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돈은 백엔짜리 동전 하나도 벌벌 떨고 아끼는 녀석이 대학 들어가 처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 중에 오천엔을 내게 주며 할머니께 선물 사드리라고 한다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일이다.   아들의 돈을 써 본다는 게.

해마다 손자 생일(4월)이 다가오면 이눔이 좋아하는 쥐포를 사러 충무 어물시장이나 삼천포장을
헤메서 두툼하고 맛 좋은 대한민국 특상품 쥐포를 한 아름 사 보내시는 할머니한테
제게도 수중에  돈이 생기면 보답을 하리라 별렀다는게 어쨌든 기특하다.

옳은 건지 못 된 건지  이나라 인종들에겐 ' 거저 ' 란 말은 없다.
남에게는(제 자신 외)' 거저' 로  주는 것도 받는 것도 껄끄럽게 생각하는데
아들도 그런 왜색 물이 든건가.
'그럼 부모 돈은 거저인줄 아나 ' 따져봐야 겠지만 이번엔 칭찬 만 하기로 하고.

내가 만엔을 더 보태 ' 자랑스런 효손 ' 으로 포장을 좀 했다.
실은 포장을 하고 싶은 건 '효손'이 아니고 '효손으로 키운 에미' 였는지도 모르지.

가벼운  여름 구두를 시이모 것하구 두켤레 사구
무릎아프시다구 해서 무릎토시도 좋은 걸루 사구
가스에 뭐 올려놓고는 자꾸  태우신다길래 알람 타이머 사구
보드라운 윗도리도 하나 사구
구석 구석 뒤져서 아끼느라 안 쓰고 꿍쳐두었던 것들을 넣어서 사과 괘짝 반쪽 만하게 꾸려 보냈네.

우리 어머닌 아들 손자에겐 물론 얌체같은 며느리한테도 척 척 주시는데
나는 아까워서 드릴까 말까 한참 망설였지.
사시면 얼마나 사신다구 , 낼 모레 팔십되실 노인인데.
엄청난 돈 드는거 아니면 가슴 펴구 자랑할 꺼리도 자주자주 마련해 드려야 할텐데도
있는 입으로 빤질거리는 말 뿐이고  손이 안 따르네.

" 야 야 .   뭘 그렇게 많이 보냈노? "
" 원이가 아르바이트 해서 번돈이라구 할머니한테. . . . . . "
" 공부하는  아아가 지 용돈 번 걸 가지고 우째 할미한테 꺼정 쓰노? "
" 할머니가 맨날 정성껏 비시니까 지가 학교도 다니고 용돈 벌이도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 손주위해 그만한 정성을 안 드리는 할미가 어디 있드노?
  참말로 고맙고 기특타.   니는 뭐 소용되는거 읎나?"
" 전에 사 주신 삼베 베갯잇이 시원하고 참  좋았는데."

나는 밑천 뽑을라고 올 여름엔 아직 쓸 만한 삼베 베갯잇을 들먹였다.
나두 왜색에 물 들었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