄어서 발 아픈 것도 잊었다.
“혹시 중국말 잘 하세요?
이 사람들이 저의 비자에 문제가 있다면서 트집을 잡고 있어요.
이 비자에 문제가 있나요?”
그는 찬찬히 훑어보더니 공안에게 무어라고 당당하게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친절하기 그지없어져서
배 타는 곳까지 안내를 해 주는 호의를 베푸는 것이었다.
나와 일행인 중국 선교사님은
“사모님! 저 사람이 중국에서 좀 높은 분인가 봐요.
사모님이 저 사람에게 발을 밟히기를 잘했어요.” 하면서 무척 재미있어 한다.

4인 1실을 얻었으니 우리 일행과 함께 기거할 2명이 궁금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달 동안 잠시도 쉬지 못하고
중국 전역을 돌아 다녔기 때문에 피곤이 몰려왔다.
도대체 얼마동안을 잠을 잔 것일까?
어제 저녁 무렵 잠이 든 것 같은데 새벽이 동터오고 있었다.
넘실거리는 바다는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바다 속은 또 얼마나 깊을까?
시퍼렇다 못해 검푸른 바다의 그 많은 물을 하나님은 어디서 다 길어온 것일까?
선교사님은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꿈속을 헤메고 계신 것 같았다.
그런데 한 쪽 침대가 위, 아래 다 비어 있었다.
아마 인원이 적게 타서 우리 객실에는 우리 둘만 있어도 되는가보다 하고
문을 열고 나가는데 연태항에서 만난 젊은이가 문 밖에 있는 것이었다.
나는 반갑고 고마워서
“어제는 정말 고마웠어요.
인사드리려 찾았는데 보이시지 않더니 오늘은 우리문 밖에서 만났네요.
참! 몇 호에 계시는지요?”
“저요? 27호에 있어요.”
“아~ 27호? 그럼 우리랑 같으네요?
그러면 왜 안으로 들어오시지 않고 밖에 계세요?
우리가 여자여서 불편하시면 방을 바꾸시면 되는데...
방 바꾸는 일이 익숙치 않으면 저희가 바꿀까요?
추운데 여기에 계시다니요.”

“어제 방으로 들어와 보니 두 분이 세상모르고 주무시더군요.
정말 업어 가도 모를 정도였어요.
그래서 다른 방에서 자고 아침 일찍 이 방 문지기로 온 거예요.
배 안에 나쁜 사람이 가끔 있어서 마음이 안 놓여서요.”
그 때 내 머릿속으로 “올해 마지막 전도해야 할 사람!” 이라는
지령이 위로부터 딸칵! 떨어졌다.
그 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오도 가도 못할 배 안에서 만난 사람
그것도 선교사님과 내가 있는 한 방에 몰아 놓았고
이미 하나님이 기가 막힌 인연을 만들어 놓은 사람에다가
우리에 대한 배려의 마음까지 있으니
이렇게 쉬운 사람을 전도 못하면 나는 전도점수 0점짜리다!

“방으로 들어가세요. 제가 따뜻한 차를 가지고 오겠어요.”

그와 나는 이층 침대에서 대각선의 시선을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나와 동갑나기였고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사람이었다.
대학 때 데모 주동으로 잡혀 사형수가 되어 형무소에서 복역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풀 수 없는 단단한 매듭이 있었는데
그것은 기독교에 대한 매듭이었고
또 하나는 여자에 대한 매듭이었다.
그가 경찰에 쫓겨 도망 다닐 때에
그를 잡히도록 밀고한 사람이 그의 애인이었고
그 애인이 독실한 크리스챤 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사형수가 되어 수감되자
충격에 쓰러졌고 결국 회복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는 여자에 대한 심한 혐오감으로 정신적인 치료까지 받았으나
완전히 회복되지 못해서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정권이 바뀌고 특별감면으로 출감하고 학교도 복학하여 졸업을 했으나
그 오점이 남아 있어 자신의 앞날은 암울하기만 해서
일본으로 건너갔고 일본 해운 회사에 취직하여
지금은 대련 지점장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기가 오래 동안 혐오하고 분노하고 한이 맺혀 있는
여자이고 독실한 크리스챤인 나를 보았을 때
전에 가졌던 미움과 원한과 복수와 전혀 다른 마음
도와주어야 한다,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회복되어 일어났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일상적인 생각이지만
자신은 그 마음을 오래 전에 상실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누군가 돕고 싶은 마음이 다시 생긴 것은
죽었던 생명을 다시 찾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했다.
그가 연태항에서 나를 처음 보았을 때
두 얼굴이 겹쳐 보였는데 자기를 밀고한 애인의 얼굴과
아들을 사랑하여 상심하면서 죽어간 어머니의 얼굴이었다고 한다.
나의 비자 문제를 해결해주고
내가 배에 잘 탔나 확인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사람을 혐오하던 괴로움에서 치료받은 기쁨으로
뛸 듯이 좋기도 하고 또 다시 그 무서운 미움의 마음으로
마음의 문이 닫히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쉬운 상대를
전도의 상대로 주셨다고 좋아라 했던 나는
최고로 어려운 상대구나! 하고 마음을 고쳐먹고 긴장을 했다.

어찌하든지 저 사람의 꽁꽁 얼어붙은
미움과 분노의 얼음을 깨뜨려야 하는데...
그 때 그는 나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 본 것처럼
자기에게 절대로 예수 믿으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말라고 했다.
또 자신은 지금 심한 공황장애를 앓고 있고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이번에 자살을 시도했었는데
죽는 것도 마음 대로 안된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만약 자기와 부산에 도착 할 때까지 대화해 주고
예수 믿으라는 말만 안 하면
자신이 그동안 일하여 저금해 놓은 돈과 대련에 있는 집을
나에게 주겠다고 구체적인 절차까지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죽기 전에 자기집과 저축한 돈을
좋은 일에 쓸만한 사람을 발견한 것은
불우한 자신의 일생 중 유일한 행운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예수님 얘기 빼놓으면 할 말이 하나도 없는데
어쩌란 말인가?
잠시 대화가 끊기고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침묵을 깨뜨리는 첫마디를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당신의 미래에 대해 위대한 계획과 기대를 갖고 있어요.”로 열었다.
내가 이 사람에게 그리스도 예수를 전하지 못하는 대화라면
더 이상 그 사람과의 대화는
외간 남자와의 쓸데없는 대화에  불과 한 것이 아닌가?
이리 끝내든지 저리 끝내든지 나의 태도가 분명해야 했다.

“하나님이 나에 대해 뭘 아시기에 나를 사랑하고
나의 미래를 기대하지요?
하나님은 둘째고 당신은 사형수의 죽음을 아세요?
사형수의 불안을 아세요?
사형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내일이 어쩌니 미래가 어쩌니 죽은 후에 천국이 어쩌니
그런 황당한 말들 좀 하지 말아요!”
그는 격분한 듯 소리를 질렀다.
이제 나의 말은 더 이상 한 마디도 들을 것 같지 않은 기세였다.  


나는 조용히 시 한 편을 암송했다.

아버님께.

한 밤중
난데없이 철문 열리는 소리 들리고
교도관 두 사람 들이닥쳐
얼른 신발 신고 따라오라 합디다.

이제는 가는구나
잠시 정이 든 독방과 넣어주신 담요와
책들 마지막 한번 돌아볼 틈도 없이
주섬주섬 옷을 껴입는데
빨리 나오지 뭘하나
다시 재촉하는 소리 들립니다.

봄이라 해도
밤바람은 아직 찬데
이승의 마지막 길을 제 발자국 소리
들으며 터벅터벅 걷자니
오늘밤 제가
이렇게 끌려가 죽는 줄도 모르고
낯선 도시의 여관 어디
홀로 잠 못 이루고 계실 아버님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옵디다.

아버님
형장의 이슬로 곧 사라지고 말
한 갓 덧없는 목숨일망정
그것에 대한 애착은
또한 얼마나 강한 것입니까

힐끗힐끗 바라보며 걷던
사형장과 반대길로 꺾어도는 순간
아아, 오늘 밤이 나의
마지막 밤이 아니라면 하는 기대로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뛰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
그의 흐느끼는 소리가 나의 시 암송 하는 소리보다 커져 갈 때.
나는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구원의 은혜를 눈물로 호소할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도 일평생 하나님을 믿었던 독실한 크리스챤이었고
아들을 위해 기도하다가 돌아 가셨다고 그의 입술로 고백하였다.

그가 주님을 영접하게 되기까지 세상모르고 잠을 자던
선교사님은 그제야 일어났다.  
그는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결신 기도를 했다.
그의 볼을 타고 한없이 흐르는 눈물은 그의 가슴에 있던
미움과 분노와 원한과 불신과 절망으로 꽁꽁 얼어있던 얼음이
사랑과 용서와 화목과 평안과 기쁨으로 녹아내리는 것이었다.

그의 잘 생긴 얼굴은 환하게 피어올랐다.
그는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끼니 때 마다 배에서 나오는 음식 중에 최고의 음식으로 준비해 놓고
우리를 여왕처럼 모시러 왔다.
식사만 끝나면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우리 방은 임시 예배당이 되었다.
같이 찬양하고 성경 읽고 기도하였으니 더 이상 멋진 예배당이 따로 있겠는가?

그는 대련에 돌아가면 남자 가정부부터 여자로 바꾸겠다고 했다.
나는 여자 가정부로 바꾸지 말고 결혼을 하라고 권유해 주었다.
그는 대련에 있는 집을 나에게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중국으로 들여 보내야 하는 성경책과
북한으로 보내는 비타민과 약품들을 운송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 일이 선교하는데 가장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라면서 그 일을 승낙해 주었다.
그는 대련의 집 주소와 회사 전화번호 등을 자세히 써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수첩과 함께 나에게 주었다.
나는 대련에 있는 선교사님의 전화번호를 그에게 가르쳐 주고
계속적인  신앙생활을 영위 할 것을 권면했다.

꿈같은 시간이 지나
우리는 부산에 도착했다.
그는 허름한 일상복을 벗고 말끔한 양복으로 갈아입었는데
예수님을 영접해서인지 귀공자처럼 빛이 났다.
부산에서 최고의 음식점에서 식사를 대접하더니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표까지 준비하여 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동행한 선교사님은 어안이 벙벙하여
“사모님! 우리가 중국에서 배를 탈 때는 벌금 낼 돈도 없고
배에서 밥 사먹을 돈도 없고
서울로 올라 갈 차비도 없어서
부산에 내리면 그래도 어쨌거나 한국에 왔으니 서울로 가겠지 하고
중국을 떠나 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배에서도 최고의 음식으로 먹고
서울 가는 기차도 최고로 가고
이젠 성경책을 가방에 넣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중국에 들어 갈 때마다 금식하지 않아도 되고
성경책과 약품들 선교 구제품들을 컨테이너로 운송하게 되었으니
이게 정말 꿈은 아니겠지요?
어찌 이런 기적이 있을 수 있겠어요?”

“있을 수 있지요
그것은 우리가 전도했기 때문이지요.
죽어가는 생명을 살렸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정작 기뻐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유익한 일들로 기뻐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저 분을 구원 했다는 것이지요.

기차를 타기 위해 헤어지는 곳에서
나는 마치 아들과 헤어지는 어머니의 심정이 되었다.
그는 자기의 일정을 깨알같이 써서 나에게 주었다.
다음주는 일본에 있고 연락 할 전화번호는 몇 번입니다
그 다음주는 홍콩에 있고 연락 할 전화 번호는 몇 번 입니다 라고...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의 차창을 통해 휙휙 지나가는  
우리나라의 산하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선교사님은 한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풀듯이
“그런데 사모님!
사모님은 어떻게 사형수의 시를 외워서 저 사람을 감동시킨 거예요?

“예~ 사형수의 시라고는  
딱 그 시 하나 밖에 못 외워요.
전에 형무소 선교를 위해서 전도 준비를 하는데
어떤 분이 “꽃들” 이라는 시집을 하나 나에게 선물 하였지요
부산 미문화원방화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고신대 신학생이 쓴 글이었지요.
20대의 젊은 청년이 사형수로 있으면서 쓴 글이어서
다른 시하고는 달랐지요.
그래서 형무소 선교 때 혹시 필요할까하고
시 한 편을 외웠어요.
그 때는 그 시를 써먹지도 못했는데
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셨던 것이었군요.
하나님은 시 한편 외워놓은 것까지 선교를 위해 다 쓸 수 있게 해주시는 분이군요.”

집에 돌아와
서재에 꽂혀있는 “꽃들”이라는 시집을 다시 펼쳐 보았다.

꽃들 1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감옥 안에 핀다고 한탄하지 말고
갇힌 자들과 함께
너희들 환한 얼굴로 하루를 여나니...
.......................................................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갇힌 자들이 아닐까?
돈에, 명예에, 쾌락에, 미움에, 불신에, 죽음에 갇힌 자들...
그들에게 갇혀 있는 감옥에서
넓고 환한 빛의 세계로 나오게 하는 생명을 살리는 일.
그 일을 맡은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세상은 백과사전을 통째로 외우고 있어도 써주지 않는데
우리 하나님은 시 한편만 외워도 멋지게 사용해 주시는 분이 아닌가?
나는 이제 그 주님을 위해서 많이 많이 준비하리라.

일년 후 대련의 선교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배 위 갑판 위에서 피어난 꽃!
그가 한 해동안 신앙 생활을 잘 했고
대련에 집을 하나 내놓아 처소 교회로 잘 꾸며서 창립예배를 드린다는 것과
아릿답고 신실한 믿음의 신부를 맞아 결혼한다는 소식을 알리는 전화였다.
나는 여호와 닛시! 라고 크게 소리치고는
이번엔 결혼 축하 송을 하나 정하여 연습하기 시작했다.  













  

  




***** 손님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 + 카테고리변경되었습니다 (2006-06-22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