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종교란은 천주교,개신교,불교 빛사랑으로 분류가 되어있습니다.
각 카테고리에 맞게 선별하여 글을 올리시면 됩니다
학교마다 여름 방학을 했다.
구역 예배를 드리러 성도님의 집을 방문했다.
이 가정은 결손 가정이다.
아이들의 어머니가 가출을 했고 얼마 후 이혼을 했다.
그래서 아들 하나 딸 하나가 할머니 손에 키워지고 있다.
요즈음 이런 결손 가정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예전의 결손 가정은 주로 아이들이 엄마와 같이 살았는데
요즈음은 거의 엄마 없이 아빠와 살고 있다.
이 할머니는 그 아이들의 어머니 자리를 맡아서
죽기까지 목숨 걸고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아이들을 각종 학원에 보내는 일이다.
내가 그 집에 도착한 시간은 1시경이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인
그 분의 손녀딸은 이미 영어 학원, 피아노 학원을 다녀왔고
냉장고에서 쥬스 한 컵을 꺼내 먹고는 컴퓨터 학원을 간다고 했다.
할머니는 손녀를 학원에 보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7가지 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가기 싫다고 매 시간 실랑이를 벌인다는 것이다.
나는 그 아이가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또 손주들이 왜 이렇게 많은 학원을 다녀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보내야만 한다는 할머니도 애처로웠다.
그 시간을 다 기억하는 것은 할머니로서는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학원 보내면서 엄청난 교육비를 자식을 위해 쓰는 것으로
그의 아빠가 혹시 엄마 없는 자식에 대한 책임과 사랑을
대신하려는 의도가 있을까봐 염려가 되었다.
나는 나의 여름방학을 생각해 보았다.
어린 시절에는 방학 숙제를 하고, 곤충 채집, 식물 채집을 하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뛰어놀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나에게 성경을 쓰고 암송하게 했다.
평소에는 하루 성경 3절을 외우게 했는데
방학 기간에는 하루에 성경 한 장을 공부하게 했다.
그 때는 어머니의 처사가 부당하게 생각되었다.
그 시간에 내가 다른 것을 배우거나 공부를 하면 더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이 될텐데
어머니는 여름 방학만 되면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기도와 성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인생을 인도하는 밝은 등불을
준비 해 주신 것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가르침은 내 인생의 어려운 굽이마다, 내가 실망하고 좌절하여 쓰러질 때마다
주님의 확실한 음성이 되어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다시 걷게 하게 하는 나의 빛이요 나의 힘이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이미 그것은 나의 습관적인 일상이 되었다.
내가 인일여고 다닐 때는 매일 새벽 기도를 학교 동산에서 드렸다.
그네가 매어져 있는 그 곳이 우리들의 새벽기도 장소였다.
친구들 5-8명이 매일 아침 6시에 그 곳에 모여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한 후에
도서실로 바로 가서 같이 공부를 하고 수업시간에 맞추어 각자의 교실로 들어갔다.
점심시간 40분은 20분은 점심을 먹고 20분은 학교 옥상에 모여 낮 예배를 드렸다.
저녁 6시 정도에는 학교 벤치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도서실이나 각자의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하교 하였다.
인일여고 여름 방학 때는 부평에 있는 협성원 이라는 곳에 성경공부를 가르치러 갔었다.
그 곳은 창녀들을 모아놓은 곳 이었다.
창녀들이 성병에 걸렸을 때 그 곳에 집단 수용 당한다.
그들을 강제 수용하는 명분은 성병을 치료하는 기간동안 사회에 적응 할 수 있는
생산 기술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물론 양재, 미용, 타자, 요리, 나염... 여러 가지 기술을 가르치는 것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명분뿐이고 사회의 악이 되는 그들을 집단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성병환자이고 교도소를 방불 하는 열악한 환경의 집단 수용소는
없던 병도 만들 정도이니 강제 수용된 그들은 틈만 나면 도망을 친다.
그러나 도망을 치면 거의 다 다시 잡혀온다.
다시 잡혀 오면 심한 매를 맞는다.
그들의 숙소는 철조망으로 몇 겹씩 둘러져 있고
산을 타고 도망하면 길로 통하는 어귀마다
이미 나가 있는 감시원들에게 붙잡히게 되어있다.
한마디로 창녀의 형무소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들은 한 방에 10명 정도가 한 조가 되어 성경공부를 받는다.
나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더 어린아이도 있었다.
13살짜리도 있었다. 20살이 넘으면 그들은 할머니라고 부른다.
그 곳의 불문율은 성경 말씀이외에 다른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되어있다.
다른 말을 하게 되면 그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고
다른 말로는 그들을 지도해 나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적으로 사귐을 갖는 것도 절대 금물이다.
편지를 주고받는다든지 그들의 부탁을 듣고 물건을 사가지고 갈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갈 때마다
성병에 관한 연고제라든지 피부 연고제를 사가지고 들어갔었다.
한글을 모르는 아이를 위해서 초등학교 국어책을 가지고 가기도 했다.
그러면 그들은 감시원의 눈을 피해 내 성경책 갈피에
자기들이 아끼는 머리핀을 넣어 주기도 하고
꽃잎을 말려 넣어 주기도 했다.
누구에겐가 써 놓은 편지를 붙혀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하루는 나를 무척 따르는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도망치다가 잡혀 와서 심하게 매를 맞고 있었다.
나의 여름방학은 그들이 불쌍해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그 때마다 나는 인생의 낭떠러지 까지 떠밀려온 이들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살겠다는
다짐으로 굳어져 갔다.
나는 내 아들들이 여름방학을 하면
나의 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방법을 고스란히 전수해서 쓰게 되었다.
매일 두 시간씩 성경공부를 하게 한 것이다.
그것이 내 인생의 얼마나 밝은 빛이요 등불이었는지 내가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아들들도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방학기간동안 성경을 읽고 암송하는 데 보내더니
고등학교 때는 다른 사람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방학을 보내는 것이다.
성경은 자녀들에게 어느 정도로 성경을 가르치라고 하였는가?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 할지니라.” 신명기 6장 6-9
나는 여름방학을 맞이하는 아들들에게 공부해야 하는 분량과 시간 배정을
성경, 영어, 국어, 수학, 기타과목으로 정하여 주었다.
이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까지만 하면
그 다음부터의 자녀 교육은 그들에게 이미 습득된 성경 말씀이
저절로 자녀들을 양육시켜 나간다.
그 때는 이미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는 자녀의 모습만 보면 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큰 애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도 결혼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성경에 목숨 걸고 가르칠 거예요.
거기에 자녀의 삶의 성공과 가치가 다 달려 있어요.
어려서 읽은 성경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이 내 삶을 인도하고 있어요.
요즈음 학생들이 보이지 않아요. 전부 학원을 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요.
부모님들이 성경을 영어만큼만 중요하게 여기면 얼마나 훌륭한 자녀가 될텐데
그것을 알아차리는 부모가 없으니 아이들만 불쌍해요.”
아들은 요즈음 생산직 직업 청소년들을 찾아 성경을 가르치고 온다.
그들에게 줄 여러 가지 선물과 물건을 준비하고
몹시 더운 날은 아이스크림 사줄 돈을 준비하고
그들에게 가르칠 성경 공부 교안 작성을 밤늦게 까지 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먼 후일 아들을 꼭 닮은 손자가 맞을
여름방학을 20년 미리 보는 듯하다.
성경을 영어 과목 만큼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동일한 분량과 시간을
가르치면 자녀의 인생은 밝은 빛의 인도를 받아
강하고 견고하며 모든 민족 중에 뛰어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될 것이다.
여름방학은 자녀의 성경공부 최적의 기회로 활용되는 기간이여야 할 것이다.
***** 손님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 + 카테고리변경되었습니다 (2006-06-22 19:45)
구역 예배를 드리러 성도님의 집을 방문했다.
이 가정은 결손 가정이다.
아이들의 어머니가 가출을 했고 얼마 후 이혼을 했다.
그래서 아들 하나 딸 하나가 할머니 손에 키워지고 있다.
요즈음 이런 결손 가정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예전의 결손 가정은 주로 아이들이 엄마와 같이 살았는데
요즈음은 거의 엄마 없이 아빠와 살고 있다.
이 할머니는 그 아이들의 어머니 자리를 맡아서
죽기까지 목숨 걸고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아이들을 각종 학원에 보내는 일이다.
내가 그 집에 도착한 시간은 1시경이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인
그 분의 손녀딸은 이미 영어 학원, 피아노 학원을 다녀왔고
냉장고에서 쥬스 한 컵을 꺼내 먹고는 컴퓨터 학원을 간다고 했다.
할머니는 손녀를 학원에 보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7가지 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가기 싫다고 매 시간 실랑이를 벌인다는 것이다.
나는 그 아이가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또 손주들이 왜 이렇게 많은 학원을 다녀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보내야만 한다는 할머니도 애처로웠다.
그 시간을 다 기억하는 것은 할머니로서는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학원 보내면서 엄청난 교육비를 자식을 위해 쓰는 것으로
그의 아빠가 혹시 엄마 없는 자식에 대한 책임과 사랑을
대신하려는 의도가 있을까봐 염려가 되었다.
나는 나의 여름방학을 생각해 보았다.
어린 시절에는 방학 숙제를 하고, 곤충 채집, 식물 채집을 하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뛰어놀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나에게 성경을 쓰고 암송하게 했다.
평소에는 하루 성경 3절을 외우게 했는데
방학 기간에는 하루에 성경 한 장을 공부하게 했다.
그 때는 어머니의 처사가 부당하게 생각되었다.
그 시간에 내가 다른 것을 배우거나 공부를 하면 더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이 될텐데
어머니는 여름 방학만 되면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기도와 성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인생을 인도하는 밝은 등불을
준비 해 주신 것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가르침은 내 인생의 어려운 굽이마다, 내가 실망하고 좌절하여 쓰러질 때마다
주님의 확실한 음성이 되어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다시 걷게 하게 하는 나의 빛이요 나의 힘이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이미 그것은 나의 습관적인 일상이 되었다.
내가 인일여고 다닐 때는 매일 새벽 기도를 학교 동산에서 드렸다.
그네가 매어져 있는 그 곳이 우리들의 새벽기도 장소였다.
친구들 5-8명이 매일 아침 6시에 그 곳에 모여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한 후에
도서실로 바로 가서 같이 공부를 하고 수업시간에 맞추어 각자의 교실로 들어갔다.
점심시간 40분은 20분은 점심을 먹고 20분은 학교 옥상에 모여 낮 예배를 드렸다.
저녁 6시 정도에는 학교 벤치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도서실이나 각자의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하교 하였다.
인일여고 여름 방학 때는 부평에 있는 협성원 이라는 곳에 성경공부를 가르치러 갔었다.
그 곳은 창녀들을 모아놓은 곳 이었다.
창녀들이 성병에 걸렸을 때 그 곳에 집단 수용 당한다.
그들을 강제 수용하는 명분은 성병을 치료하는 기간동안 사회에 적응 할 수 있는
생산 기술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물론 양재, 미용, 타자, 요리, 나염... 여러 가지 기술을 가르치는 것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명분뿐이고 사회의 악이 되는 그들을 집단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성병환자이고 교도소를 방불 하는 열악한 환경의 집단 수용소는
없던 병도 만들 정도이니 강제 수용된 그들은 틈만 나면 도망을 친다.
그러나 도망을 치면 거의 다 다시 잡혀온다.
다시 잡혀 오면 심한 매를 맞는다.
그들의 숙소는 철조망으로 몇 겹씩 둘러져 있고
산을 타고 도망하면 길로 통하는 어귀마다
이미 나가 있는 감시원들에게 붙잡히게 되어있다.
한마디로 창녀의 형무소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들은 한 방에 10명 정도가 한 조가 되어 성경공부를 받는다.
나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더 어린아이도 있었다.
13살짜리도 있었다. 20살이 넘으면 그들은 할머니라고 부른다.
그 곳의 불문율은 성경 말씀이외에 다른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되어있다.
다른 말을 하게 되면 그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고
다른 말로는 그들을 지도해 나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적으로 사귐을 갖는 것도 절대 금물이다.
편지를 주고받는다든지 그들의 부탁을 듣고 물건을 사가지고 갈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갈 때마다
성병에 관한 연고제라든지 피부 연고제를 사가지고 들어갔었다.
한글을 모르는 아이를 위해서 초등학교 국어책을 가지고 가기도 했다.
그러면 그들은 감시원의 눈을 피해 내 성경책 갈피에
자기들이 아끼는 머리핀을 넣어 주기도 하고
꽃잎을 말려 넣어 주기도 했다.
누구에겐가 써 놓은 편지를 붙혀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하루는 나를 무척 따르는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도망치다가 잡혀 와서 심하게 매를 맞고 있었다.
나의 여름방학은 그들이 불쌍해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그 때마다 나는 인생의 낭떠러지 까지 떠밀려온 이들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살겠다는
다짐으로 굳어져 갔다.
나는 내 아들들이 여름방학을 하면
나의 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방법을 고스란히 전수해서 쓰게 되었다.
매일 두 시간씩 성경공부를 하게 한 것이다.
그것이 내 인생의 얼마나 밝은 빛이요 등불이었는지 내가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아들들도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방학기간동안 성경을 읽고 암송하는 데 보내더니
고등학교 때는 다른 사람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방학을 보내는 것이다.
성경은 자녀들에게 어느 정도로 성경을 가르치라고 하였는가?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 할지니라.” 신명기 6장 6-9
나는 여름방학을 맞이하는 아들들에게 공부해야 하는 분량과 시간 배정을
성경, 영어, 국어, 수학, 기타과목으로 정하여 주었다.
이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까지만 하면
그 다음부터의 자녀 교육은 그들에게 이미 습득된 성경 말씀이
저절로 자녀들을 양육시켜 나간다.
그 때는 이미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는 자녀의 모습만 보면 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큰 애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도 결혼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성경에 목숨 걸고 가르칠 거예요.
거기에 자녀의 삶의 성공과 가치가 다 달려 있어요.
어려서 읽은 성경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이 내 삶을 인도하고 있어요.
요즈음 학생들이 보이지 않아요. 전부 학원을 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요.
부모님들이 성경을 영어만큼만 중요하게 여기면 얼마나 훌륭한 자녀가 될텐데
그것을 알아차리는 부모가 없으니 아이들만 불쌍해요.”
아들은 요즈음 생산직 직업 청소년들을 찾아 성경을 가르치고 온다.
그들에게 줄 여러 가지 선물과 물건을 준비하고
몹시 더운 날은 아이스크림 사줄 돈을 준비하고
그들에게 가르칠 성경 공부 교안 작성을 밤늦게 까지 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먼 후일 아들을 꼭 닮은 손자가 맞을
여름방학을 20년 미리 보는 듯하다.
성경을 영어 과목 만큼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동일한 분량과 시간을
가르치면 자녀의 인생은 밝은 빛의 인도를 받아
강하고 견고하며 모든 민족 중에 뛰어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될 것이다.
여름방학은 자녀의 성경공부 최적의 기회로 활용되는 기간이여야 할 것이다.
***** 손님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 + 카테고리변경되었습니다 (2006-06-22 19:45)
2004.07.24 11:19:40 (*.116.203.200)
양숙희 선배님.
참 반가와요? 귀국하셨나요?
아니면 미국에 계시는지요.
어느곳에 머물든지 더운 여름에 몸건강하시고
주님의 보호와 인도가운데 행복이 넘치시기를 빌어요.
얼굴을 마주 본 듯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참 반가와요? 귀국하셨나요?
아니면 미국에 계시는지요.
어느곳에 머물든지 더운 여름에 몸건강하시고
주님의 보호와 인도가운데 행복이 넘치시기를 빌어요.
얼굴을 마주 본 듯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2004.07.24 12:40:40 (*.84.16.186)
엄마 역할 대신하고 계시는 할머니 심정 이해 됩니다.
보란듯이 잘 키워야한다는 책임감에, 학원이라도 열심히 보내시는...
저도 우리애 중고교 시절에 방학 앞두고 학원 시간표 짜느라
머리 쥐어짜던 생각이 나는군요.
성경 공부 시킬 생각은 꿈에도 못했었죠.
글 제목만 보고 유사모님도 방학했나보다.
좀 쉴 수 있겠네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는데
글 읽어보니 그게 아니군요.^^
조금씩만 쉬어가면서....
이 더운 여름을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보란듯이 잘 키워야한다는 책임감에, 학원이라도 열심히 보내시는...
저도 우리애 중고교 시절에 방학 앞두고 학원 시간표 짜느라
머리 쥐어짜던 생각이 나는군요.
성경 공부 시킬 생각은 꿈에도 못했었죠.
글 제목만 보고 유사모님도 방학했나보다.
좀 쉴 수 있겠네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는데
글 읽어보니 그게 아니군요.^^
조금씩만 쉬어가면서....
이 더운 여름을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2004.07.24 12:47:08 (*.116.203.200)
이인실 선배님.
너무 반갑습니다.
선배님의 얼굴이 내 앞에서 환히 웃고 있습니다.
잘 지내셨지요.
아무도 모르게 마음을 전했던
선배님들의 따뜻한 마음을 또다시 빚을 집니다.
외대 학생 여름 방학을 했겠네요.
10기 선배님들의 사랑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보답해 드릴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선배님! 더운 여름 강건하시고
지금도 너무 미인 이시지만 더 예뻐지세요.
행복하시구요.
너무 반갑습니다.
선배님의 얼굴이 내 앞에서 환히 웃고 있습니다.
잘 지내셨지요.
아무도 모르게 마음을 전했던
선배님들의 따뜻한 마음을 또다시 빚을 집니다.
외대 학생 여름 방학을 했겠네요.
10기 선배님들의 사랑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보답해 드릴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선배님! 더운 여름 강건하시고
지금도 너무 미인 이시지만 더 예뻐지세요.
행복하시구요.
2004.07.25 14:41:32 (*.117.145.63)
아이들이 어려서는 내 믿음이 약했고
이제 주님의 말씀으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훈계하기에는
아이들이 훌쩍 커버리기도했고 나름대로 주관이 생겨서
성경 일 순위로 아이들 머리속에 주입시키기에는 좀 늦지않았나 싶어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는 수 밖에
믿음의 어머니밑에서 자란것이 너에게는 큰 복이구나
이제 종교란에 은혜로운 글 많이 올려줘
더위에 건강하고
또 만나길 기대하며......
이제 주님의 말씀으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훈계하기에는
아이들이 훌쩍 커버리기도했고 나름대로 주관이 생겨서
성경 일 순위로 아이들 머리속에 주입시키기에는 좀 늦지않았나 싶어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는 수 밖에
믿음의 어머니밑에서 자란것이 너에게는 큰 복이구나
이제 종교란에 은혜로운 글 많이 올려줘
더위에 건강하고
또 만나길 기대하며......
2004.07.25 17:58:32 (*.116.207.154)
연희야!
성경공부 가르치는 시간이 지나면
기도해 주는 시간 맞아!
걱정말고 믿음안에서 기도하면 될거야.
나도 너의 아들들이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도록 기도 해줄께.
너의 이 댓글을 읽고
부지런히 글을 쓰게 되었어.
부족한 글을 항상 큰 기대로 읽어주는 친구의 사랑이 감사해서
성경공부 가르치는 시간이 지나면
기도해 주는 시간 맞아!
걱정말고 믿음안에서 기도하면 될거야.
나도 너의 아들들이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도록 기도 해줄께.
너의 이 댓글을 읽고
부지런히 글을 쓰게 되었어.
부족한 글을 항상 큰 기대로 읽어주는 친구의 사랑이 감사해서
2004.08.03 16:58:58 (*.200.163.166)
종교란으로 옮겨지니 눈치 안보고 글을 맘껏 쓰실 수 있겠네요.
배경음악도 신나게~~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려요.(:y)(:y)(:y)(:f)(:f)(:f)
배경음악도 신나게~~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려요.(:y)(:y)(:y)(:f)(:f)(:f)
2004.08.03 20:12:03 (*.116.203.183)
노순희 선배님.
저의 글에 빠짐없이 좋은 음악을 선물하시니
이 고마운 마음을 어쩝니까?
저도 선배님같이 온유하고 겸손하고 아름다운 분을 만나
행복하고 기쁩니다.
주님이 만나게 하신 것이란 것을 굳게 믿고 있어요.
선배님에게 처음과 나중이 같은 한결같은 사랑을 드리고 싶어요.
최인옥 님.
참 오랜만이예요.
사명의 길에 있었던 인옥님이여서
가슴 한켠에 간직하여 기도합니다.
그동안 인일 홈페이지에 적지않은 물의를 일으켰지만
이렇게 좋은 곳으로 옮길 수 있도록
여러 동문들이 도와 주셨어요.
감사를 드립니다.
자주 오세요 인옥님.
저의 글에 빠짐없이 좋은 음악을 선물하시니
이 고마운 마음을 어쩝니까?
저도 선배님같이 온유하고 겸손하고 아름다운 분을 만나
행복하고 기쁩니다.
주님이 만나게 하신 것이란 것을 굳게 믿고 있어요.
선배님에게 처음과 나중이 같은 한결같은 사랑을 드리고 싶어요.
최인옥 님.
참 오랜만이예요.
사명의 길에 있었던 인옥님이여서
가슴 한켠에 간직하여 기도합니다.
그동안 인일 홈페이지에 적지않은 물의를 일으켰지만
이렇게 좋은 곳으로 옮길 수 있도록
여러 동문들이 도와 주셨어요.
감사를 드립니다.
자주 오세요 인옥님.
단 번에 전과 같은 감성이 살아 나지는 않겠지만
다시 일어서게 해 준 고마운 격려를 늘 잊지 않겠어요.
저도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왜 그러고 있냐고 비난하는 입이 아니라
일으켜 세워주는 도움의 손길이 되겠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진실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꾸어 주신 한 통의 전화 처럼
나도 다른 사람을 변화 시키는 감동의 사람이 되고 싶어요.
멀리서 지켜봐 주실 고운 님의 눈빛을 생각하며
실망시키지 않는 삶으로 보답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