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아
이제 열하루 남았네.  
네가 일가의 엄연한 가장이 되고 꽃 같은 각시의 신랑이 되는 날이,
누구나 다 그런지는 몰라도 너도 지금 솔직한 심정은 이쪽 저쪽 눈치 살피랴, 비위 맞추랴
피곤하구 성가신데 인사치례고 절차고 다 집어 치우고 색씨나 나꿔 채  신혼여행이나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이십여년 전 너의 삼촌이나 나도  그랬어.
이 비위 저 비위 다 맞출라니 말도 많구 탈도 많구, 씨잘떼기 없는 치례가  좀 많아야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애 고아끼리는 좋겠다고 입방정도 떨었단다.

웅아
내가 유월에 결혼해 부산 시가에 첫인사 가서,
시가 가까운 일가 친척 점고(點考)할때 맨 꼬랑지에 초등학교 일학년짜리 네가 있었지.
누나와 장난치고 깔깔거리고 얼굴엔 장난끼가 살살 기는 고런 나이였어.
그래두 런닝셔츠만  입고 놀다가 할아버지가 담배 심부름을 시키니 들어가서 티셔츠를 찾아 입고
문밖엘 나서는 맹랑한 꼬마였었단다.
그러다 육학년 때 너희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도 너희 곁을 떠났지.
그때부턴 할머니 할아버지 슬하에서 컸고.
산 사람은 다 살게 마련인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근력이 그만하시고, 또 두살 위인 누나가
제법 의젓하고 어른스럽게 분별이 있어서 서로 공부도 같이 하고 의지가 됐을거야.
할아버지는 바람막이가 되주시고, 새벽밥해서 도시락 챙겨주시는 할머니 정성  가히 없었어도
누나나 네게는 외로운 소년기 였을 게다.

삼촌이나 고모는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다 보는 것 뿐이었지 뭐.
믿는다 믿어주마 하면서도  언제나 염려는 됐지. 다른 애들과 다를게 없잖아?
사춘기에 반항하고 비뚤어질까봐,
부모를 원망하고 억지 부릴까봐,
한 재산 물려 줄것도 없고, 공부 열심히 해서 제 앞가림해야 하는데 딴짓 할까봐도 걱정,
젊은 울분에 쌈박질할까봐, 객기 부리고 운전부주의 할까봐도 걱정.
괜한 걱정은 끝이 없었지.
할아버지 초상 때
' 아빠 돌아가시고나선 할아버지를 아빠 대신으로 투정도 하고 어리광도 부렸었다 ' 고
이모 할머니 굽은 어깨에 굵은 눈물을 떨궜던 우리 웅아

웅아야
나는 십사년 동안 널 장조카의 자리에 두기 보다 ' 우리 맏아들 ' 로 가슴에 품어 두었었다
근데 이젠 ' 조카'로 내 놓을려고 해.
내가 네 아내 될 젊은 새댁의 입장이라도  '내 남편을 아들 처럼  아는 시숙모' 썩 달가운 존재가 아니지.
날 껄끄럽게 여길꺼야.  ' 시에미 흉내 내는 시숙모' 는 나두 싫어.
그저 둘이서 서로 보듬고 살갑게 사는 걸 멀찌기서 보기만 하는 시숙모 자리가 좋아.

그리구 꼭 하고 싶은 말은 말이다.
웅아야
이 세상에 이미 안계신 아빠야 어쩔 수 없다손 쳐도
너희 엄마.   마흔둘 나이에 혼자되어
지금은 새가정 꾸리고 산다는 너희 엄마
네 외갓집으로 결혼한단 소식은 알려야 하지 않겠니?
올 입장이 되든 못 되든  올 염치가 있든 없든
그건 외가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아들의 결혼 소식을 돌아 돌아 남을 통해 듣는 건 참 못할 노릇이다.
할머니가 아무리 애뜻하게 하셔도 한 생전 사시겠니?
고모나 삼촌이 널 낳은 엄마만 하겠어?
장차 결혼 할 누나를 생각해서 라도.
그게 어른스럽지 않겠니?
시부모에게 자식 떼어 맡긴 죄로  오도 가도 못하고 남남 처럼 살긴 해도
너희 엄만 너희 남매 보다 훨씬 오매불망한 세월을 살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