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남편은 두살 되던 해 어머니 등에 업혀 거제도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왔다.
시아버지가 열여덟살 때 징용가서 왜놈에게서 눈썰미있게 배운 전기기술을 밑천으로 미군부대에 취직이 되셔서.
징용으로나마  바깥 세상을 구경하신  시아버지는 자식들 촌무지랭이 안 만들려고 그런 계획을 하셨지만,
있는 논밭 놔두고 부모곁을 떠난다는 아들네를 탐닥치 않게 여기는 조부모님 눈치를 보느라,
전날에서야 중간치 무쇠솥을 떼어내  국 뜨고 밥 뜰 그릇과 숫가락 몇벌,  간장종지와 국자와 대조리를 챙겨넣어,
이불짐위에 엊어  큰 외삼촌이 지게로 뱃머리까지 실어다 줬다고 한다.   물론 거제대교가 생기기 전 얘기지.
우리 시가는 부산 영도 셋방부터 시작해서 재산을 불리고 식솔을 더 늘려 사십여년을 터 잡고 사셨다.
거제에서 부산에 볼 일을 보러 왔거나 취직을 해서 왔거나  원양어선을 타러 왔다든지, 학교를 다니러 왔든지,
혼수 장만을 하러 온 사람이든지  모두가 우리 시가에서 먹고 묵었기 때문에 " 거제 여관 " 이란 택호가 붙었다.
올때 간한 생선이나 고구마 한 자루라도 들고 오면 그만이고, 안가져와도 재우고 먹여야 하는 게 우리 시가의 인정이었다.
노후에 거제도 고향으로 돌아가 사시다가 삼년전 시아버지가 이승의 누추를 벗고 먼 먼 태초의 고향으로 먼저 가셨다.

아직은 청정한 바다가 있고,
정 이월에도 반짝 반짝한 잎사귀 사이로 붉은 동백꽃이 피는 거제도로 우리도 머지 않아 돌아가려한다.
오십년 넘게 타관을 돌고 돌다가.
터는 진작부터 마련되어 있다.
이제 많이 도시화되어 있는 비싼 땅에서 조금 벗어나 고깃배가 드나드는 포구에서 멀지 않은 곳,
나즈막한 산이 뒤를 두른  양지 바른 둔덕을 십여년 전에 심은 유자나무 서른 그루가  한귀퉁이에서 주인 대신 지키고 있다.
우린 내외가 체구가 작은게 여한인데다, 일본에서 고양이 이마팍 만한 집에 답답하게  사는 게 지긋 지긋해서
집의 허우대 만큼은 욕심껏 크게 지을 예정이야.
허우대 좋은 본채 말고도 원두막도 짓고 황토 토담집도 재미로 지어 볼 참이지.   거기에다는 몽돌 바닷가에서 살금살금
주워 온 자갈를 깔아  알맞게 달구어  비오는 날이면  따끈 따끈하게 등도 지져 볼려구 해.

우린 서로가 농사의 ' 농 ' 자도 모르니 물어 물어 하다 보면 남보다 언제나 한 걸음 늦을테고  얼마 동안은 실한 작황을 기대
하긴 어렵겠지만 자급자족할 푸성귀야 되지 않겠어?   농사 지어서 돈 만들 생각은 읎으니까.
꼬부라진 오이, 매끈치 못한  토마토면 어때.
여름이면 학동 이나  와현  몽돌 해수욕장, 해금강이 좋다고 귀동냥으로 들은 도시의 知人들이 심심찮게 들러 갈테니
찐 옥수수  한 소쿠리 쯤이야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도록 밭고랑에 줄 지어 씨를 묻어야겠지.
봄비에 아욱이 자라면 조갯살을 넣어 아욱국을 끓이고 푸릇 푸릇한 완두콩밥을 지어 먹을 순진한 꿈도 꾸고 있다.

봄 장날  어린 흑염소를 두마리 사다가 시이모네 단감나무 과수원에 풀어 놓아 길러 제 키에  닿는 감잎 다 따먹고
비바람에 떨어진 감을 떫은 줄 모르고 다 줒어 먹어 초바람 추위가 올 즈음이면 쌔까만 털이 반질반질하고 살이 토실토실
찔테니 나이 드느라 진이 빠진  또래들아 우리 모여서 잡아(?) 묵자.
전에 서울 있을 때 해마다 유자차를 보내시면서, 시어머니 주문을 받은 우리 시이모부가 흑염소를 한마리 잡아
살코기는 살코기 대로 먹게하고, 그 나머지는 참나무 장작불에 왼종일 고아서  보내신다.
어디를 어떻게 보했는지 모르지만 이날까지 씩씩하게 사는 힘이 그때 희생된 까만 염소 덕인가도 싶네.
닭 다섯마리를 길러 달걀을 받아 먹고, 큰 개 두마리를 길러 적적함도 달래고 같이 바닷가을 산보해야겠다.

가을이 오면 수확이야 보잘 것 없드라도 가을걷이를 해야겠지.
붉어진 고추를 따서 모아 채반에 널고, 볕 바른 곳엔 무말랭이며 호박꼬지도 켜서 걸어 놓고, 감도 껍질 벗겨 조롱조롱
매달고,  겨우내 땔 난로의 火木도 재워두다 보면  늦가을 짧은해가 금새 옥녀봉 너머로 떨어지겠지.
한 겨울에도 밭에 배추 포기가 그대로 서 있는 포근한 거제도 날씨에는 무슨 월동 채비가 필요한지 村婦 예비군 인  난
아직 모른다.

내 남편은 커다란 개를 데리고 뒷산을 뛰듯이 오르고 개와 함께 바닷가를 달리고, 테니스 크럽 회장으로 추대되어
시간과 주머니가 여의하는 만큼 폼 잡을 꿈도 꾸고 있다.
아주 조그만 배를 한척 사서  파도 잔잔한 날이면 앞바다에 나가 부식을 장만해 오거나 내집 찾아 온 友人에게도
낚시대를 쥐어 주어 제 먹을걸 낚는 재미를 뵈 줄 작정이래.(그날을 위해 낚시 용구는  좋은 걸로 넉넉히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누리는 것을 같이 나누며 살려고 하지만  꽁짜밥을 먹으려는 넘. 내집에 와서 상전 행세를 하려는 염치 없는
짜식들은 노땡큐래.
장작이라도 뽀개 놓던지, 다 따먹은 빈 옥수수대라도 뽑아 치우든지, 하다 못해 닭장 청소라도 안하면 얄쩔없다네.

" 근데 누가 우릴 찾아 오긴 올까?   그 먼 데 까지. "
"왜 안와.   지금이야  서로 살기 바쁘지만  그 나이쯤 되면 너나없이 널널한게 시간일텐데,
갈 데가 없구 오라는 데가 없어서  못 가는 넘들. 마누라 눈치 보며 빈둥거리는 거에 비하면 호사지.
내가 아무려면 지들 꺼 뺏어 먹겠어.
천년을 살것가, 만년을 살것가.   사는 날까지 돈독 들지 말구 분복대로 살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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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짜냐 . 이렇게 길어져서.   쓸 데 없는 말이 장황하게 길어지는 거  이것도 나이 먹는 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