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5가 역에서 내려 급히 교회로 가는 길이었다.
나의 바쁜 걸음을 멈추게 하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 녀는 금방 울 것 같은 얼굴로
“창원까지 급히 가야 하는데 지갑을 잃어 버렸어요.
차비를 빌려 주시면 집에 가서 빌린 돈을 꼭 보내 드릴께요.”
하면서 애원을 한다.
나는 이 여자의 사정이 딱해 보였지만 만원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난처해졌다.
“사정은 딱하시지만 제가 가진 돈의 여유가 없어서요.
아무래도 창원까지 가는 여비는 안 될 것 같아요.”
그랬더니 “주실 수 있는 만큼만 주세요.”하기에
나는 만원을 그에게 주고 교회로 급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교회에는 나의 믿음의 어머니 같은 집사님 두 분이
기도실에 이미 오셔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교회의 다른 일을 챙기다가
기도실에 다시 가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낯익은 한 여자가  그 집사님들 곁에 앉아 있는데
조금 전 종로 5가 역에서 나에게 창원 가는 여비를 보태 달라던
그 여자였다.
나는 그 집사님에게 눈을 찡긋거리며 그 여자에게 돈을 주지 말라고
손짓 발짓을 동원해서 무언의 표시를 해 주었다.
그런데 나와 눈이 마주치기까지 한 그 집사님은
그 여자가 사기꾼이라는 나의 표시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그 여자의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 여자는 자기를 위하여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간절히 기도해 주는 그 집사님의 기도가 언제 끝나나 하고 찌푸리고 앉아 있었다.
땀과 눈물로 애통하며 기도하시던 집사님이 한 술 더 떠서
이번에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그 여자에게 주며
“꼭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  하나님은  당신을 무조건 사랑하신다오.
다음에 또 오구려!” 하면서 극진히 배웅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그 집사님에게
“집사님도 참! 그 여자의 말은 다 거짓말만 늘어놓은 거예요.
조금 전에 내가 종로 5가 역에서 저 여자를 만났어요.
창원에 가야 하는데 지갑을 잃어 버렸다고 나에게 고속버스 여비를 구걸한 여자예요.
집사님은 사기꾼에게 감쪽같이 속은 거예요
그런 사기꾼 여자에게 돈은 또  왜 그렇게 많이 주세요?”
나는 책망하듯 말했다.
그 여자에게 속은 것을 생각하니
우리들의 순수한 사랑을 농락당하고 배신당한  것을 생각하니
분하고 억울해서 그 여자를 다시 데려와 따끔하게 혼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때 나이 드신 이 집사님이 아직 눈물이 그대로 맺힌 채로 대답했다.
“알아! 나도 잘 알고 있어!
저 여자가 거짓말 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어.
아까 나도 종로 5가 역에서 저 여자에게 차비를 주고 왔거든.
저 여자가 차비를 구할 때 주고 오면서 웬지 마음 속으로 석연치 않았어.
그랬는데 저 여자가  종로 5가 역에서우리 교회 안으로 들어 온 거야.
만약 내가 종로 5가 역에서의 차비 얘기를 꺼냈다면 저 여자는 구원 받기 전에
달아날 수 밖에 없잖아
어떤 동기로 교회에 왔던지 교회에 온 사람을 쫓아 보내면 안 되는 일이지.
저 여자가 가장 불쌍한 영혼이지.
자기의 죄를 알지도 못하니 얼마나 불쌍해.
하나님이 저 여자를 참 많이 사랑하시나봐.
그 여자가 꼭 예수님 믿어서 구원 받게 해달라고 주님께 다시 강청해 볼 참이야.”
그 때 나의 부끄러움과 민망함은 나의 고개를 땅으로 한없이 숙이게 했다.
그 집사님은 예배실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이 오히려 중한 죄인인 것처럼 그를 대신해서 가슴을 치며 회개하며 간구하는 것이었다.

사랑!
이 세상 허다한 허물과 죄를 덮을 수 있는 거대한 보자기!
그래서 사랑은 무조건 주는 것이고
똑똑히 헤아려 따지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속아주고
손해 보면서도 얼마든지 양보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이 여인같이 거짓말 하는 자요,
사랑과 은혜를 배신으로 갚던 자요,
사랑을 받을 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는 자 이었을 때
주님은 나의 모든 죄를  알고 계셨다.
탐욕으로 가득 차 있던 나의 검은 마음속까지...
그런 나를 따지지 않고 헤아리지 않고
다만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 분은 나의 죄악과 허물을 알면서도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신 것이다.

그 집사님은 그 후에도 그 여인에게
이런 저런 핑계와 거짓말을 다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 주었다.
그 때마다 변함없이 지갑을 열고 돈을 주었고
“다음에 또 오구려.”하면서 융숭히 배웅 하였다.
이 여자는 그 집사님의 용서와 사랑에 일곱 번을 못 넘기고
어느 날 거대한 사랑의 보자기에 얼굴을 묻고 통곡하며 회개하였다.
그 여인은 우리 교회에서 식당일, 청소, 궂은일을 자원하여 도맡아 봉사하였다.
그 후에 신학을 공부해서 지금은 시장 선교회의 간사로 사역하고 있다.

따지기 전에, 비판하기 전에,
거대한 사랑의 보자기로 실수도, 허물도 덮어 주는 것,
사랑의 콩깍지를 우리 눈에 끼워 넣는 것은
옳은 일보다 더 큰 것이고
정의 보다 더 위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정의!
사랑! 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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