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나흘만 머무를 예정으로 부산행 비행기를 탄게  작년에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제사 사흘 전이었어.
며느리 꼴값을 하느라고 줄창 일만 했더니 얼마나 피곤한지 오는 비행기를 타고는
이륙도 하기전에 잠에 빠져 귀가했다.
지천으로 있는 단감 하나도 한가하게 앉아 깎아 먹을 새가 없드라구.
일년간 병수발를 혼자 도맡아 하신게 골병이 되셨는지 일년새에 폭삭 삭은 우리 어머니가
일손은 생각도 않고 양으로 보나, 가짓수로 보나 감당못할 만큼 일를 벌려 놓으신거야.

초상때는 젋은이들이 많이 있어서 나같은 얼추기는 껴들것도 없드구먼
이번엔 젋은거라고는 나하고 손아래 시누이뿐.
하기사 제자식들은 라면 끓여먹으라 하고 시외삼촌 제사라고, 시고모부 제사라고
시어머니 손에 끌려와 죙일 서서 일할 제 정신 멀쩡한 (ㄴ)도 읎지.
제 식구만 얼구떠는 세상인데.   나라두 그럴거야.

칠순을 자셨니, 팔순을 바라보니 하는 안팎노인들은  할일없고 사람  그립던 차라
미리미리 오셔서 자리잡고 계시니 제수 준비 보다 빈객의 입 시중이 더 큰일이고,
누가 오실 때마다 손딲고 앞치마 벗고 절 인사 드리는것도 횟수가 빈번하니
만만한 일 아니더란 말이지.
시누이도 꿍시렁거리더구만.
" 엄마는 맨날 여기저기 아프단 말도  다 거짓말이야.
아픈냥반이 이렇게 크게 일을 벌릴 수가 있어.  다 공갈이야. "
딸은 대놓고 투덜대도 난 며느리니까 속으로만
' 내년엔 안와, 졸-때로 안와. 난 엄연히 지차라구. '

어쩌겠냐. 삼류일꾼이지만 어머니 뒤 쫓아 댕기며 씻고 끓이고 볶고 부치고 지지고
담아 차려 봐야지.   닥친일인걸.
친정 큰올케가 양반 폼 잡느라고 지어 보내온 옥색 제사 치마저고리를 떨쳐 입고
지엄하신 시가 어른들 좌-악 둘러 세워놓고 곱게곱게 절도 했네.
나는 일어설때  치마 끝 밟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뿐이 안했는데, 우리어머닌
" 할배. 많이 드시고 가소.
그리구 우야든지 이집저집 손주들 아무 탈 읎이 지 몫 단단히 하는 아아들 되도록
살펴주고, 도와주소. " 라고 청탁도 잊지 않으시더군.

부지런히 상 접어 치우고 제기정리 , 태산같은 설겆이 해놓고는
다음날 새벽같이 내뺏다.
김해공항에서 이른 비행기를 타야 했으므로,
며칠 뒤에 오기로 한 남편이 뒷일은 다 맡아 한다고 하대.
요즘  "고삼에미 만사우선 "이라길래 고것도 이런 기회에 안써먹으면 섭섭하고.
노인냥반들에게도  젊은 며느리는 없는게 편해. 앉음새 고쳐 앉으려고  엉덩이만 들썩여도
"가시는갑네" 하고 반색하는 조카며느리 눈치안 보고  며칠을 묵어도 누가 가랄사람이 있나.
다 해놓은 음식이야 우덜이 차려 먹으믄 되는기고.

내 어려서 본대로라면 초상치뤄 첫제사인 소상날은 숨 고르며 길게 빼 읽는 축이
끝나기 전부터 제꾼들의 곡소리가 담을 넘었지.
시절도 변하고  시절에 마춰 정서와 문화도 변한 지금
우리아버님의 제삿날은  사람 그립고 수다 고팠던 일가 친척 어른들의 쌓인 회포 푸는
만남의 의미가 더 짙다.   우리어머니가 제사를 빙자하여 벌린 만남의 이벤트.
이담에 나는  이런자리 이렇게 마련할 수 있을까?
아마도 우리어머니세대로 마지막인 듯 싶다.